2010.5.30.십일조를 드립시다(레위기 27:30-34)
[성경본문] 레위기27:30-34개역개정
30.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31.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32.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33.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34.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십일조를 드립시다(레위기 27:30-34/2010.5.30.오전)
메튜헨리는 십일조에 관해 말하기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비유하면서 「하나님은 농장의 주인이고, 우리는 그의 소작인」이라고 했습니다. 레위기는 거룩한 규례 중에 마지막으로 십일조에 관해 명령하면서,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결론짓고 있습니다.
1. 십일조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래 3가지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일반적인 십일조로, 이는 매년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경배하며 가족이 함께 먹고 즐기는 십일조가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과 가난한 자를 위한 십일조를 드렸는데, 이것은 3년에 한 번씩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십일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 행위를 눈에 보이는 가시적 행위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잠3:9-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주가 넘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된 표시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시간의 성별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용하는 모든 시간들은 그에게 순종하며 그에게 영광 돌리는데 사용되는 수단으로 성별하는 것이며, 십일조는 물질의 성별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을 나타내는 신앙적 수단입니다.
2. 셋째는, 청지기된 삶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십일조는, 나의 삶 전 생애에 주어진 물질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게 위탁하신 것들이요, 우리는 그것들을 주인의 뜻대로 사용한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가 모든 나라와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이 되 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유지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의 생활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축복의 원리를 따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는 수단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반드시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석유의 왕 록펠러는 주일학교 다니던 8살 때 20센트를 가지고 십일조를 시작했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도 1870년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소장이 되었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그의 고백은,“ 내가 주급1달러 50센트를 받을 때 그 첫 봉급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면 100만달러의 십일조도 드릴 수 없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비망록에 기록하기를, “ 나는 재산이 계속 늘어나도 어김없이 정확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나의 평생의 행복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쳤고, 그것을 정확히 실행하도록 했습니다.
수많은 공공사업에 기부하고, 시카고 대학을 설립하고, 록펠러 자선재단과 병원과 수많은 연구소, 문화사업에 전세계적으로 공헌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잘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 사람 스스로의 힘이나 능력이나 재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순종함으로 복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의함입니다.
3. 그런데, 오늘날 십일조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십일조를 드리면서 그 십일조로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형식주의를 책망하셨습니다.
십일조는 온 땅과 그 가운데 충만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적 행위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만물이 다 주의 것이고, 우리의 것은 지은 죄 뿐이니 무엇으로 하나님께 드리겠습까?
그러므로 십분의 일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 중에 십분의 구를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구약에서는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는데,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그 종들에게 “ 자기의 소유를 맡겼다”(14)고 했는데, 주인이 돌아와 19절에, “ 회계했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잠시 맡긴 것이지 종의 소유로 완전히 준 것이 아닙니다.
원래 종의 소유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십일조는 율법주의니 구약시대의 것이라고 하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것은 옳은 생각입니다.
왜냐면 구약시대는 십일조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를 다 행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십일조만 드리면 형식주의자요 율법주의자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과부가 엽전 두 잎을 드릴 때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주의자들이 박하의 줄기까지 세어서 십일조를 정확히 행하는 것을 보시고,
오히려 재앙을 받을 사람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한 것입니다.
4. 그들이 십일조는 철저히 드리는데,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의와 신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義, 仁, 信이란 율법의 중심사상으로 공평한 판결이나 자비나 충성을 말합니다.
즉, 십일조 속에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바르게 행하며 그 은혜에 감사, 감격하는 내용이 전연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형식주의란 껍데기를 보면 잘하고 모범생인데, 내용을 보면 가짜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비유한다면, 결혼은 했는데 부부사이가 사실은 남남으로 사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애정도, 이해도, 배려도 없이, 법적으로 만 부부요, 사람들 눈치를 보는 부부관계라는 말입니다.
그곳에 무슨 행복이 있고, 그런 가정에 무슨 미래가 있습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가난해서 먹을 것도 제대로 없다면, 가난한 과부처럼 엽전 두 개를 헌금 통에 넣어도 주님은 많이 넣었다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잃어버린 의와 인과 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드려야 복이 되겠습니까?
첫째로, 물질관리의 청지기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내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대표해서 그 중에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분의 일은, 지금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보고서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가장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5. 둘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자손들을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보니, 십일조의 명령은 “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헌물과 십일조를 드리는 그 순종하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23절에, “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바로 행하지 아니하는 것도 죄지만, 문제는 십일조를 하면서도 형식주의, 율법주의, 불신앙에 얽매이고, 마지못해서 하는 것도 큰 죄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드릴 때,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드려야 합니다.
드릴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만 드림이 아니라 감사예물을 함께 드리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십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기에 앞서 사랑과 믿음과 공의를 행하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면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가 되는 것입니다.
6. 성 어그스틴은, “ 하나님은 신자들의 유익과 축복을 위해 헌금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신자가 십일조를 태만히 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의 명령은 우리의 짐을 무겁게 하려는 명령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나와 우리 자손은 물론, 영원히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인 줄 믿습니다.
십일조 안에는 아직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엄청난 축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나의 복의 근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나와 내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 영원히 하늘에 쌓는 축복의 행위요 신앙고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