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5.광야길 25년(신명기 8:1-6)

[성경본문] 신명기8:1-6개역개정

1.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광야길 25년(신명기 8:1-6/2009.11.15.오전)
1. 저는 1982년 봄에 일본에 첫 발을 디뎠고, 6개월 동안 이마후꾸 교회의 무보수 전도사로 사역하였고, 그 이듬해에 고오베 개혁파 신학교에 입학하고, 1983년에 정식으로 아사히 그리스도교회의 선교사로 파송받아 1984년에 가족들을 데리고 일본에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1984년 11월25일, 수이따시 센리오까(吹田市千里丘) 증심지인 14번 국도변의 점포 2층에서 저희 식구를 합하여 남자 2명, 여자 7명이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사히 그리스도교회에서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크기인 센리오까 전도소라는 이름을 쓴 간판과 겨우 몸 하반신을 가릴 정도의 낡고 작은 강대상 하나를 얻어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1986년 5월에는 千里丘1-13-31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어 공원을 전전하며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아사히 그리스도교회의 일본인 여성도의 도움을 받아 吹田市元町 19-8, JR수이따역 근처에 이전하여 베다니아 교회라고 개명을 하여, 새로운 각오로 교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출석 교인 20명도 채 안되며, 연간 예산이 5백만 엔도 안되는 연약한 교회였지만, 해외 선교를 시작하여, 한국의 농촌 미자립교회 2개처를 지원하였고, 1988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총회에 가입하였고, 지역사회와 한국민단에 집중적으로 전도하였지만, 한계상황에 이르러 기도하는 중,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받고 1989년 4월에 다시 한 번 교회가 이전하여, 지금의 건너편인 大阪市東成区東小橋3-20-11 긴끼빌딩 3층의 35평으로 이전하면서, 교회 명칭도大阪中央教会로 개명하였습니다.
1998년 말에는 교회 연간 결산도 2천 만 엔 가까이 되면서 교회가 활기를 띠고 부흥했지만, 그 여세를 몰아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작정하고, 일본인 전도에 힘을 보태려고 예배를 일본어 예배를 도입하면서 급속히 신자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20명도 채 남지 못했습니다.

2. 그 와중에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의 선교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1999년 9월에 미국 센프란시스코 바이블 칼리지 엔 세미나리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2002년 8월 11일에 다시 한 번 교회를 지금 이곳으로 이전하여 첫 예배를 드렸고, 2004년 11월 28일에 교회창립 20주년 기념예배에 한울교회 김근수 목사님을 모시고 기념 감사예배를 드림으로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6년에 GMS훈련을 받고, 한울교회의 정식 파송 선교사가 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에 가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사카중앙교회를 개척하여 지나온 25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길고 험난한 세월이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는 물론 형연하기 어려운 배신과 아픔들이 지나갔습니다.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우상들을 타파하고, 귀신들을 좇아내며, 한나와 같이 출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태를 기도로 열어 많은 생명들이 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그런 기적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다 성장하여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며 신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3. 그러나 이 25년의 세월을 저 혼자만의 외로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초창기부터 함께 신앙을 이어온 믿음의 성도들이 온갖 고난과 희생을 쏟아내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있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 그리고 교회의 오늘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 세우신 많은 조직과 단체들과 건물들과 기관들이 있지만, 이 교회만큼 많은 영향력과 생명력과 축복을 가지고 이 세상에 공헌한 단체는 없습니다.
이는 교회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기능이나 조직이나 사명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늘나라와 우리의 생명의 구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 바깥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흉내 낼 수 없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며,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참 진리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 오사카중앙교회가 하나님 앞에 받은 지상의 명령이요 사명이기도 합니다.

