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21.두려움을 이기는 것(요한일서 4:17-21)
[성경본문] 요한Ⅰ서4:17-21개역개정
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요한일서 4:17-21/2007.3.21)
1. 인간이 출생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늘 얼굴을 마주보고 싸워야 하는 적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자신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이고, 실패에 대한 것과, 건강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두려움도 많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이 사랑을 잃어버리거나, 사랑받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명퇴에 대한 두려움,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 테러의 공포, 그리고 종교적인 두려움으로서 신에 대한 두려움, 형벌에 대한 두려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곗놀이 하면서, 자기 몫을 받을 때까지는 자기돈을 내 놓고도, 자기의 몫을 받을 때까지 내내 두려워합니다. 성형수술 붐이 일어난 것도 두려움의 결과입니다.
아무튼 두려움이라는 것은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두려움에서 탈출하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전쟁과 기근을 만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우선 충분한 양식을 확보해 놓아야 안심이 되고, 질병에 대한 공포를 가진 사람은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면서 이 검사 저 검사를 받아 보아야 안심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점쟁이 찾아가고, 무당굿을 해야 안심이 되고,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재물을 모으거나, 아예 쾌락에 빠져서 그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시도는 다 두려움에서 해방 받으려는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없습니다.
2. 창3:8절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까?
그의 계명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실제로 생활 가운데에 나타났고, 이 고통은 오늘날까지 전이되고 있습니다(창3:17-21).
그리고 시편 27편 1절 이하를 보면,「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하며, 또한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다고 하면서 두려움에 대한 반복된 표현이 나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연약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스스로에게 이르기를,「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14)고 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어디를 가더라도,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이 두려움, 혹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인간은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본문 18절에,「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평생에 이 두려움을 이기고, 이 두려움을 내 삶에서 몰아내는 것은 참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3.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만일에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지금 세상 한 가운데에 있었다면 얼마나 불쌍한 존재가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끊임없이 몰려오는 많은 문제로 인하여,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고민을 홀로 지고 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민하고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고민하면 할수록, 염려하면 할수록 우리 속에서는 더 많은 두려움과 공포가 뿌리를 내리고 깊숙이 자리를 잡아, 이것들이 우리 인생의 모든 생을 파괴할 뿐입니다.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는 저자인 강영우 박사는 미국 백악관의 정책차관보를 지내는 고위 공직자가 되었고, 전 세계의 장애자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가 미국 장로회 총회 출판사인 죤 녹스 프레스를 통하여 출판된「빛은 내 가슴에」라는 영문판의 자서전적 책을 죠지 부쉬 대통령에게 보냈는데, 백악관에서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던 것은 당신의 책에는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들이 담겨 있습니다. 신앙, 불굴의 의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 그리고 주위의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숭고한 사랑가ㅗ 따뜻하 인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끝까지 그분을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눈물도 이별의 슬픔도 실명의 절망과 고뇌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진리를 증명하는 산증인입니다. 」고 했습니다.
인간 강영우, 그것도 6.25전쟁의 사선을 넘고, 중학교 시절에 실명까지 당하여 더 이상 인생에 잃어버릴 것이 없는 그런 밑바닥까지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그를 구하여 낸 손길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4.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19)사랑입니다.
이미 만세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아셨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뜻을 예정하셨고, 때가 되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모든 허물에서 영원히 구원하신 사랑입니다.
또한 성령님을 보내사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까지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이 사랑을 혼자 누리게 하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인류 모두가 차별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고, 이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가운데 넘치는 사랑을 서로가 체험하게 된 줄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린 다윗으로 하여금 담대함을 얻어 마침내 다윗왕이 되게 하였듯이,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두려움과 염려, 공포에서부터 해방되어 담대함을 얻은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힘은 두려움을 물리치며, 심판의 날까지 우리를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고하게 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행하도록 하는 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이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내가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끝까지 사랑해 주셨고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통하여 얻은 담대함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사랑이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두려움, 모든 공포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해방받도록 하셨습니다.
5. 고오베의 성자인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은 어느 날 천황 앞에 불려가서, 너는 나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 충성할 수 없어도, 예수를 위해서는 목숨을 다해 충성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더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 천황은 다시 그러면 그렇게 위대한 예수는 누구를 닮았느냐고 질문을 하자, 가가와 도요히꼬는 자기를 닮은 분이라고 하자, 어떻게 당신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을 닮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저희 모친은 천기요, 할머니도 그 윗대 할머니도 천기며, 그러므로 저는 씻을 수 없는 더러운 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고 천한 저를 위해 희생하시고 구원하셨고 저를 주님의 종으로 삼으셨으니 저를 닮으신 분이지요」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사랑과 은혜를 간증하였다고 합니다.
4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한결같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면서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또 다른 사랑의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참된 사랑을 증거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6. 진기스칸은 서구에서는 무자비한 정복자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러나 그는 전쟁으로 인하여 버려진 고아들을 데려다가 아내인 빌테에게 이 아이들을 맡아 길러줄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징기스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또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는 전쟁의 이론가였을 때에는 백전백승이 최고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전장터에 나가보니 전쟁으로 인하여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과, 그 가족들의 희생, 그리고 병사 한 사람을 길러내기 까지의 수많은 수고와 희생을 목격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전백승하는 것 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며 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우리가 주께 받은 사명이 있으니,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본문 21절에 보니,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위로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옆으로는 우리의 이웃을,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서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그 어떤 공포와 염려에서도 참 평안을 누리게 하는 줄 믿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받은 가장 큰 능력, 가장 위대한 은사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으로 행할 때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