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6.22.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고린도전서15:1-1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1-11개역개정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고린도전서15:1-11/2008.6.22.오전) 1. 미국에서는 나이 50이 되면 한국의 환갑잔치처럼 한다. 친구 목사들도 해외 여행을 다녀오고 하는데, 어떤 부부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덧 50이 되었고, 그 때 천사가 찾아와서 그동안 수고 많았으니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아내는 세계일주 여행하는 티켓을 달라고 하니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그런데 남편은 천사를 저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귓속말로, 나는 세계여행을 나보다 30살쯤 젊은 여자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천사가 그렇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그 남편을 80살 노인으로 만들어 놓고 여행을 시작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조강지처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닌데, 이 세상에는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상대방의 은혜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아 놓으면 그것이 국민의 덕인 줄 모르고 자기가 잘나서 대통령이 된 줄 알고, 또 대통령이 열심히 해서 나라를 잘 살게 해 놓으면 그것이 대통령의 덕인 줄 모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 도움을 받으면 그 때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자기가 잘 나서 해결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여행 온 사람들, 유학생들을, 일하러 온 사람들을 교인들이 열심히 도와줘도 돌아가면 전화도 편지도 없습니다. 그럴 때 사람의 마음은 섭섭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면 내가 남을 도왔다는 것, 너무 작은 것들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들은 어떻습니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를 모든 죄와 저주와 고통에서 자유케 하려고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가장 큰 고통 중에 죽게 만드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시며, 성령으로 우리를 돕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날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감사는 하고 있습니까? 그 분이 내 정성과 헌신을 원하여 내 몸을 요구할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교회를 위하여 기도와 눈물이 필요할 때, 우리는 무엇하였습니까? 불쌍한 이웃을 위하여 주님대신 사랑으로 섬기라고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입으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면서도 내 몸 한 번 드리지 못하고, 온전한 정성 한 번 쏟지 못하면서, 도대체 그 흘리는 눈물은 무엇이며, 그 받은 감동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논하면서,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8-10절에 보면 바울은 입에 붙은 말이 아니라, 그 심령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에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는가? 그 분의 은혜를 알면서도 왜 보답하는 삶을 살지 못했는가? 1991년, 성지순례를 갔다가 유럽의 교회들을 들어가 보니, 그 크고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 안에는 늙은 노인 몇 사람뿐이었습니다. 젊은이는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젊은이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은망덕한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3. 신자라고 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도리어 불평, 원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그 은혜를 깨닫지도 못한 채 습관적인 신앙생활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며, 어떤 사람들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에 감격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9절에서,「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미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잡아 가두고 죽이는데 내어주던 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행전 9장을 보면, 하나님이 그러한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그를 변화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원수된 사울을, 교회를 죽음의 핍박으로 몰아넣는 사울을, 하나님은 전도자 바울로 만드셨던 것이다. 은혜를 모르던 자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바 그 은혜가 무엇이며 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하셨다. 사울이나 우리나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는 내 안에 충만한데, 그것을 은혜라고 여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분의 베푸신 은혜가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믿음의 사람으로 은혜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은 핍박자 사울로 그 은혜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고백은「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10)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어떤 죄인이라도 새사람으로 만들며, 신앙을 핍박하는 자라도 복음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게 하셨습니다. 청송감옥에 전도 다니시는 장로님 한 분이 계셨는데, 그곳에 지체 부자유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전부 땅속 깊은 곳에 묻었는데, 범행이 드러나 조사해보니, 도무지 혼자의 힘으로는 땅을 팔 수도 없는 그런 몸을 가지고 가족을 죽이고, 땅 속 깊은 곳에 묻었으니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러 가면 이 장로님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자꾸 피하는데 보니 귀신이 들렸고, 귀신의 힘으로 죽이고 매장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은 결국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 믿게 만들어 새롭게 하여, 감옥에서 전도자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내 지식이나 능력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알게 하시는 분 하나님이 알게 하십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나의 믿음, 나의 구원, 나의 생명, 나의 삶, 나의 가족과 직장까지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분이 나를 위해 죽었고, 그 분이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하여 모든 생명의 주가 되셨음과, 이 죽음과 부활이 성경에 예언되어진 대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난 이후의 바울의 심정은 무엇입니까? 나는「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라고 하는 존재가 인간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란 말은, 사도로 불리울 만한 자격도, 능력도 없으며, 사도 구실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들이 날 몰라준다, 내가 누구냐? 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점점 교만한 자리로 나아가다가 크게 어려움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자는 겸손할 뿐 아니라,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잘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또한「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다 함으로, 자신의 과거가 어떤 것이며,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만하게 행하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오를 숨기지 아니하고, 자신의 부끄럼을 감추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전부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바울은 이것을 간증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나타내었습니다. 나의 허물과 연약과 부끄럼을 숨기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신앙의 부흥은, 회개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회개 운동이 아니라 말씀을 배우는 사경회 가운데서 한국 교회의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실제로 다른 사도보다 영적으로 약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크고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약함과 과오와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히 시인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새로운 은혜가 충만했던 것입니다. 6. 그러면 은혜받은 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은혜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본문 10절에 보니「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남편 사업을 위해 어렵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다가 밀어주는데, 사업한답시고 다니면서 술 마시고 나쁜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다 탕진한다면 아내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미화원으로 파출부로 어렵게 살면서 하나뿐인 아들을 대학교수 한 번 만들어 보려고 수고하는데, 정작 아들은 연애나 하고 돌아다니며 방탕한 생활한다면, 부모의 수고는 다 헛된 것입니다. 정말 불쌍한 것은 본인이 아니라 그런 못난 아들에게 소망을 둔 부모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베푸신 은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능히 헛되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핍박자요 종교 살인자와 같은 악독한 사울이라도 한 번 베푸신 은혜로 인하여 사울은 가장 위대한 전도자 바울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바울에게 은혜를 은혜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운 삶을 살려면 먼저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며,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그 앞에 나아가야 하는 줄 믿습니다. 7. 바울은 믿었고 확신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3-4절에 기록된 말씀으로「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내)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사셨」다는 사실입니다.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고난 당하시고,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또한 나의 영원한 미래를 위하여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모는 은혜가, 이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만세 전부터 나를 위하여 계획하셨던 일이라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10) 고백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그 은혜에 감격하여 이 몸드려 충성된 삶을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오늘이 있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신 것도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사울에게 하나님은 은혜에 은혜를 더욱 부어 주심으로 위대한 사도의 길을 간 것처럼, 오늘 우리도 연약하고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그의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몸을 복음을 위하여 아낌없이 드리면, 우리엑 더 큰 은혜의 삶을 살도록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