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5.감사와 기쁨(역대기상29:1-14)

[성경본문] 역대상29:1-14개역개정

1.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며 이 공사는 크도

2.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또 마노와 가공할 검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모든 보석과 옥돌이 매우 많으며

3.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4.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

5.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6.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7.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8.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드렸더라

9.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10.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

11.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감사와 기쁨(역대기상29:1-14/2009.10.25.추수감사절)
1.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이 지금은 신촌 연세대학 자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1960년대만 해도, 서울역 건너편 퇴계로와 남대문길 사이의 삼각형을 이루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병원은 선교사 알렌이 광혜원을 설립하여 환자들을 치료했지만, 턱 없이 모자라는 시설과 재정과 인력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중, 이 현실을 본 에비슨이라는 선교사가 1899년 국제선교사 대회에서, 조선 땅에서 당하는 선교사들의 어려움과, 아프면 병원은커녕 그냥 죽어야 하는 조선의 어려운 현실을 호소하자, 그 자리에 있던 루이스 세브란스라는 사업가가 감동을 받아 자신의 재산 1만 달러를 기부하여 1904년에 한국 최초의 종합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1934년 세브란스 씨가 임종하면서 세브란스 펀드를 만들어서 그 이익금으로 계속 기부하라고 했고, 1955년에 7천 달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천억 원에 달하는 재정을 지원하여 120여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고, 지금은 직원이 8천5백여 명, 일 년 예산이 1조 2천억 원에 2천여 병상의 규모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료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국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한 사람을 감동시켜 한국의 선교역사와 더불어 병원의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4반세기의 역사를 맞이하면서 흩어진 유대인들처럼 이방 땅에서 신앙의 맥을 이어가는 디아스포라 교회로서, 신앙의 영적 자산을 지키고, 다음 세대를 통하여 더 큰 선교의 소망과 축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건축을 하겠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법인 한일 세계선교회를 조직하려던 것을 뒤로 미루고 먼저 건축하자는 의견을 모아 내년 1월까지 이 일을 추진하면서, 먼저 제직들이 특별 헌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교회를 사랑하고, 일본 선교의 미래를 위해 세브란스 씨처럼 감동을 받아 헌신한다면, 잠시잠깐 후에 우리는 가고 없을지라도, 우리가 주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한 희생들이 오고 오는 세대를 이어가면서 풍성한 복음의 열매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2. 오늘 본문도 다윗 왕이 하나님 앞에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아낌없이 헌신함으로, 그 아들 솔로몬으로 이 대업을 이어 완성하게 함으로 이스라엘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역대상 29장에서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활동 내용이 함께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를 이어가면서 하나님 앞에 받은 그들과 그들의 백성이 받은 축복이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건축은 모든 시대마다 주어진 믿는 자들의 대업입니다.
우리에게 가정이 필요하듯이 가족이 모여 사는 집이 필요하듯이, 이 지상에서 믿음의 공동체도 함께 모여 천국 잔치를 하며, 하나님께 예배로 영광을 돌리며, 믿음의 자녀들을 양육, 훈련하기 위해서는 교회 건물이 필요합니다.
성전건축,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이미 우리에게는 광야 시대가 지나고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뿐 아니라, 12지파로 흩어져 있던 구심점을 잃어버린 사사기와 같은 지파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견고한 국가의 깃발아래 신앙과 신학의 일치로 일본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새 시대의 도래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이 형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25년 전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감사와 감격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데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고,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복을 주셨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거쳐 갔고, 얼마나 많은 기적과 사건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거쳐 지나가는 곁가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 자녀들과 더불어 이 믿음의 공동체의 중심을 이루게 하신 것은 우리가 받은 특별 은총이며 축복인 줄 믿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 분의 특별한 역사를 위해 택함 받은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2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그 때를 기다릴 때, 마침내 성령강림으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 충만하여 교회의 역사를 시작한 것처럼, 나와 여러분과 우리 자녀들에게는, 우리로 인내하게 하신 만큼의 놀랍고 큰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줄 믿습니다.  

3. 그러면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그 온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어떻게 이 엄청난 큰 역사를 이루었으며, 그 결과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21세기 이 시대에도, 이 일본땅 오사카에도 같은 능력 같은 역사, 아니 더 큰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들은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힘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힘을 다했다는 것은 대단한 열심, 대단한 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성전 건축을 위해 자신의 최선을 다해 역사할 뿐 아니라, 그 위에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과 개인의 모든 비장품들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2006년1월, 일본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네바 히데쯔구라는 건축사가 건물의 철근을 최소한으로 줄여 시공함으로 건축비를 대폭 절감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위장서류를 꾸며 건물을 완공시킨 사건들입니다. 이 사건에 많은 건축회사들과 건물 주인들도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전국의 맨션들과 호텔들과 다른 건물들이 붕괴직전에 있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이 출입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많은 벌금을 물고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많은 돈을 들여 짓는다고 해도, 성도들의 정성이 없으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29살에 일본을 건너오기 전에, 이미 교회 건축에 3번이나 참여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하면 생애 4번째가 됩니다.
그런데 제일 기억나는 것은 중학교 시절에 여름 방학 내내 몸으로 봉사한 서울 창동의 창현교회(현 갈릴리교회)의 건축입니다.
그 때의 헌신이 저를 목사와 선교사가 되게 한 것 같습니다.
성전에서 힘을 다해 섬기면, 믿음이 자라고, 사랑의 은혜가 넘치며,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은 그 성전을 통해 축복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의 기회요 축복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한나는 사랑하는 아들 사무엘을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의 성전으로 보내 그곳에서 제사장을 섬기며 성막의 일을 하게 했더니, 그가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성전건축은 우리 일생일대의 기회요 축복의 자리인 줄 믿습니다.

