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12.버가모교회 (요한계시록 2:12-17)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12-17개역개정
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버가모교회 (요한계시록 2:12-17/2011.6.12.오후) 1.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담을 향하여「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아담은 대답하기를 「내가---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 역시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하나님을 떠나 피하여 에덴 동편에 있는 놋 땅에 거했다고 했습니다. 범죄자의 특징은 피하여 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의 사는 장소를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숨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와 감격에 넘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보이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어디에 사는가, 무엇하는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주님이 잘 알고 계시는 사람들입니다. 죄가 많은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직업을 숨기고, 사는 장소를 숨기고, 자신의 표정을 숨기면서 많은 대화 속에서도 한 마디의 진실도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내고 사는 사람입니다. 죄와 허물이 있으면 있는 대로 부끄러운 것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놓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버가모 교인들의 사는 곳을 아시고, 그들의 모든 형편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에게 알려진 존재란 다름 아닌 주님의 관심의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버가모 교회는 남다른 주님의 은혜를 입은 교회입니다. 이 버가모 교회를 통하여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2. 버가모라는 도시는 터키의 해발 330미터 정도의 언덕에 요새처럼 새워진 도시로, 그 중심에는 술의 신인 박카스 신전이 있고, 그 신에게 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극장이 있으며, 20만에서 25만에 이르는 양피지로 된 책들을 자랑하는 문화적으로 매우 뛰어난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 도시의 이름이 버가모 즉, 페르가모인데 서적으로 사용된 이 양피지를 또한 페르가모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명품도 여기서 따온 이름인 것입니다. 페르가모는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에 그의 유언을 따라 기원전 133년에 로마로 편입된 지역이 되면서, 황제 숭배의 중심 도시가 되었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이교도들의 신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지역에 버가모 즉 페르가모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버가모 교회가 있는 곳을「사단의 위가 있는 곳」즉 사단이 왕노릇 하는 곳이라 하셨습니다. 그만큼 버가모 교회는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황제 숭배로 인하여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순교자의 신앙을 가지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13절에 나오는 「안디바」라는 사람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뜨겁게 달구어진 놋으로 만든 황소 속에서 타서 죽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버가모 교회 안에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가운데 순교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의 영광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숫자에 있습니까? 숫자에 교회의 영광을 둔다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교회에 몰려드는 중세 시대가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였을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현란할 정도의 장엄한 교회 건물이며 막대한 재산이며 화려한 치장에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역시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중세 시대야 말로 교회의 황금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가진 대단한 권세와 부와 사회적인 지위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21세기 한국 교회는 가장 아름답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교회라고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그런 교회를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단이 왕 노릇하는 곳, 소위 사단의 본부가 있는 그래서 그곳에 있는 교회가 피투성이가 되고 나중에는 신앙 때문에 순교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 있는 이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믿음을 버리지 아니했다는 사실에 주님이 주목하셨던 것입니다. 이 요한 계시록이 기록된 이후에도 버가모 교회에서는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버가모 교회를 가리켜「내 이름을 굳게 잡」은 자라 하였고, 「충성된 증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순교자의 이름은 야고보, 스데반, 그리고 버가모 교회의 안디바 정도였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교회가 주님께 받은 칭찬과 받은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영광은 세상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있으며, 피투성이가 되도록 그 주님의 이름을 붙잡고 인내하는 교회야 말로 주님의 아낌없는 칭찬과 자랑이 있는 줄 믿습니다. 4. 그러나 지상에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완전한 조직도 없습니다. 교회 역시 이 지상에 존재하는 신앙의 공동체이고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사수하는 일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첫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주님께 책망을 받았던 것처럼, 이 버가모 교회역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순교의 영광을 얻을 정도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지만, 저들의 결점은 다름 아닌 진리의 말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순교자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용납하고 말았습니다. 발람의 교훈이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나아갈 때, 모압의 왕인 발락이 많은 재물을 주면서 선지자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만든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모하여 모압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이용하여 성적인 죄에 빠지게 만들었고, 굶주린 그들로 하여금 우상제물을 먹도록 하였습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도 같은 내용입니다. 결국 버가모 교인들은 우상제물을 먹었고, 일부는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우상숭배의 의식에 참여 하여 함께 행음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주님의 대단한 칭찬을 들을 정도로 생명을 걸고 신앙을 사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부도덕하고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에 간단히 빠지고 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버가모 교인들이 주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진리가 아닌 다른 가르침을 용인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받아들이고 적당히 눈 감아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인들은 적당한 선에서 세상 사람들과 비진리며 우상숭배자들과 더불어 알게 모르게 타협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5. 하나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상숭배자들과도 사귀다 보니 우상숭배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거짓 교훈을 가진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면 언젠가는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올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을 떠나 거짓 진리를 가르치고 그런 것을 따르는 자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의식을 보면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생각과 가치관들이 경제적인 이익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 이익이 되면 공산주의자들과도 손을 잡고 함께 사업을 합니다. 백보 양보해서 세상에서 경제를 위해서는 그런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신앙의 세계는 교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진리 문제를 타협하면 주님이 직접 심판하신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발람의 교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물질과 행음입니다. 헬라 철학자 시세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청년들이 창녀들과 나누는 사랑을 금지해서는 안된다고 했고, 이런 일들을 불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철학자 데모스테네스는 합법적인 자녀를 낳기 위해 아내를 두어야 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매춘부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잠시 잠간의 찰라적인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 인간됨을 스스로 버린 사람들입니다. 범람하는 성적 부도덕과 물질 만능주의의 물결이 온 세상을 덮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6.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민25장에 보면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행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진중에 염병이 돌아 이만 사천 명이 죽었고, 이러한 죄에 빠지게 만든 미디안을 칼날로 쳐서 멸절하게 만들었고, 민31:8절에는 브올의 아들 발람까지 칼로 심판하고 만 것입니다. 주님은 본문 16절에서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같은 경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그런 순교자적인 신앙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를 타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은 적과 싸우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된 자들을 향해 심판의 칼을 겨누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지역에서 십자가 붙들고 믿음을 지키려고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는 것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남다른 주님의 위로와 베푸시는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 당의 교훈을 따르고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용납하는 것과 같은 신앙의 타협, 앞뒤가 다른 믿음의 모습은 주님이 용납하지 아니하십니다. 7. 그래서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와같은 잘못된 행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면,「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만나란 우상의 재물을 탐하지 아니해도 하나님이 만나로 배불리시겠다는 것이요, 이것은 주님과의 신령한 영적인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의 만남은 신랑 신부의 만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여기에는 주님의 계획과 분명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박해의 현장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게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함으로 몸바쳐 헌신하는 주님 사랑의 상급을 얻게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를 통해 주님의 대업을 잇게 함으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을 주님과 더불어 누리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복 받은 교회요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진리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그것을 사수하지 못함으로 깨어진 바가지 신세를 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책망하심으로 회개함으로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아름다운 본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 오사카에서 그것도 우상숭배 물질 숭배 사상의 중심에 서 있는 교회로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순교자적 신앙 자세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교회로서 지상의 모든 교회들의 본이 되는 영적 싸움의 승리를 얻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