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5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요한계시록 2:8-11)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8-11개역개정
8.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요한계시록 2:8-11) 1.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의 모친이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씩이나 이사를 하면서 자식을 교육한 그 교훈을 이르는 말입니다. 맹자의 모친은 남편을 잃고 수절하며 혼자 힘으로 아들을 키우는데, 너무 가난해서 마안산(馬鞍山)아래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매일 보는 것이 장례식인지라 맹자가 땅을 파거나 곡소리를 흉내 내면서 노는 것을 보자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번에는 푸줏간에서 짐승을 잡고 고기를 잘라 파는 것을 보고 맹자가 이것을 또 흉내를 내자 이곳도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여 다시 이사한 곳이 서당 근처였습니다. 이때부터 맹자는 학동들을 따라 글을 배웠고 세계적인 대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맹자의 모친이 홀몸으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면서 아들 교육에 정성을 쏟은 것은 그만큼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도 목회 사역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대도시의 입지가 좋은 곳에 아름답게 건축된 교회로서 교인도 많고 재정도 넉넉하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에 부임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식과 덕망이 높고 설교도 잘하고 양무리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능력 있는 리더십을 가지고 그 위에 건강한 목회자라면 나무랄 데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는 어떻습니까? 서머나는 에베소와 더불어 아시아의 제1 도시의 명성을 다툴 정도로 입지 조건도 좋고 무역으로 경제적인 부요를, 문화와 의술의 발달로 삶의 환경과 질이 최고를 자랑하는 도시였습니다. 그 위에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충실한 동맹국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 숭배가 이곳에서 제일 먼저 시작될 정도로 로마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2. 이렇게 좋은 환경이다 보니 자연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경제와 권력에 유착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교회가 생겼고, 유대인 중에 더러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 서머나 교회는 실상은 어떠했습니까? 요즘 같으면 아무도 부임하려고 하지 않는 가장 어려움이 많고 가난하고 힘든 교회였습니다. 왜냐면 제일 먼저 그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핍박의 역사 가운데 유명한 인물이 한 분 계셨는데 서머나 교회의 제1대 감독이었던 폴리갑의 순교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이 이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안」다고 하셨고, 계속해서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심으로, 이 서머나 교회가 처한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머나 교회가 책망이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라고 말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머나 교회가 완벽한 교회라서 책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지상에는 완벽한 교회, 완벽한 성도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에베소 교회처럼 책망 받을 만한 것이 있지만, 그것이 서머나 교회를 결정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니거나, 또 한 가지는 책망 받을 일이 있지만 서머나 교회가 당하고 있는 형편을 볼 때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3. 중요한 것은 책망이 아니라 이 교회가 당면한 과제, 문제점, 그리고 형편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그들의 환란과 궁핍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로마의 권력 아래서 당시로서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이 서머나에서, 서머나 교회는 그런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박해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이 신앙 하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에서 말하는 이「궁핍」은 다름 아닌 신앙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만 하고 치러야 하는 빈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재산을 강탈당했습니다. 이 신앙을 버리지 않겠다는 그 각오 하나 때문에 직장을 잃었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 때문에 서머나 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곳에 함께 살고 있는 동족인 유대인들은 이 기독교인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유대공동체가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서머나 교인들을 관가에 고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죄목은 로마의 자유와 평화를 파괴하고 황제숭배를 거절하며 사람들이 받지도 못할 그런 풍습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이 도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과 자유함을 박탈당하고 만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4. 그들은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과는 관계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따라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많은 환란과 역경을 딛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를 찬양하며, 십자가의 복음에 굳게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의 서머나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가련하고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겠습니까? 과연 세상적으로 보면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세상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주님이 이 교회를, 주님이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보시는가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바울은「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 하면서,「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페하려 하신」 (고전1:26-27)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원래 어떤 존재였습니까? 고전15:42-43절에 기록하기를,「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속세의 풍습과 가치관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그들의 삶과 생각이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5. 계속해서 서머나 교회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서머나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동족 유대인들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궁핍을 안겨 주고 있는 이 유대인들을 가리켜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단의 회」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원수요, 믿는 자들의 신앙을 파선시키고 그 영혼을 지옥불에 던지려는 대적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가리켜「사단의 회」라고 표현하신 것은, 이미 그들의 치열하고 악랄함이 극에 달하였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들의 신앙을 파괴함에 있어서는 생명을 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주님을 대적하여 저주 받을 일에 열심을 내는지 사울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까지 얼마나 악랄하고 끈질기게 교회를 핍박하였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로 보건데 서머나의 평화를 깨트리고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가 서머나 교회가 아니라 도리어「사단의 회」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이 분명합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 환란 속에서도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서머나 교회의 모든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환란」이란 어떤 물체에 심하게 짓눌려서 찌그러진 상태를 말합니다. 육체적으로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상태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살아 있다 해도 산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죽음을 향해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형편에 있었습니다. 당시 폴리갑의 순교 이후로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기름에 불을 붙이듯이 더욱 강화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안식일을 범할 것을 두려워 아무 일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서머나 교인들을 화형에 처하기 위해서는 안식일에도 열심히 태울 나무를 모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겉으로는 동족 유대인이었지만 실상은 동족을 죽이는 사단의 졸개들이었습니다. 서머나 교인들이 당하는 또 한 가지의 고통은 이미 언급한데로「궁핍」함입니다. 헬라어로 「궁핍」은 「프토게이아」로 이것은 「프토쿠스」에서 온 것으로, 이것은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가장 절박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가난함은 심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들이 핍박과 궁핍함의 이중적인 환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 그런데 주님은 이런 서머나 교인들의 상황을 전혀 모르시는 듯 말씀하시기를「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서머나 사람들이 맛보는 육체적인 부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인 부요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는 찢어질 듯 가난함이지만, 믿음에는 부요한 자요, 영적으로는 주님께 자신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예수의 사람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극한 상황의 궁핍함이라도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잠시 잠간 후에 받을 십일 동안의 환란도 믿음의 공동체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런 위대한 영적 전투를 온 세상에 나타내시고자 주님은 이곳에 서머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가혹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이 교회를 향해 다시 말씀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지역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고, 서머나 지역의 풍요로움과는 상관없이 그들을 고난과 궁핍 가운데 두신 것은 그들에게 가장 귀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이 믿음에 목숨을 걸면 영원한 영광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8. 성도는 환란과 궁핍과 갇힘 속에 마침내는 생명을 잃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실망할 수 없는 이유는 주님이 먼저 이 길을 가신 후에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희생을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 받는 박해를 무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모든 환란과 궁핍 속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으며,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자가 얻을 것은 영원한 영광입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면서도 그 궁핍함과 환란 속에 그대로 두시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깨달아 마지막 까지 충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