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24.인생의 짐(갈라디아서 6:1-5)

[성경본문] 갈라디아서6:1-5개역개정

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

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의 짐(갈라디아서 6:1-5/2006.9.24.오전)
1. 헬라신화에 시지프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저서인 시지프스 신화에서 호메로스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밝히기를 그는 인간들 중에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자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지프스가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려 올리고는 다시 하데스(지옥)까지 굴러 떨어진 바위를 끌어올리는 벌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설이 있기 때문에 그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는 신의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은 것 많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신화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시지프스처럼 우리 인생에게는 누구나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무거운 짐이 있다는 사실과, 그 짐은 아담과 하와 이래로 시작된 원죄와 자범죄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짐 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라도 누군가가 대신 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죄 중에 출생한 인생은, 그 어느 누구도 이 죄의 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2절) 고 하면서, 「각각 자기의 짐을 질」 (5절)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짐을 벗어버리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바울은 도리어 이 짐을 서로지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이 짐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과연 그리스도의 사람들도 이 짐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까?
본문의 주어진 말씀을 통해서 인생의 모든 짐들을 해결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2절의 "짐"은 헬라어로 "바로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실어 나르는 물건뿐만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일, 부담스러운 것, 정신적인 괴로움, 시험 당하는 것이나 재난 당하는 것까지도 짐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짐들이 있습니까?
결혼해서 가정이 생기면, 가정의 짐이 얼마나 무겁고 또한 심각합니까?
그래서 이 짐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출하는 가장들, 그리고 아내들도 많습니다.
자녀가 생기면, 감당해야 할 부모의 양육의 짐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결혼한 자녀들의 생계나 사업자금까지 책임지다가, 노후준비는 커녕, 아예 거리로 나 앉는 부모들도 많다고 합니다.
직장이 생기면, 직장에서 짊어져야 할 많은 짐들이 있습니다.
인류의 평화는 물론, 환경오염에서 지구촌을 지키고자 하는 국제적인 짐도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서로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결국 무덤에 내려갈 때까지 수많은 짐에 시달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심각하고 가장 시급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죄의 짐을 해결하려고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권력의 힘을 동원해서 시도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시편기자는 죄악 중에 출생한 인간의 고통을 탄식하면서, 죄의 짐을 지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으며, 사도바울도 이 문제를 놓고 자신을 곤고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다른 짐은 몰라도 우리의 육신과 영혼에 고통을 주고 있는 이 죄악의 짐은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우리 스스로의 죄의 짐을 주님이 대신 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씀하신 그대로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죄의 모든 짐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짐까지 대신 져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죄 있는 자들을 부르사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약한 자를 부르사 그의 말씀으로 강한 자, 능력있는 자로 세우심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줄 믿습니다.
그 위에, 이제는 스스로 져야할 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넘어지는, 때로는 그 짐을 버리고 도망하는 우리를 부르사 쉼과 참 자유와 능력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죄 짐과 인생의 무거운 짐들은 주님이 대신 져 주시고, 우리를 새 사람되게 하신 후에는, 이제는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져 주는 사명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4. 여기의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법은 제도화된 어떤 성문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사랑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랑의 십자가를 질 때는 고통이요 아픔이었지만, 지고 난 후에는 부활의 영광과 더불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많은 생명을 얻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셨고, 주님 자신에게는 만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주님은 우리에게도 남들을 위한 십자가의 짐을 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관계란 서로가 서로의 짐을 대신 져주고, 함께 져 줄 때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주님과 우리가 사랑으로 묶여진 것처럼, 우리들의 관계도 이 사랑으로 묶여진 관계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범죄한 자들을 향하여,「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어라 하였습니다.
문제 있는 사람을 미워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문제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치료하는 마음으로 돌아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바로잡고」는 헬라어로 「카타르티조」라고 하는데, 이는 의학적인 용어로, 어긋나거나 골절된 뼈를 조정하고 수리하여 바로 잡아준다는 그런 뜻입니다.
온유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의사가 자신의 환자를 돌보는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5. 세상은 하나같이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굶주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참다운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가 사람들을 책임지고 사랑하며, 교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은 바로 그것을 우리가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입게 하시며,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신 것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심각해지자 음주운전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벌칙도 강화했습니다.
공무원이 퇴직을 얼마 남기고 앞으로 연금생활로 나름대로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날 음주운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영광은 수치로 변했고, 앞으로의 삶이 캄캄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다 못해 단속기간 만이라도 참으면 좋을 텐데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그 기간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미 음주운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의 일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연약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짐을 서로가 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 혼자는 살 수 없습니다. 첫째로 주님의 도우심과 그의 은혜가 필요하고, 두 번째로는 이웃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심같이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1하)고 했습니다.
특히 「범죄한 일」이란 헬라어로「파라프토 마티」로, 이것을 직역하면, 옆에 떨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고의적인 범죄가 아니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실수나 착오로 발생한 본의 아닌 범죄를 말하기 때문에, 여기서 남의 허물을 가지고 비판하거나 공격하면, 믿음의 공동체는 물론 개인 서로가 상처만 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범죄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동시에 자신도 이런 문제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리 스스로 조심한다면 얼마나 유익한 일이 되겠습니까?
은혜의 삶이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음같이, 남에게 은혜를 베풀 때에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죄 문제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이며, 인생의 다른 짐들도 혼자서는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짐들이 많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쏟는다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성취되며 완성되는 것입니다.

죄의 짐은 주님께 맡기고, 인생 길에서 만나는 많은 짐들은 서로가 서로의 짐을 져 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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