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24.부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데살로니가전서 4:13-18)
[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4:13-18개역개정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
14.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 부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데살로니가전서 4:13-18/201.4.24. 부활주일 오전) 1. 데살로니가교인들은 예수 재림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의 문제들과 고통을 이기게 했습니다. 예수 재림 때까지만 인내하면 될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속히 오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생각보다 늦어졌고, 그 사이에 함께 신앙생활 하던 성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저들은 예수 재림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재림을 바라보다가 이미 죽은 사람들은, 예수 재림의 그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우리도 예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으면 먼저 죽은 사람들처럼 이 모든 소망이 끊어질 줄 염려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반드시 살아생전에 예수 재림이 꼭 있을 것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염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지금 살아 믿는 자들의 신앙적인 동요가 확산될 것을 생각하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의 잘못된 부활신앙 내지 예수 재림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르침으로 소망과 위로를 주고자 했습니다. 2. 첫째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부활의 사건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고, 능욕과 아픔을 당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생명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죄가 요구하는 영원한 사망의 댓가를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엡2:6)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 새로운 시작,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신 영광의 사건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요19:30)하셨습니다. 계속해서,「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헬라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고 현세적 쾌락주의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내세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하기를,「예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했다」(벧전 1:3)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 (요11:25-26)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세상의 현세적인 것들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세상 것으로 인하여 결코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유는 부활 이후에 받을 영광은 세상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현재 살아있거나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부활의 소망에 관해서, 다시 말해서 마지막 날에 누릴 영광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본문 16절을 보면, 이미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재림의 주님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자들로 인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조금도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는 믿음의 생활을 함께 하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크게 슬퍼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의 죽음을 맞아 슬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런 슬픔 속에서 자신들이 듣고 배운 진리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계시록 22:7절에,「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지킨다는 말씀은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듣는 것만으로는 믿음이 자랄 수 없으며, 듣는 것만으로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듣고 배운 것을 행할 때 믿음은 자라며, 듣고 배운 것을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때, 주님은 우리의 삶에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로, 죽은 자들을 가리켜「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육체적인 죽음이 인생의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잠자고 있다」고 하였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죽음에도,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였습니다(마 9:24). 사도들도 스데반의 죽음을 가리켜「잔다」고 했습니다(행 7:60). 왜 그렇게 말해야 합니까? 잠잔다는 것은, 죽음이란 단지 육체적 삶의 끝이요, 잠시 안식하여 쉬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일시적으로 죽지만 예수 재림의 날에 다시 깨어날 부활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되다(계 14:1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소망이 없는 세상의 불신자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크게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들은, 비록 세상과 이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였지만, 그 육신의 죽음은 결코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니라, 잠시 잠간 잠자고 있을 뿐입니다. 그 사실이 14, 16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 곧 무덤에 잠들고 있던 자들을 깨워 공중 혼인잔치 참여케 하도록 주님은 다시 오시는 줄 믿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뵙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천국의 기업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5. 셋째로, 믿음의 결과인 영원한 천국을 말했습니다. 17절에,「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 지상에서 함께 믿음을 누렸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잠시잠깐일 뿐이요, 장차 주님의 재림을 통해 모든 믿음의 형제들이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영원히 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독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먼저 죽은 자들의 그 소망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이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6.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이 지상에서 생명을 누리는 동안 잠시 사용하도록 만드신 유한한 것들뿐입니다. 여기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두렵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일시적으로 세상에 왔다가 그림자처럼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살수록 허무하고,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고, 믿음, 소망, 사랑안에서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금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롬 8:24). 왜 그렇습니까?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슬퍼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망 없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재림에 대한 소망은 물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약해질 때, 우리의 믿음도 약해지며, 우리의 삶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곧 영원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7. 히브리서 기자는 이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켜,「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고,「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 (히11:13,16)다고 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영원한 성을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 안에서 형제된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난에 대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질병과 사고 등등의 두려움이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무덤 바깥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부활의 확신을 주셨고, 영원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나타 나셔서 그들에 평안을 베푸셨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맛본 부활신앙은 산 자는 물론이고 죽은 자들에게도 소망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이 부활의 믿음으로 두려움도 이기고 슬픔도 이기고, 모든 질병과 실패는 물론, 모든 고통과 죽음까지도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믿음 안에서, 능력과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