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2.중보기도의 능력(요한일서 5:14-17)

[성경본문] 요한Ⅰ서5:14-17개역개정

14.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중보기도의 능력(요한일서 5:14-17/2007.5.2)
1. 21세기 과학과 물질의 만능 시대를 주관하는 인간이 무엇입니까?
권력과 부귀에 관계없이 인간은 늘 죄에 연약하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이미 타락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반석위에 굳게 믿음을 세운 듯하여도 언제 넘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연약한 인생을 위해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요, 기도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러나 이 영적 싸움을 혼자서는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믿음의 형제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는,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며, 예수께서 그를 위하여 대신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또한 우리는 이 시대의 거룩한 영적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의무로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무엇보다도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곧, 그를 향한 확신과 담대함을 가진 기도입니다.
또한 이 기도에 대한 분명한 응답의 확신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영생에 대한 확신도, 능력도, 응답도 체험할 수 없으며, 늘 사단에게 속아 살면서 방황하고 고통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2. 오늘날 기도에 대하여 의문을 갖거나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명히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말씀하셨고, 주님도 구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마7:7), 이 놀라운 은총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단순한 종교적인 의무나 예배의 형식 중에 하나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기도했지만, 응답과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망함으로, 기도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본문 14절에서도 분명히 말씀하시길,「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3.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담대함을 얻습니다.
여기서 「담대함」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팔레시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요한의 서신에서 4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2:28절과 4:17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는 담대함을, 3:21절과 본문 14절에서는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에서 오는 담대함을 말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사실을 15절에서 「우리는 안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능력도 아는데서 옵니다. 기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더 큰 능력과 은혜가 임하는 줄 믿습니다.
그 다음에 기도하면 할수록 더욱 기도에 힘을 쏟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4절에서 우리가 구할 때마다 주님이 들으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속된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스스로 변화되기는 어렵습니다. 변화가 있다고 하여도 표면적인 변화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며, 동시에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증거하기를,「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도할수록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응답이 넘쳐나게 됩니다.

4.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열심히 기도하여도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응답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응답 받는 기도의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서 밝히기를,「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는」것입니다.
흔히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자신의 뜻과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의 기도이며, 결코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기도는 아닙니다.
문제는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만 합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도는 전투가 아니라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전투는 우리의 능력과 의지를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관철시키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지만,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은 도리어 상대방의 뜻과 의지를 나의 순종함을 통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에게 기도가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주시며, 어떤 기도가 참된 기도인가를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된 상황에서도,「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하였습니다.
참된 기도의 응답, 놀라운 능력의 경험은 내 뜻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우리 자신을 굴복시킴으로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5. 그런데 14절에서의 그의 뜻, 곧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이란 무엇입니까?
16-17절을 보면, 범죄한 형제에 대한 중보의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죄 짓지 아니하는 자는 없습니다. 완전한 의인도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죄와는 상관이 없는 몸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싸움에서는 혼자 싸워서 악한 대적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인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롬8:26)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보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믿음의 형제들을 위하여 함께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열심히 중보기도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15절의,「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는 말씀입니다.
기도응답의 시작은 먼저 내 속에서 일어납니다.
사도 야고보는 기도에 대하여 말하기를,「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서,「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7)고 하였고, 주님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내 안에 일어나는 첫 번째 변화는 확신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며, 기도는 확신으로 이어지고, 확신은 마침내 의심이나 요동함이 아니라 담대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바로 이 담대한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은 기도응답의 증거인 줄 믿습니다.
더 많이 기도하되, 어려움을 당하는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모든 범죄에서 형제들을 구원하게 하며,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로 하여금 더욱 뜨거운 사랑과 능력있는 치유를 맛보게 합니다.

또한 이러한 중보의 기도는 우리가 제사장의 사명과 책무가 있음을 알게 하며,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영광을 얻을 줄 확신합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