4. 또한 5-6절에 보니, 그들이 하나님께 즐거이 드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림이 인색함이나 억지나 눈치를 보거나 계산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드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에 부모 노릇은 누가 명령해서,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어수룩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도 결혼하고 가정을 만들고 자식을 낳으면, 부모의 노릇을 잘합니다. 경험이 없어도 잘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성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해서 이 자상에 생겼습니까?
주님의 십자가 은혜, 그분의 보혈로 값주고 산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면, 그분의 보혈이 이 교회 한 가운데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 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게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눈 밝았네 참 내기쁨 영원하도다」(138장.)    
제가 21주년을 맞으면서 쓴 목회칼럼을 잠시 인용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년 내내 감사 예물을 드렸고, 교회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늘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는 인색하였고, 무관심할 정도로 태만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마음을 드리면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렸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렸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는 주님의 마음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심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심으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드렸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로 씨름하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 이 사랑의 역사를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그 분의 구원의 역사, 사랑의 행위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드림으로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들의 진정한 감사 또한, 우리 몸을 드림으로 완성되어 지는 것인 줄 압니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는 많은 일들을 치러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번 행사가 끝나면 어떤 놀라운 영적인 결과가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행사가 끝나고 나면, 메마른 가을의 가랑잎 떨어지듯 그렇게 썰렁한 분위기를 맛보아야만 했고, 때로는 심각한 좌절감까지 맛볼 때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와 분주함은 있었지만 몸을 드리는 진정한 감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늘 드리던 우리의 마음과 더불어 우리의 몸도 드림으로, 살아있고 감동이 있는 온전한 감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만 분지 일이라도 갚기를 원한다면 억지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자원하는 마음이, 재물을 드림으로 감사가 넘치고, 몸을 드림으로 기쁨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5. 특별히 6절에 보니,「이에 모든 족장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감독이 다 즐거이 드렸」다고 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였습니다.
각 지파는 물론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지도자들이 먼저 나섰습니다.
같은 교회에서 같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열심히 헌신하고 드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헌신하고 감사하는 자들에게는 드림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몸을 드렸을 때 내 마음에 일어나는 반응이 다릅니다.
내 물질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감사할 때, 세상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집에서 한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悲しみが乾くまで슬픔이 마를 때 까지」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두 아이를 가진 여자와 그 남편의 절친한 친구인 마약중독자 남자가 서로 격려하고 도우면서 많은 장애물을 넘어 자립하고 재생의 길을 걸어가는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입니다.
남편 친구가 마약을 끊은 지 39일째, 남편을 잃은 그 상실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 여자가 마약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마약의 기분을 물었습니다.
그 때 이 남자가 하는 말은, 마약의 기분은 천사의 키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뿐이라고 하면서 그 이후에는 마약에 끌려갈 뿐이라 했습니다.
고통스럽고 비통하고 죽지 못해 사는, 그러면서 마약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그 기분을 솔직하게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얻는 기쁨은 다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요15:11)이라 하였고, 그래서 요14:27절에서 평안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누리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들의 태도입니다.
감사에도 헌신에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받은 은혜와 축복도 남달라야 합니다.
전도해서 데려다가 같이 앉아 예배하면 새로운 사람은 누구를 잘 보는가?
전도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은혜를 받고 있는가? 이 사람의 태도를 봅니다.

6. 왕과 온 백성들이 힘을 다해 드리고,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고, 지도자들이 본을 보인 결과가 무엇입니까?
9절에 보니, 왕과 온 백성이 기쁨으로 충만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기쁨입니까?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은혜를 나누고 있지만, 우리 인생의 크기란 내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0절 이하에서 다윗은 자기가 믿고 순종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어느 정도 위대하시며, 어느 정도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만 합니까?
다윗은 성전 건축을 허락받지 못했지만, 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 그 정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1절에 있는 말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왕으로서는 아직 어리고 성격이 모질지 못하고 모든 면에 굳세지 못하기 때문에 다윗왕이 아들의 분량까지 다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건축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많은 장애물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의 살아생전에 모든 것을 준비하겠다는 결심입니다.

7. 다윗왕의 지혜는 이 성전건축이라는 위대한 축복의 자리에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과 지도자들이 다 참여함으로 가장 위대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역대하로 내려가면, 하나님이 솔로몬의 나라와 왕위를 심히 창대케 하셨다고(대하1:1)하였고,「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1:15).
은과 금을 주의 성전건축에 드렸더니 백성들 가운데서 더 많은 은금이 넘쳤다는 말입니다.
백향목으로 성전을 건축하였더니, 뽕나무 같이 흔한 나무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아니 심은 것은 적은데, 그 안에 넘치는 정성과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드린 것으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에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이 임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건축은 우리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다음번의 추수감사절은 새성전에서 드리고, 우리가 받은 축복과 은혜가 이 건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축복의 잔치가 되고, 하나님께는 더 큰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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