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4.뜻을 정한 사람들(다니엘1:8-9)
[성경본문] 다니엘1:8-9개역개정
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뜻을 정한 사람들(다니엘1:8-9/2010.10.24.오전)
1.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는 9년 만에 두 분의 권사를 임직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은 목회현장에 있어서는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년 만에 임직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선교의 현장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에 신실한 사람을 세워서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함께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세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회 일을 안심하고 맡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870만여 명이 사는 이 오사카에 왜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민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바로 사방이 도적놈들이요 사기꾼이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제직 중에 한 사람이 7년 7개월을 이 교회에 몸을 담고 있다가 교회와 주위 사람들을 속이고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갔으니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이 처음부터 사기꾼이고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는 것이, 교회에 등록된 그 이름이 가짜고 생년월일도 처음부터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 말할 수 없지만, 이 사람 이외에도 목회자와 교인들의 눈을 속이고 불법을 행하며 회개할 줄 모르고 지금도 악행을 일삼던 자들이 또 있습니다.
이 오사카에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세워 이 땅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변화를 입은 거룩한 백성들의 공동체를 세우고자 했던 이 사람의 수고와 애타는 마음을 어찌 주님 앞에서 감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지난 26년간의 세월을 돌아보면 목회와 선교는 어떤 의미에서 사람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의 무리 속에서 참된 신앙의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직분 하나를 얻는데도 그만큼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1991년에 우리 교회가 4분의 권사님을 세웠지만, 한분은 귀국하시고, 또 한 분은 소천하셨고, 또 한분은 질병과 노령으로 불편한 가운데 계시고, 지금은 시무 권사 한 분만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세움을 입은 시무권사 한 분과 명예권사 한 분은 우리 교회가 주님께 받은 은혜에 있어서 대단한 영광이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군이 기원전 605년에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군을 대파한 여세를 몰아 유다가 속한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고, 이 지역의 친 애굽정책을 뿌리뽑기 위해 상당수의 상류층 계급의 사람들과 박식하고 재주있는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행했고, 그 와중에 다니엘은 유다왕 여호야김 3년에 그 친구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 온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포로로 끌려왔지만 학식과 총명이 있는 자로 왕을 섬기기 위해서 특별히 발탁되었고, 왕궁에서 왕의 진미를 먹으며 바벨론제국의 신하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원수 나라의 임금에게 충성을 강요당하였고, 그 구체적인 변화가 바로 그들의 히브리식 이름이 바벨론식 이름으로 개명당한 것이고,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친구들도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라는 이름을 버리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궁전에서 나오는 모든 먹고 마시는 음식들이 이방신에게 제사한 제물의 일부였으며, 그것들은 자신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종교법에 위반되는 것들이며, 그런 음식들을 먹고 마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며, 자신들의 몸을 더럽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포로된 자로서 이방임금에게 이미 충성을 강요당한 다니엘과 그 세친구들에게는 자신들의 의식주에 관한 자유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로 자신들의 젊음과 학문과 모든 능력을 오직 바벨론 임금을 위해 사용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바로 이런 위기 속에서 다니엘과 그 세친구를 구원한 것이 무엇입니까?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7절의 말씀 곧「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직분을 받고 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변화가 열심입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열심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열심을 내기 전에 먼저 다니엘처럼 뜻을 정해야 합니다.
단순한 열심은 시간이 지나고 육체가 피곤해지면 그 열심은 쇠약해지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뜻을 정하고 그 뜻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목적을 성취하기까지는 쉬지않는 열심과 뜨거움이 우리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다니엘이 결심하고 뜻을 정할 때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왕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우상 숭배의 온갖 시험을 이기는 능력으로 충만했습니다.
온갖 시기와 모함과 대적들의 위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건강의 축복, 학문의 축복에 몽조를 깨닫는 능력이 왔습니다.
형통한 축복의 길이 평생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직분 받은 자들이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평생 변함없는 충성된 삶을 살고자 하여 뜻을 정한다면, 다니엘이 받은 능력, 그의 축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은 교회를 위해 뜻을 정해야 합니다.
