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27.믿음의 증거들(히브리서 11:28-32)
[성경본문] 히브리서11:28-32개역개정
28.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 믿음의 증거들(히브리서 11:28-32/2010.3.27.오전) 1.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아니 생명이 살기에 제일 좋은 환경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환경도 10개월이 지나면 나와야 합니다. 만일 그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 밧똥이라고 하는 자신의 배설물로 인하여 병들고 실명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울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울면서라도 그곳에서 나와야 그 생명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잘 나오지 않아 난산을 겪어도 잡아 당겨서 뽑아내어서라도, 안되면 제왕절개를 해서라도 나와야 살고, 나와야 사람 구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가면서 자라나야 그것이 참 신앙입니다. 그래서 옛 신앙의 자리에 그대로 머문 사람들, 말씀으로 훈련받고 귀한 은혜를 체험하고도 여전히 신앙에서 성장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배설물에 묻힌 사람들입니다. 굼뱅이도 느리지만 때가 되면 껍질을 벗고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됩니다. 그래서 꽃에도 앉고 아름답고 달콤한 향을 맞으며 꿀을 먹는 것입니다. 일본 동북부 지방이 지진으로 초토화되었지만 지금은 복구 잡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죽고 행방불명이 되어 슬픔과 아픔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복구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생명이 가지는 능력입니다. 2. 사람들이 처음으로 예수를 믿을 때, 많은 의문들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정말 기도 응답은 있는 것인가? 내세의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는가? 천사와 마귀는 있는가? 예수 잘 믿으면 복을 받는가?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정말로 믿을만한가? 등등의 의문들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대한 증거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도,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이요, 역사요,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불변의 증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 위에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그 심령에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 이외에도 우리에게 믿음의 증거들을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은 그 삶과 인격, 그 신앙을 통해 하나님 살아 계심을 나타냄으로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증거로 삼으셨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의 삶과 신앙이 어떠하였기에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하면서까지 이들을 믿음의 증거로 삼았습니까? 3. 첫째로 이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넘쳤습니다. 모세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왕자의 삶을 포기하고 히브리 노예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기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조카 롯을 따라 소돔성에 정착하지 않고, 나그네의 삶을 택한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미래에 대한 확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육신으로는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장차 올 영원한 나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영원한 나라의 생명을 세상의 모든 것 보다 더 사모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기다리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이 소망 때문에 우리는 비록 현실이 어렵고 아픔이 있어도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인내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그 심령이 천국같은 삶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는 그 날을 기다리며 사는 줄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땅의 모든 부귀와 명예와 지식까지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기하기를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희생했습니다. 에녹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바쳤고, 노아는 구원의 방주를 짓는데 자신의 삶과 재산을 투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주시는 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와 내 민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도 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사모하였고, 마침내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자손손 축복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보시며, 반드시 우리「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시20:4), 「소원의 항구로 인도」 (시107:30)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소경 바디메오의 고함소리를 듣고 주님은 네 소원이 무엇이냐(막5:51)고 물으시고 그 소원대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4. 바로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며, 또한 저들의 믿음을 통해 역사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홍해를 갈라 바다 한 가운데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라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시고,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40년간 이스라엘의 광야의 생활을 도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선민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로부터 승리를 얻도록 종일 하늘의 태양을 붙잡아 이스라엘이 기브온을 다 이길 때까지 그 태양이 중천에 머물도록 하신 하나님입니다(수10:13). 전도하던 스데반 집사가 분노한 군중들의 돌에 맞아 죽어갈 때도, 주님은 하늘에서 양팔을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계심으로, 이 모습을 본 스데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도무지 돌에 맞아 죽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심을 우리의 신앙과 삶의 모습에서 나타내야 합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떻게 도우시며, 축복하시고, 그 삶의 여정의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5. 둘째로, 저들은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은 죄와 유혹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매 순간, 결단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악으로 고통하며, 일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세상 육신의 모든 것들이 일순간의 지진과 해일로 종잇장처럼 망가지고 부숴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이 세상은 치열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신앙의 시험에서 승리하여 큰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정욕의 유혹이라는 시험에서 이기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권력의 영광과 부귀의 시험에서 완벽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와같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오는 모든 시험을 이겼고,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실패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를 배신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믿음의 항해를 무사히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파선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가는데 도중에 신앙의 싸움에서 파선하는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좇아가는 삶과 이기적인 욕심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왜 어떤 사람들은 이기는데, 어떤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패배를 맛보게 됩니까? 승리의 비결은 일관된 믿음에 있습니다. 세월이 가고 세상이 변해도 그것을 따라가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의 호흡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온갖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며, 모든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6. 셋째로 저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까? 물질문제입니까? 지진입니까? 해일입니까? 아니면 방사선 오염입니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입니까? 아니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두렵게 합니까? 무엇이 우리를 염려하게 만듭니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 우리가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문제는 이미 믿음의 조상들도 다 경험한 것들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들은 문화만 다르지 모든 것이 같았습니다. 우리가 자녀 문제로 고민하듯이 저들도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생계문제나, 건강문제로 염려하듯이 저들도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모든 것이 똑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 한 가지 있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염려와 문제들을 다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고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마6:31-32)고 하셨습니다. 염려한다고 키를 높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思い煩いは、何もかも神にお任せしなさい。(벧전5:7)고 했습니다. 7. 두려움과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함에서 오는 마음의 현상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길 없는 광야에 길을 만들었습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성을 무너뜨림으로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믿음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믿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순종하고 의지한 믿음의 사람들의 삶과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 믿으면 그것 자체가 전도가 되고, 선교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아픔과 가난과 삶속에서 나오는 질병이나 재해나 환경의 오염이나 그 무엇이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은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위기와 어려움을 통해 도리어 하나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이며 사는 줄 믿습니다. 8. 세상은 역사를 통해 기독교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교회를 욕하고 무관심한 척 하여도 우리와 우리 교회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꾀를 부리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든 유행과 습관을 따라간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도리어 우리를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들로 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들과 시험과 유혹들 앞에서, 특히 지진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엄청난 재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도우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아니한다면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증거인 줄 믿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시험을 이기며 죽음이나 미래나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께 맡길 때,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세상은 하나님 살아 계신 증거를 얻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나와 우리 자녀들이 형통할 줄 믿습니다. 환란 당한 이 21세기의 믿음의 증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