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1.한 가지 부족한 것(마가복음10:17-22)

[성경본문] 마가복음10:17-22개역개정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한 가지 부족한 것(마가복음10:17-22/2019.9.1.오전)
1. 여러분은 세상을 살면서 내가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그리고 그런 행복감은 주로 어디서 오는 것이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행복은 남들이 누리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누리고 소유할 때 행복을 맛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런 감정은 의외로 소박하고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이 겨우 일어나서 산책하면서 파란 하늘과 푸른 숲을 보면서 그 맑은 공기를 마실 때 감사가 나오고 기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형수의 고백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 높은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창 너머의 바깥의 새들이 우는 소리에도 감격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돌보며 수유를 하면서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으며,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있거나 잠자는 모습을 보면 인생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 가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런 행복감은 사회적인 지위나 물질의 소유와는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맑은 물이나 신선한 공기, 남에게 조건도 없이 베푸는 선행이나 생명에 대한 경외심 만으로도 인생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고 또한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더 많은 근심을 안고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무엇이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 혹은 내 인생을 지금까지 괴롭히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해야 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 인생에 근본적인 행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내용은 공관복음, 즉 마태, 마가, 누가가 함께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성경의 저자들이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이 사람에 대하여 각각 표현한 내용을 보면, 그는 재물이 많은 청년 부자이고, 신분이 국가 공무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수준에서 말하면 금수저 같은 인생입니다.
또한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 사람을 보아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19절의 내용에 대하여 이 사람이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고 하였습니다.
십계명에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이웃에 대한 의무를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본문에서 이 사람에게 이웃에 대한 의무를 상기 시켰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 부터 다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의별 유혹을 다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살인까지는 아니라도 남을 미워하고 차별하려는 유혹 에서 부터 다윗 처럼 남의 아내나 남편을 탐내는 간음에 대한 유혹이며, 게하시 처럼 남의 소유에 대한 욕심, 이웃에 대한 거짓말이며 부모에 대하여 불효 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려서 부터 이런 유혹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성경이 금하는 것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하신 말씀에 근심하며 돌아갈 정도로 돈이 많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인간적으로 얼마나 위대하고 행복한 사람입니까?
3. 가난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돈이 많으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고 돈이 인생을 편하고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많으면 정말 인생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돈이 우리의 건강을 책임져 주고 돈이 죽음을 막아주거나 연기해 주며, 돈이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며, 돈이 있으면 음식도 더 맛이 있으며,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어느 곳에 여우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포도나무에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서로 그것을 따서 먹으려고 했지만 아무도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여우는 천신만고 끝에 겨우 올라가서 모두가 원하는 포도송이를 따서 입에 넣었는데, 그것은 신 포도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여우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침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고생 끝에 올라가 딴 포도가 신 포도라는 것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우는 오만 행복한 표정을 다 지으면서 만족한 듯이 내려왔고, 모든 여우들은 그를 부러운 듯이 따라가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마리의 여우가 온갖 고생을 하며 올라가서 그 포도를 따서 먹어보니, 먼저 올라갔던 그 여우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나 결코 그것을 신 포도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 역시 온갖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예화는 돈만 많으면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환상을 깨트리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부자들이 우리가 꿈꾸지도 못하는 그런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는 많은 고민과 갈등에 빠져 있으며, 고통도 어려운 일도 많고, 소유한 물질이나 명예 때문에 더 많은 수고와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가진 자들의 현실입니다.

4. 그렇다면 본문의 이 사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이냐 예수님이냐의 선택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재물을 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보면 매우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이 사람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영생에 관한 질문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생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20절의 내용을 보면 그는 어려서 부터 십계명에서 요구하는 명령들을 다 지켰다고 했으니, 얼마나 훌륭한 인생입니까?
그가 20절에서 예수님에게 고백한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나는 어려서 부터 이런 유혹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유혹이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런 유혹에서 내 자신을 다 지켰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문제점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영생이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려서 부터 이 모든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자신을 잘 관리해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으로는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5. 이 사람이 예수님 앞에서 고백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종교 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생활은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그것이 신앙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하지만, 종교 생활은 내 생각이나 사상이나 삶을 고집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성령의 역사 하심을 체험할 수 있지만, 종교 생활은 한계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도리어 종교 생활 하는 사람들이 더 우월하게 보이고 더 신사적이고 더 부드럽고 선한 일에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이 사람이 오랜 세월을 믿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살려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삶이 변화되려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종교 생활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변화가 없는 것은 내 생각과 내 삶의 방식이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우월하고 탁월하게 보여도 결정적인 실수는 잘못된 종교에의 가르침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에도 토착 이단들이 많지만, 의외로 한국에서 건너온 이단들이 오사카에도 많습니다.
이단들로 인해서 신앙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평생 저주 받은 인생으로 살다가 멸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를 하면 일단 의심하고 경계를 해야 합니다.

6. 본문 21절에 보니 어려서 부터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고백하는 이 사람을 향해 예수님이 그에게 드러내신 감정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 교만하구나?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아닙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 셨다고 했습니다.
구원에 관해서 지나치게 오해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을 예수님이 정말 사랑하셨기 때문에 천국 가는 지름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천국 가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려면 재물이 필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받은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려면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스스로도 재물 자체를 악으로 여기거나 나쁘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자기 스스로 노력하며 지킨 하나님의 계명들 보다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을 더 크고 소중하게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한 눈에 이 사람과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은 서로 지나치도록 의존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네가 가지고 있는 재물의 권한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주변에 보면 재물이 넉넉하지도 않으면서도 돈 많은 부자 이상으로 지나치게 재물을 신봉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7. 그런데 본문 가운데서 예수님이 이 돈 많은 청년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 물질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용하면 그 결과를 하늘나라에서 충분히 보상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원리 중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지 반드시 행한 대로 보응 해 주신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 세상의 것들을 희생하고 포기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고 약속하셨고, 사도바울은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라"(고후9:10) 고 함으로, 이 세상에서도 받을 보응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종교생활을 잘하려면 재물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처세술도 필요하지만, 참 믿음은 말씀에 순종 할 때 구원을 이루는 줄 믿습니다.

8. 오늘 주님이 우리를 보실 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매사에 정직하고 모든 사람에게 부드럽고 교회를 향한 남다른 열심이 있고, 정의감이 넘치고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이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22절에 보니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기쁨이나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근심과 슬픈 마음으로 되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 것에 사로잡혀 주님보다도 다른 것이 내 마음을 빼앗고 있다면, 그것은 내 영혼과 미래를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원수와 같은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버리고 포기할 정도로 그에게는 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이 이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을 가까이 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솔로몬의 고백대로,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왕상8:56)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던지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당장에는 불편한 것처럼 보여도 성령님이 도우심으로 감사와 감격과 기쁨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 하며 나아갈 때에 우리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해결되고, 하늘나라의 소망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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