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10.교회 가운데 계시는 주님(요한계시록1:9-20)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9-20개역개정

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

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교회 가운데 계시는 주님(요한계시록1:9-20/2010.4.10.오후)
1. 본문 9절에 보면 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사도요한은 밧모라고 하는 작은 섬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왜 요한이 여기에 있었습니까?
당시의 교회를 향한 핍박이 점점 심해지던 시기로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 권력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한 수단 중 하나가 교회와 신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들을 격리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뒷받침 해주듯이 사도 요한은 9절에서 밝히기를,「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외딴 섬에 유배를 당한 것입니다.
그가 받은 신앙의 핍박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복음으로 인하여 받은 고난 때문에 그는 더 놀랍고도 특별한 주님의 은총을 입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첫째가 환란 당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는 계시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과, 둘째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다시는 만나 볼 수 없었는데, 박해 받아 유배된 이 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요한의 관계는 다른 제자들과는 조금 다른 몇 가지의 특정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가장 가까이 하던 3명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며, 만찬 석상에서 주님의 품에 기대어 앉을 정도의 친분이며,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마지막 까지 그 모습을 지켜 본 제자요, 주님이 그에게 자신의 모친 마리아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밧모섬에 갇혀 있는 사도요한을 놀라게 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가 어떤 음성을 듣고 몸을 돌이켜 뒤돌아보았을 때 그 눈앞에 나타난 분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2. 문제는 평소 요한이 뵙던 주님의 모습은 고난당하시는 어린양으로서, 나약해 보일 정도로 겸손하고 연약한 예수님의 모습이었는데, 그런 모습은 간곳이 없고, 영광과 권세와 능력으로 가득찬 모습이었습니다.
요한의 표현대로 기록된 말씀은,「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뵌 그분의 모습은 두려움과 고뇌에 가득찬 채로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시던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하고 침 뱉고 이리저리 뺨을 치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를 올라가시면서 채찍에 맞아 여러 번 쓰러지시며 비틀거리시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보게 된 그 분의 모습은 영광과 위엄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망과 죄를 이기고 이제는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승리의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게 된 요한은 그야말로 엎드려져서 죽은 자처럼 되었다 했습니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는 모습을 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의 대상이며 지금도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다시 뵙게 된 주님의 모습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던 그런 모습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열방을 위엄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모든 고통과 저주와 어둠을 이기시고 영원히 승리하신 영광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가 우리의 삶을 진리로 생명으로, 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누리도록 하시는 줄 믿습니다.

3.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12-3절을 보면,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일곱 촛대는 20절에 기록된대로 일곱 교회, 즉 11절에 기록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말하는 것이고, 다시 이 일곱 교회는 지상의 모든 교회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주님이 자신의 생명을 주고 산 모든 교회들의 주인이 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와 핍박자들의 압박이 아무리 거세다 하여도 주님이 붙들고 지키시며 함께 하시는 교회를 흔들지 못하는 줄 믿습니다.
지진이 온 땅을 흔들고 사람들의 바벨탑을 흔들어도 주님의 말씀대로「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줄」(마16:18) 믿습니다.
당시의 도미티안 황제의 교회를 향한 핍박이 얼마나 심했던지, 사람들 중에는 주님이 교회를 잊어버리셨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주의 날」이란 안식 후 첫날인 주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주일이 쉬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처럼 좋은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로마 관헌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아침 일찍 교회로 나가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맞추어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떠오르는 해처럼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들은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맞추어 주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고,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설교를 하고, 목회자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각각 자신들의 직장을 향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교회에 모여서 떡을 떼면서 성찬을 기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일 아침에 피곤하다고 일어나지 못하는데, 얼마나 귀한 모습들입니까?    

4. 사람들은 주님이 혹시 교회를 잊으셨는가? 성도들이 당하는 핍박을 잊으셨는가? 염려했지만, 교회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 요한은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미가 낳은 자식을 잊어버린 다해도, 우리 주님은 교회를 잊지 않으시고 고난당하는 성도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고난 중에 계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교회의 연약한 부분을 붙잡고 계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양육하시고, 영적 전투장에서 승리를 얻도록 힘과 능력과 확신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히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소위 성도들의 삶이란 것이 전부 막혀 있었습니다. 인생으로서 갈 길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이것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는 믿음에서 떠나기도 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리어「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히10:22)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길이란 어렵다고 뒤로 물러가는 길이 아닙니다.
어려울수록 나아가고, 힘들고 피곤할수록 더욱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길인 줄 믿습니다.
왜냐고요? 힘들고 어렵고 핍박을 받아도 일단 믿음으로 나아가면, 모세처럼 능력을 얻고, 다니엘처럼 승리를 얻고, 주님처럼 영원한 영광을 얻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많은 문화적 잔재물들이 있고, 지금도 첨단 문명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르고 있지만, 이 지상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다른 곳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주님이 이 교회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5. 도미티안 황제가 교회를 박해하던 방법으로 사용하던 교회 지도자들을 격리시키는 것을 히틀러가 응용하여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목회자들을 징집하여 군대에 입대를 시켰고, 나중에는 전선에 보내어 총알받이로 죽임을 당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박해하던 히틀러와 그 정권은 한 순간에 무너졌지만, 박해를 받던 독일교회는 지금도 살아 있고, 지금의 독일 수상은 그 부친이 루터교 목회자로 동서독이 나뉠 때 자원하여 동독을 택하여 이주한 사람입니다.
공산주의 치하의 그곳에서 목회를 하면서 지금의 수상을 믿음으로 키우며, 동서독 통일의 기초를 복음으로 다진 사람입니다.
지상교회는 주님의 재림 나팔 소리가 울리는 그 시간까지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는 세상에 복음을 들고 나가서 구원을 선포해야 합니다.
방황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믿는 자들에게 고난을 이기는 인내를 가르치고, 죄를 이기도록 성령과 말씀에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권세를 의지하는 곳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름 이름을 주신 일이 없」(행4:12)다는 이것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이 세상 종말의 그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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