왜?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충성된 사람들을 선발하여 직분을 주고 임직식을 할 때, 그 형편을 따라 얼마간의 헌금을 받는 것이 교회의 불문율처럼 되고 있습니다.
받은 헌금으로 교회당을 수리도 하고, 교회에 필요한 기물들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직분을 받은 자는 헌금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몸을 드려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도 자신의 몸을 드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그 십자가에서 찢겨 흘리신 그 몸과 피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4.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이것을 심령에 새겨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일꾼된 사명자들이 사는 길이고 이 믿음의 공동체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함께 살아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친구 목사님과 둘이서 부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골목길로 들어가니 허름한 유교 사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전통적인 복장으로 조상의 신을 제사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문화를 살피러 왔다고 하니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해 주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제사하는 태도가 매우 지극하고 극진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곳에 자신들의 조상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드리는 제물과 정성을 조상이 받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교회 안에는 이런 모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겉으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속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권사가 무엇하는 사람이며 교회는 왜 권사의 직분을 줍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를 몸 바쳐 충성하라고, 그 충성에 남다른 열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지 아니하고는 이 귀중한 직분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뜻을 정하고 목숨 바쳐 충성한다면 다니엘의 받은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5. 다니엘만 뜻을 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친구들도 함께 뜻을 정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뜻을 정하고 그 정한 뜻을 위하여 함께 행동한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거룩하고 의로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생명을 건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생명을 걸었더니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풀무불에 던져졌다가 소생하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의 분노가 그들을 태우지 못했습니다.
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에 던진 사람들조차 삼키고 태워버렸지만, 그 불길은 이 사람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태우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왕도 신하들도 바벨론 국가가 그들의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임직을 받은 사람들만이 충성된 일꾼은 아닙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다함께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지고 뜻을 정한다면, 교회를 위협하는 그 어떤 세력과 시험도 어려움도 우리는 이길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진미를 거절하는 용단을 내린 결과,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하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쫓아 환관장이 열흘을 시험한 결과 왕의 진미를 먹고 마신 다른 사람들보더 채식과 물만 먹은 이 사람들의「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15)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고 그 하나님께 내 인생을 드리고, 내 생명을 걸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다면 우리는 이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얻을 것이며, 이 땅에서도 형통하고 복된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
6. 일본의 니지마 죠우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귀국하니 일본정부에서 고위 관리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그것을 거절하고 동지사 대학을 세워 신앙과 학문으로 일본에 공헌하는 많은 후배들을 배출한 결과 오늘의 일본이 있게 만든 장본입니다.
미국에도 중국계 미국 목사님 한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이 학문과 인격이 뛰어남을 보고 미국 정부가 고위직 관리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좋은 제안을 거절하고 목회자의 길을 갔다고 합니다.
이 분이 목회자가 된 동기를 말하는데, 중국의 의화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은 중국 내륙에 살고 있었는데, 163명의 성도들이 마적때 같은 군인들에게 끌려 왔는데 그 마을의 큰 사당 앞에서 세워놓고 우상 앞에 절하면 살려 준다는 것입니다.
한 줄로 선 이 사람들이 우상 앞을 지나는데 절하지 않고 지나온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163명의 성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절하지 않았고 다 목이 베어 죽었는데 그 가운데 자신의 아버지도 계셨다고 합니다.
그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 사건은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성도들의 순교 현장에서 이미 다니엘처럼 뜻을 정했기 때문에 평생 그 뜻에 따라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7.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직분에는 반드시 능력과 축복이 따라오며, 동시에 영원한 영광이 약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목회자로서 받은 직분에 따르는 주님의 은혜와 선교사로서 받은 영광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고난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의 임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회자나 선교사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과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받은 그 모든 직분에 충성하는 모든 신실한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영광입니다.
17절에 보면,「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뜻을 정한 사람들의 결론입니다.
이 교회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뜻을 정하면, 주님이 함께 하시며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새롭게 뜻을 정하여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