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6.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사야 40:27-31)

[성경본문] 이사야40:27-31개역개정

27.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사야 40:27-31/2008.1.6.오전)
1. 우리가 능력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왜 능력을 받지 못합니까?
한마디로 불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잘 모르면 반드시 원망, 불평, 낙심하게 되고, 그래서 인생에 실패가 오고 고통과 멸망이 옵니다.
우리의 믿음이 능력 있는 믿음이 되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려면,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불신앙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워낙 오랫동안 불신앙에 사로잡혀 살다보니까, 그것이 마치 자신의 삶의 일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된 생활습관, 삶의 여러 가지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우리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저항한 번 해보지 못하고 불신앙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위로부터 내려오는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온갖 선한 것들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영적인 패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진 우리의 생각입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내 속에서 마치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는 것처럼, 베푸시는 일에 매우 인색하거나, 용서하심에 주저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세상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품에 계시는 유일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안다면, 그 때부터 불신앙의 뿌리는 뽑혀질 것이요, 눈 녹듯이 불신앙의 세력이 소멸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27절에,「아곱아---이스라엘아」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인본주의로 살 때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고 새롭게 주신 이름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신분에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한 축복받은 이름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이 달라지고, 축복과 능력이 임한 이후에, 신분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도 나만 그대로입니다.
옛날 생각과 옛날 방식, 옛날에 가진 고집 그대로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새해가 되었으면, 무엇 좀 바꿔봅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사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 이외에는 다 바꾸라고 호령한 것이 옛날이야기이지만, 그 때부터 삼성이 변화되기 시작했고, 세계의 삼성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던 방식대로 안되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불신앙의 특징은 나는 그대로 있고,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하였고, 예수님도「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5:38)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전진과 진보를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아 이스라엘아」하면서 옛 이름과 새 이름을 번갈아 부르시는 것입니다.
 
3. 문제는 우리가 새해를 맞았고, 주신 사명도 감당하려면 능력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능력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형편을 생각해보니, 마치 불신앙의 집에서 문간 단칸방의 셋방살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28절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여기,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는 이 말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심을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너만 모르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더 이상 다른 증거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증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코끼리 비스킷 같은 내 능력을 믿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는 창조의 능력을 소유하시고, 온 세상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땅 끝까지 이르도록 자신의 계획과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분 인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한없는 능력과 명철로, 지금 내 인생을 영원까지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29-30절은 이 세상의 한계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피곤한 자---무능한 자」,그리고「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되」.
바로 이것이 인간의 한계상황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것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피곤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과 한계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소년이든 장정이든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누구나 예외가 없이 인생은 고통이요 실패요 어려움의 반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믿고, 세상이 제시하는 청사진에 장밋빛 인생을 꿈꾸지만 결국에는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갈 곳이 없을 때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창조의 능력과 한없는 명철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완벽한 환경인 에덴동산에서 왜 아담이 실패했습니까?
자기 꾀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상)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창3:6하)다 고 했습니다.
그 결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29절에 반복하기를「주시매」,「더하시매」라 하였고, 31절에도「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나 무능한 자나 관계없이 도우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찬송가에도 있지 않습니까?「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411장).

5. 셋째는 여호와를 더욱 앙망해야 합니다.
여기「앙망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키와」로, 강건하다, 기다리다, 기대하다는 의미로,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인내하면서 그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철학자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 했습니다.
진주만 기습공격을 성공한 일본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의 힘을 두려워 했고, 그러므로 미국과의 싸움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가 유학시절 미국에서 본 미국의 힘이란 것이, 자동차 산업과 유전,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작은 도시라도 반드시 도서관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책을 통하여 배우는 것이 힘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힘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것은 내게 능력이요 힘이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남이 도우러 올 때, 자기 힘을 빼야 삽니다.
내 힘으로 살려고 붙잡으면 물마시고 정신 잃어버릴 때 까지 기다렸다가 힘 다 빠진 후에 건져줍니다.
우리가 새 힘을 얻는 길은, 지금까지 붙잡았던 것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31절에 기록된 대로 힘써 달려가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분명한 목적이 없는 사람은 많은 능력과 소유를 가지고도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러나 무능한 자라도, 지혜가 부족한 소년이라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힘써 달려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시고 내 인생의 빈 잔을 차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줄 믿습니다.
31절에 처음부터「오직」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이것 하나뿐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달음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달음질하는 자는 더 멀리 갈 것이고, 더 많이 얻을 것입니다.

7.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새해를 맞이했으니 위로부터 내려오는 새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능력 받아야 주님의 일도 할 수 있습니다. 4대 목표도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불신앙의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27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줄 믿습니다
믿음의 세계는 먼저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에서 능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한 해 365일 통하여 새 힘을 주사, 내게 주신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넘치게 축복하시는 줄 믿기를 바랍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