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31.오천 명을 먹인 아이(요한복음 6:1-13)
[성경본문] 요한복음6:1-13개역개정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 오천 명을 먹인 아이(요한복음 6:1-13/2010.10.31.오전) 1. 이스라엘이 홍해를 가르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했지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40년의 광야세월에서 다 죽었고,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자녀들과 이 두 사람만이 축복의 땅에 들어간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생애가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임 받았고, 남다른 축복을 받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남다른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12명의 정탐꾼이 갔지만 다른 10명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다른 10명은 세상을 크게 보았지만,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과 앞에 놓인 장애물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였고, 이름조차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인 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복 받는 비결이 무엇이며, 영적으로 성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함입니다. 2. 벳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증거하시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말씀을 마치는 즈음에 보니 모인 사람들이 허기져서 이미 지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며, 청중들 가운데「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막6:38)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난감했습니다. 이 광야에서 남자 장정만 세어서 5천명이 넘는 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이 재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어린아이 하나가 자신의 도시락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내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시고는 남은 것을 열 두 광주리에 거두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자신의 도시락을 싸온 사람은 있었을 것입니다. 남녀 어린아이까지 합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1만 명이라 생각해보고, 그 가운데 도시락을 가져 온 사람을 1%라고 가정한다면, 100명쯤은 아마 도시락을 가져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먹을 것을 찾으셨을 때,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 놓은 것은 어린아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빌립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빌립의 생각처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먹을 것도 부족한데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먹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드릴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온 것이 없었습니다. 3. 그러나 한 어린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먹을 것을 찾으신다는 말에 자신의 먹을 것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해 주셨고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면, 그래서 깨달음이 있었다면, 나는 먹지 못하더라도 예수님께는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내 배가 더 크고 중요했습니다. 배고픔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내어 놓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좋은 것 가르쳐 주고, 돈벌이가 되는 정보를 들으면 한턱을 씁니다. 하물며 내 생명을 구원해 주시고, 날마다 영혼의 양식을 주시며 천국을 약속하신 주님 앞에 우리가 드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기 먹을 것은 쌓여 있어도 주님께 드릴 것은 없으며, 제 입는 것은 호사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데는 인색합니다. 교회 오면 피곤하다고 하면서, 그 피곤한 몸을 가지고 여기저기 잘 돌아다닙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은 날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분께 무엇을 드렸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말씀을 듣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래서 굶주리고 지친 이 청중들을 주님은 그냥 보내실 수 없기 때문에 먹을 것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 먹을 것 제가 알아서 해야지 생각할지 모르나, 주님은 주린 모든 배를 채울 방법을 찾고 계셨습니다.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문제는 지금도 주님은 군중들 속에서 찾고 계십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함께 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몸된 성전과 주의 백성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섬길 신실한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서서 하라」(눅10:2)고 하셨습니다. 4. 우리와 주님과의 사귐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오는 온갖 좋은 것들을 빼앗아가는 것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욕심입니다.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이 욕심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들며, 우리의 이 욕심이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다가 왜 다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 그분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믿지 못하고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늘 육체의 욕심과 거역하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병들고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질병도 마음에서 시작되고, 실패도 마음의 낙심에서 시작되고, 모든 고통과 장애물로 결국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즘 새벽기도를 시편 106편으로 묵상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인간의 원하는 탐욕은 복이 아니라 도리어 재앙이고 고통이며 심지어 죽음을 불러 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마음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5. 메추라기 사건이나 모압에서의 음행이나 호렙산에서의 우상숭배며 온갖 음행과 완악함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온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이스라엘이 죄의 늪에 빠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늪이 무엇입니까? 한 번 빠지면 제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곳입니다. 살겠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빠져 들어가는 그런 곳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는 결코 살아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의 늪에 빠진 이스라엘이 뉘늦게 깨닫고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반복된 타락과 반복된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는데 그 마음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죄가 자꾸 되살아나서 반복된 죄를 범하는 사람은 그 마음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치지 못하면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축복의 땅에 살아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저주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뒤로, 그곳 사람들의 습관과 행위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저희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이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시106:34-36)고 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37-38절에 보면,「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 우상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고 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탐욕과 완악함으로 그 마음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식의 생명까지도 귀신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더러워진 사람의 결과입니다. 6.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작은 유혹과 시험에 무너지고 능력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들을 때는 은혜가 되지만,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배고픈 현실, 즉 자기의 배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 목사님이 오랜만에 메일을 보내 왔는데, 그곳에는 좋은 남자 알아내는 법이 쓰여 있었습니다. 비를 두드려 맞고 몇 시간씩 나를 기다려 주는 남자들에게 홀딱 넘어가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 남자는 싸이코 기질이 강한 남자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식당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날 사랑하는 모습과는 전연 다른 그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동물은 약자입니다. 약한 존재에 대한 태도가 결국 그 사람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남자의 어머니에게 대한 태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남자가 만난 첫 여자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대하는 그 태도가 결국 나에게도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의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들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은 물론 미래까지 보이기 마련입니다. 결국 자기 사랑, 세상사랑은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7. 그러나 이름도 밝혀 지지 않은 이 한 사람 어린아이의 행동은 달랐습니다. 주님이 먹을 것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지만 어른 배보다 어린아이의 배가 더 고프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락은 내가 먹는 것 보다는 주님께 드리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 안에서 복 받는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때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남이 못하는 것, 남이 안 된다고 하는 그것을 내가 지고 나갈 때 그것이 복 받는 비결이요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TV 코머셜에 오사카모드학원의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였습니다. 되고 싶지 않는 내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가난한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게으르거나, 약속을 잘 지키지 않거나, 지각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를 만들어 낸다면 평생 가난한 삶을 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늘 실패하는 사람의 조건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상도 있고 멋진 계획도 있지만, 정작 그 마음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잘못되고 마음이 병들어서야 어찌 삶이 변화가 될 수 있습니까? 8. 오늘 본문의 어린아이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필경 그는 주님의 말씀에 마음이 감동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하여 무엇인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을 때 주저함없이 자신의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결과 이 어린아이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예수님은 물론이고 장정만 세어서 5천명을 먹이고, 자신도 배불린 후에 12광주리를 남겼습니다. 내 손에 있는 오병이어는 어린아이의 배를 채우기도 부족했지만, 그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렸을 때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 오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의 능력이요, 바로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결과였습니다. 9. 참 성도는 남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남다른 영적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일을 만나도 다른 사람들과는 전연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5천명을 먹이고 예수님도 대접한 이 어린아이와, 한 어린아이의 헌신으로 배불린 사람들, 무엇이 다릅니까? 남다른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경험은 남이 가지지 못한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줄 믿습니다. 이런 경험은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때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이런 경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큰 믿음을 만들며,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알게 하는 줄 믿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믿음으로 헌신한 결과를 우리 주님이 축복하셔서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고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했다면, 우리는 이 오사카는 물론이고, 오사카 중앙교회의 4대 목표를 이루면서 전 일본을 구원하고 전례가 없는 생명의 역사를 이 땅에 가져올 수 있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