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3.오직 믿음으로(하박국 2:1-4)

[성경본문] 하박국2:1-4개역개정

1.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

2.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직 믿음으로(하박국 2:1-4/2010.1.3.오전)
1.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내일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고,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없는 시간이 내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 없는 인생처럼 답답하고 비참한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가 2009년에 우리 인생의 발걸음을 멈추지 아니하고 2010년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온 것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처참하고 어둡고 답답해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6세기 팔레스틴 땅의 남왕국인 유다 땅에 31년 간 통치하던 신앙의 사람 요시야 임금은 애급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므깃도 전장에서 죽은 뒤, 신앙이 없는 그 아들 여호아하스(아하시야) 가 3개월 통치하다가 애급 왕에게 의해 폐위되어, 애급으로 잡혀 가서 그곳에서 죽고, 그의 형제 엘리야김(여호야김)이 왕위를 계승하여 11년간 통치했지만, 그 사이에 선지자 우리야를 죽이고,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불사르고, 백성을 괴롭히는 악행을 계속하다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급의 도움을 요청하다가, 느브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끌려가 배신의 대가를 치루는 비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정치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사분오열이 되어 어느 쪽에 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가장 어려운 시대, 중과세로 신음하는 백성들을 외면하고 새 궁전과 사치에 극을 치닫는 왕가에 의해 이미 경제는 파탄이 났고, 종교, 윤리 따위는 간곳이 없는, 한 치의 앞을 내다 볼 수도 없는 절박하고 급박한 시대, 내다 볼 미래가 전연 없는, 다가오는 내일이 두렵고 고통스런 그런 시대에 하박국 선지자는 살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관리, 백성들 그 누구하나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은 없고, 도리어 강포와 패역과 불법이 판을 치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수탈하고, 악인이 의인을 능멸하고 죽이는 일이 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남은 소수의 의인들은 그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하나님께 신원하며 부르짖었지만, 응답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았고, 이 사람들도 마침내 여호와는 부르짖어도 구원치 아니하신다고 낙심하며 불평하고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2. 참으로 답답하고 견디기 어려운 그런 상황에서 선지자 하박국도 하나님께 항변하기 시작했습니다(합1:1-4).
왜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어도 듣지 아니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강포한 자의 손에서 의인을 지키지 아나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매일 매일 간악과 패역을 목도하게 하며, 겁탈과 강포로 두려워하게 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의인의 고통을 외면하시는가?
이 때 하나님은 선지자 하박국에게 말씀하기를, 곧 이 나라가 바벨론의 무자비한 침공을 받아 멸망하는데, 그들은 너무도 두렵고 무서우며 자비라고는 전연 없는 갈대아인이 땅 이 민족을 쳐서 망하게 할 것이며, 이 땅 이 민족은 처참한 어두움 속에 거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항변에 돌아온 답은 현실보다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항변합니다.
비록 유다 나라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하여도, 어찌 바벨론 같은 흉악한 가장 무서운 악인들에게 삼킴을 당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이 유다나라의 백성들이 사납고 무자비한 바벨론에게 마치 바다의 고기처럼, 곤충들처럼 그렇게 사로잡히며 살육당하며 취급받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모세의 율법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멸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선지자는 피를 토하면서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의 결론은, 합1:12절에 기록된대로,「여호와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기로 우리가 사망에 이를 수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고 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항변에, 하나님은 어떤 대답으로 나오실지 기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3. 선지자 하박국은 무너지는 마음으로 성루에 올라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갈급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하박국 선지자에게 임하는데, 3절에 보니,「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 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으로 온갖 악행을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군인이 사명을 망각하고, 신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군사재판에 회부됩니다.
학생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상아탑을 중심으로 학업에 전념하지 아니하면,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 전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주부가 탈선하면 가정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방백이 불법을 행하면 공의와 질서는 없습니다.
왕들이 선지자를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찢어버리고, 백성을 학대하며, 학대받는 이 백성들 스스로도 불법과 폭력에 의존하여 사는데, 어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없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러므로 유다 나라와 그 백성이 멸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계속해서 임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었는데 4절에 보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했습니다.
이 4절의 말씀 전반부는 유다를 멸망시키는 갈대아인, 즉 바벨론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만하며, 무례하고 뻔뻔스러우며, 공의나 자비나 정직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교만한 자의 특징은, 욕심입니다. 탐욕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바벨론처럼 공의나 자비를 모르는 짐승같은 자들입니다.

4.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후반절에 나오는,「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의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시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가리켜 의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유다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내일을 알지 못하는 혼란과 고통과 불법 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원래는 나의 백성된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의인으로 표현할 때, 그들의 행위가 의롭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의인이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위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신분으로 의인 된 것입니다.
교인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때문에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성도라 부르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의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정치, 종교, 도덕, 경제 등 모든 것이 파탄이 나고, 내일을 알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이 믿음을 버리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어렵다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되면, 자식도 버리고 배우자도 버리고, 이것저것 다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 줄 압니까? 이 사람들은 원래 사람들이 아니고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짐승과 인간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짐승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사람에게는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어렵다고 믿음을 팔아먹는 것은 영혼을 잃는 것입니다.
어렵다고 가정과 사랑하는 이들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 인간 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주신 사명과 직분에 불충하는 것은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에게는 버려야 할 것이 있고, 마지막까지 버려서는 안될 것이 있으며, 욕심내어도 좋을 것이 있는가하면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사람에게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 관계없지만, 적어도 하나님 백성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고, 사명이 있고, 내일에 대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그냥 믿음이 아니라,「그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 믿음」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자기 소유의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 앞에 소유격인 「그」라는 단어를 붙였으니, 이것은 행동하는 그 사람 속에 있는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도 말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으니, 믿음은 곧 그 사람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이요 전체입니다.
그래서「그」라는 소유격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박국 2: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신칭의의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로마서나 히브리서에도 이 본문의 말씀을 인용하여 여기저기에서「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롬1:17, 갈3:11, 히10:38)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그」라고 하는 근본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보내신 하나님은 그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으니, 이 믿음도 원래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엡2:8절에,「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2:9-10절에도 다양한 은사와 더불어「성령으로 믿음을」선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가장 어려운 하박국 선지자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왜「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는가?
택함받은 선민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최강국인 앗수르를 누르고 떠오르는 신흥제국 바벨론 때문에 유다가 일시적으로 고통을 당할 수는 있어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어떤 방법 수단 능력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유다의 죄상을 밝히고, 그 죗값으로 당하는 앗수르와 애급과 바벨론의 침공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자녀된 유다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질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경제가 잘못되어서 망하는 것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사분오열이 되고 죽을 쒀서 망하는 것 아닙니다.
국제정세에 희생의 재물이 된다고 망하는 것 아닙니다.
심지어 유다 스스로의 죗값으로도 망하지는 안는다는 것입니다.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 하나님이 때가 되면 모든 것을 회복하실 줄 믿는 사람입니다.
어렵고 답답합니까?
말씀의 성루에 올라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내 계산으로는 앞이 캄캄해도, 하나님이 주신 이 믿음으로 살면, 십자가의 승리인 부활의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듯이, 어려울수록 고통스러울수록 우리의 믿음은 인내함으로 더욱 빛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당신의 의를 위하여 우리를 축복하여 영적인 열매를 많이 맺도록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2010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새로운 시대요, 새 능력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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