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2.예수님의 마음(빌립보서2:5-8)

[성경본문] 빌립보서2:5-8개역개정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마음(빌립보서2:5-8/2008.3.2.오전)


1.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마11:28에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29)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는  '부드러운 것'을 뜻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는데, 어린양에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란 뜻이 내포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지 않고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대속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분의 온유한 성품을 나타낸 것입니다.
양은 다른 짐승에게 해를 당하는 일은 있어도 해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마12:18-20에,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하면서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한」다 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나타낸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심지가 꺼져 가면 아주 비벼 꺼버리고 맙니다. 갈대가 상하면 아예 짓밟고, 꺾어버리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보존하시는 분입니다.

3. 여리고 지방에서 맹인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 질렀습니다. 제자들은 떠들지 말고 잠잠하라고 야단쳤지만, 그들은 계속 소리 질렀고, 예수님은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을 불러, 너희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셨고, 보기를 원한다고 하자, 주님은 당장 그들의 눈이 볼 수 있도록 치료해 주셨습니다.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속국으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딱한 사정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목자 없는 양처럼 여기셔서 백성들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홧김에 차고 있던 칼을 빼서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다시 칼집에 넣으라고 하시면서, 대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경계하시고 순순히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법정에 끌려 다니시면서 많은 곤욕을 당하셨지만, 모든 것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잠잠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면서 못 박는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온유하신 주님의 성품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도 향기를 풍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이 온유하셨기 때문에 자기를 해치는 원수에게까지도 온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강하셨고, 담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백성을 긍휼히 여기신 것은 그 온유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4. 예수님은 마음이「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마5:5)고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지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이깁니다. 온유한 사람이 마지막에는 이 땅을 차지합니다.
미국에 「루터 버벵크」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육종가로 웹스터 사전에 그의 이름을 따서「Burbank」라는 단어가 실렸는데, 이 단어의 뜻은 「선택적 육종을 통해 식물이나 동물을 개량하다. 비유적인 의미로 좋은 형질을 택하고 나쁜 형질을 제거하여 방법이나 제도를 개선하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일생동안, 1,000여종의 식물의 신품종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3주에 하나씩 개발해 낸 꼴입니다.
그는 1849년 미국 메사츄세스에서 가난한 흑인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세계적으로 위대한 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방법이 놀랍습니다. 「나는 식물들을 독특하게 기르고자할 때에, 나는 무릎을 꿇고 식물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식물에게는 인간에게 있는 지각의 능력과는 형태가 다른 20여 가지의 지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시 없는 선인장을 만들어 낼 때에는, 선인장에게「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 그러니 너는 이제 가시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내가 널 잘 보살펴 줄 테니까」라고 선인장을 안심시킴으로 가시를 내지 않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험을 통하여 식물들과 먼저 신뢰를 쌓고 식물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자신이 그들에게 싶은 애정과 존경심을 품고 있음을 알려 줌으로 그들을 안심시켰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육종 개념은 사람들에게도 적용을 시켰고,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다고 했습니다.
주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시면서 우리 마음의 강퍅한 가시를 제거하시고 온유하고 부드러움 마음을 주시고 그 위에 평안과 기쁨을 주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셨습니다.

5.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마구간에 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가 왕궁에 나지 아니하시고 마구간에 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고 하지만 마구간에 나신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보다 더 겸손하실 수는 없습니다.
나셔서 처음 누우신 보금자리가 말구유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볼 때 가난하게 지내셨습니다. 친히 말씀하신 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8)고 하실 정도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사실 예수님만큼 가난한 사람은 오늘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벌 옷이 없었습니다. 한 벌뿐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옷 한 벌로 사시는 분은 아마 안 계실 것입니다. 갈아입을 것은 있을 것입니다. 겨울 옷 가지고 여름까지 입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벌 옷으로 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옷장에 옷걸이가 휘어지도록 사시사철을 따라 많은 옷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으로 족한 줄을 아는 것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사셨습니다. 권력자나 부자의 친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 무식한 사람,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의 친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난하고 흉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 가정의 온 식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6. 그러나 이런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던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우리 가운데 제일 높으냐? 누가 제일 크냐? 하는 것 때문에 싸움이 났습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는 먼지가 너무 많아서 밖에서 들어올 때면 꼭 발을 씻어야 했는데, 넉넉한 집에서는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종이나 하는 일을 하나' 해서 누구 하나 발을 씻어주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내가 왜 종이나 하는 발을 씻기는 일을 해' 하고 생각하면서 서로 눈치만 보면서 버티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손수 대야에 물을 떠다가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겨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선생이 되어서 제자들인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한마디로 「너희도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낮아지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더러 겸손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멸시의 눈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7.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를 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앞에서 청산유수처럼 기도하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다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하늘을 향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지은 죄를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기도하는 세리의 기도는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겠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57:15절에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고 거룩한 곳에 거처를 삼으셨지만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겸손한 심령을 부흥케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겸손을 최고의 덕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친 것만 아니고 예수님께서 친히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의 도, 종의 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어거스틴도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덕을 말하면서 "첫째가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8.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마음은 용서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씨는 2년간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이번 월간조선 3월호에 인터뷰에 나왔는데, 감옥 속에서 꼭 손보고 싶은 사람이 3사람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성경을 두 번 반을 읽고는 마음에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는 하셨는데 나는 아직 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 용서하고 나니, 바로 그날에 그렇게 기다리던 대법원 선고 날짜기 잡혔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용서하니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형무소의 간부가 말하기를 고위급들이 형무소에 들어오면 꼭 손 좀 보겠다고 마음에 칼을 가는 대상이 세 사람씩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까지도 용서하면 감옥에서 나가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길을 막고, 나를 고통하게 만드는 것이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나를 고통하게 만드는 것이고, 바로 내 자신이 내 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용서할 때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물론 용서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도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얼마나 강퍅합니까? 사막과 광야 같아서 나무들이 가시가 돋쳤고 건드리면 찌르고 고통을 줍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꼭 품으면 사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백합이 찔리면 향기를 더 발하는 것처럼, 우리가 찔리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하게 될 것입니다.
부부 사이의 가시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사이에, 친구 사이에 그 어떤 인간관계의 모든 가시를 빼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주간을 앞두고 우리 모두가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함으로, 그리스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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