4. 그러면 우리가 일본이라고 하는 이 이방 땅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고 함께 걸어온 신앙의 세월, 광야같은 이 길을 걸어온 25년은 어떤 세월이었습니까?
첫째로, 이 길은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싸움의 처절함이 있었던 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 가운데서 출생하였고, 그 죄가 주는 고통과 저주속에 갇혀 내일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롬7:14-15절에 보니,「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했습니다.
의롭게 살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몸부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죄가 주는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에 팔려, 죄가 원하는 대로 죄를 짓고 한탄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고통과 저주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25년간의 말씀을 붙들고 죄를 끊어버리고,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우상과 미신과, 심지어 공산주의 사상을 끊어버리고, 술과 마약, 동성애까지 끊어버리는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성령님은 도우셨고, 우리를 매년, 매 달, 매일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끊어버리기 어려웠던 것을 끊어버리고, 견디기 어려웠던 것들도 인내하게 되었고, 감당할 수 없었던 것도 넉넉히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분노와 의심과 한탄이 우리의 삶을 지배했지만, 지금은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사랑 안에서 우리 가운데 넘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많이 변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5. 둘째로, 살아남기 위한 매일의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40년 광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이 40년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25년이라는 광야의 훈련이 있었습니다.
광야는 비바람과 독충과 견디기 어려운 더위와 추위가 반복되는 곳입니다.
최악의 생존환경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아침마다 만나를 먹이셨고, 모든 사방의 대적에게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25년의 광야세월을 보내면서, 이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하시고, 고독함과 부족함과 연약함의 고통 속에서 우리를 시험하심으로 강한 영적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습니다.
일본의 영적 환경이 얼마나 열악합니까?
일본의 사신 우상과 죄악의 소굴 같은 이곳에서 눈만 뜨면 만나는 죄의 유혹과 시험거리를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말이 교회요, 십자가가 걸려 있지만, 믿음의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무능하고 위선적인 종교껍데기만 쓰고 있는 일본의 교회현실을 우리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의 성도로서 살아남기 위한 이 처절한 몸부림을 보시고, 만나를 주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은 은혜를 베푸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기도가 귀한 줄 알게 되었고, 남들보다 배나 희생하고 수고하는 것이 더욱 값지고 보람 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고, 세상에서 위로받기 보다는 주님의 오실 재림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소망의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6.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이 광야 같은 세상 한 가운데로 통과하였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4)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7)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11)고 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23)다고 했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24)다고 했습니다.
이미 가고 없는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권세를 이기고,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 자체만으로도 광야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위에 주님의 몸된 이 교회를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멍에를 멘 삶을 자청하였으니, 어찌 우리의 삶이 고단한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25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내가 하고자 한 것 이전에 주님이 우리를 이런 광야로 몰아내신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광야에서 단련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7. 셋째는, 믿음의 공동체를 사수하는 일에 남은 미래를 사용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고난은 훈련이고, 광야는 그 고난의 학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 같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홍해에서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몇 번씩이나 애급으로 돌아가려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세상 권력이나 물질이나 세상의 향락이 우리의 신앙을 타협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 이상 생명의 출산을 하지 못하도록, 교회가 더 이상 전도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더 이상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나봇의 경우, 하나님이 자기 조상에게 주신 유업을 왕명을 거절하면서까지 지키려다가 피 흘려 순교했습니다.
평신도 스데반이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위해 그렇게 희생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이민 사회에서 교회가 20년의 세월이 지나면, 전통적인 교회로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특히 25년이라는 세월은 사반세기의 세월로, 거의 한 세대에 가까운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나름대로의 신앙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공동체로서의 연륜을 쌓아 올렸기 때문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더 많은 영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와 같습니다.
배는 물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지만, 물이 배 속으로 들어오면 가라앉고 맙니다.
지상의 교회가 세상 한 가운데 있지만, 이 세상과 타협하면 생명을 잃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방주는 멀리 빨리 달려가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다 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됩니다.

8. 과연 25년의 오사카중앙교회의 길은 광야 같은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영영 넘어지지 아니하고 칠전팔기의 기세로 다시 일어나는 것은, 그 길이 연단의 길이었고, 동시에 초자연적 능력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고통과 고독과 눈물과 때때로의 패배며, 많은 아픔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유월절처럼 다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앞으로 받을 복이 무엇입니까?
일본복음화, 세계선교, 천국일꾼 양성, 성전 건축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대업을 이루도록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반드시 축복하실 것이고, 이 대업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교회의 본연의 모습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넘치는 축복의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힘을 모으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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