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25.천국은 누구의 것인가(마가복음10:13-16)

[성경본문] 마가복음10:13-16개역개정

13.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천국은 누구의 것인가(마가복음10:13-16/2019.8.25.오전)
1. 사회에서나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일들이 있지만, 성경에서도 따돌림 당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그런 성경이 있었습니다.
신약에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가리켜 사복음이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세 복음은 그 내용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공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마가복음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지푸라기 같은 존재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마태나 마가를 베껴서 기록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오랜 세월 동안 대접을 받기는커녕 멸시를 받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알려진 연구 결과는 마가복음이야 말로 복음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경이고, 마태, 누가는 마가의 것을 많이 참고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가의 입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도 매우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서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분은 성경 전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주제나 목적이 전부 예수님이기 때문이고, 복음서의 목적도 예수님을 증거하고 알리기 위해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도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어린아이가 나오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옵니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 두 가지가 오늘 본문의 핵심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를 대비하고 연결 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문 서두에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어린아이들을 제자들이 물리치고 막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이 분노하셨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대속죄일이 되면 사람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장로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기도와 축복을 받도록 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안아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라는 말씀에 가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어린아이라는 이 단어는 헬라어로 「파이디아」 혹은 「파이디온」 은, 그 의미가 6-14살 정도의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이런 나이의 아이들은 가정, 또는 성인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부모의 사랑으로 양육을 받아야하는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인 가치관에서 보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이런 어린아이들과 동급처럼 취급하고 계신다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3. 사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보아도 이런 어린아이들은 율법에 대해서 무지하고 사회적인 가치 성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국가의 인구조사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런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14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꾸짖고 막았을 때, 예수님이 분노하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분노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크게 탄식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에 대한 제자들과 예수님의 반응을 보면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반갑고 기뻤지만, 제자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요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찮은 존재로,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이런 어린아이의 어떤 부분이 예수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아이들을 반기는 이유가 무엇이며, 특히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어린아이들이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보실 때, 그들의 연약하고 미숙한 육체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속성, 즉 내면을 보신 것입니다.

4. 사무엘서를 보면 그곳에 집안 좋고 잘생기고 뛰어난 사울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반대로 다윗은 집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아직 어리고 미숙한 일개 시골의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시면서(삼상15:35),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을 왕으로 삼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보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이새의 아들들이 다윗을 빼고는 대부분 잘생긴 대장부들이었기 때문에, 선지자 사무엘도 그들의 외모에 현혹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무엘이 장자 엘리압을 볼 때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 외모에 감탄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다윗을 두고 하나님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외모에 현혹 당하고 외모가 그 사람 전체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한국의 성형 붐을 그렇게 비판하던 일본이 요즘에는 너도나도 자신이 성형한 것을 다투어 SNS에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시대는 사람의 외모가 최대의 변호이고 무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으니, 우리도 사람의 중심을 봐야 합니다.
제가 볼 때에는 외모는 평균치 정도면 만족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성격입니다.
얼굴 잘생긴 것은 처음에는 효과가 있지만 성격 못된 것은 평생 고생입니다.
사람들을 따르게 만들고 감화 시킬 수 있는 인격이나 성품은 시간이 갈수록 돈보다 명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의 무엇을 보셨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어린아이는 단순합니다. 순수합니다. 겸손합니다. 천진난만(天眞爛漫) 합니다.
어른들의 말씀에 순종 하기를 좋아합니다.
다시 말해서 말이나 행동에 아무런 꾸밈이나 숨은 의도가 없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언행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늘 핑계 대고 의심하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싸우고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영악해지는 존재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에는 굉장히 민감하면서 세상의 부조리나 악에 대하여는 분노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내 삶도 내 생각도 죄악에 오염되고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말세가 되면 마귀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장악하고 마지막 발악을 합니다.
엡2:2에 보니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고, 죄악으로 말미암는 부패로 썩을 대로 썩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악을 행하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면서도 저 죽을 것은 생각하지 않고 또 다른 악행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령 받은 자의 삶을 사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검을 삼고 믿음의 방패로 무기를 삼으니 마귀가 우리를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의 통치는 어떻게 드러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녀 된 우리의 생각에 있으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내가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이것이 영원한 천국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오늘 마귀의 종된 삶 이것이 영원한 지옥 형벌과 연결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6. 세상은 어린아이를 귀찮거나 불편한 존재로, 가치 없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는 그렇게 순수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시합니다.
이 세상의 약자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인정받을 일도 없는 무능하고 연약하고 보 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약간의 동정을 베풀고는 내 쫓아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 있고, 공로가 있고, 힘이나 자랑이 있는 자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갈 수 있으며, 십자가의 사랑도 값 없이 받는 구원의 은총일 뿐입니다. 이유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물은 어린아이들만이 받는 것이고 어린아이들만 천국 가는 것입니까?
본문 14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 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이런 자」 라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런 자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어린아이의 속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육신적인 어린아이의 특성을 가진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중심에 있는 순수하고 단순한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는 그런 생각과 의지를 가진 자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 받았을 때, 그 구원의 감격은 잠시였고 광야 40년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매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만나를 먹으면서도 그 하나님을 의심함으로 불평하고, 스스로의 복잡하고 많은 생각들이 이스라엘의 나아갈 길에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순진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처럼 순진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런 속성을 가진 어린아이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셨고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염려를 버리고 의심을 버리고 말씀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생각으로 주님을 만남으로 오늘부터 영원까지 그 품에 사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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