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18.이혼증서(마가복음 10:1-12)

[성경본문] 마가복음10:1-12개역개정

1.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이혼증서(마가복음 10:1-12/2019.8.18.오전)
1. 이어령 씨의 신한국인을 읽어보면 그곳에 한국 여인들의 전형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한국 여인들은 말을 채찍질하며 타고 달리는 여인들이었다고 합니다.
먼저 삼국 유사에 보면, 신라의 충신인 박재상이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있는 임금의 동생을 구해오고, 또 일본에 볼모로 잡힌 왕자 미해(미사흔)를 구해내었는데, 그의 충심과 사람 됨됨에 감동한 인교천황(允恭天皇) 이 그를 설득해서 신하로 삼으려 했지만, 그 뜻을 굽히지 않자 죽임을 당한 역사적 사실의 배후에는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박재상 부인의 전설이 숨어 있습니다.
그녀는 유교 문화 속의 여필종부(女必從夫)의 모습이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리는 여인이요 앉아서 운명을 기다리는 여인이 아니라, 격렬하고 저항적이고 적극적인 당시 여인들의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소개되고 있는 인물은 춘향인데,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열녀나 불교의 보살 같은 그런 이미지를 가진 여인이 아니라, 이도령이 한양으로 올라갈 때, 춘향전의 사랑 타령의 맷돌에 나오는 노래 가운데 「왜 여자는 항상 남자 아래에 있어야 하냐. 나는 싫다」라는 대목에서는 온 마을에 우리 모녀가 죽는다고 고함을 치며 방성대곡 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 여인들의 모습이 오늘날 치맛바람이나 복 부인이나 부동산의 큰 손으로 활동하게 된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전성시대와 같은 여권신장(女權伸張)의 바람은 앞으로 더욱 강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창2:18-25절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남녀를 만드신 후에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남녀가 한 몸을 이루고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 아담의 가정도 돕는 배필로 하와를 허락하신 이유가 남편 아담이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인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이 복 된 남녀의 관계는 고통과 상처를 주고받는 불행한 관계로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 사회 속에서도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일이 자꾸 생겨났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속으로 들어온 죄가 그렇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남편만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내들도 남편을 버리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다 죄 때문입니다. 죄가 가정과 부부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죄는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사람의 감정이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이러한 죄는 부부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갈등과 고통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보다는 자기 감정과 욕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인생이 목표이고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이바라기껜(茨木県)의 고속도로에서 위험한 운전 행위를 하고 상대방 차량의 진행을 가로막고 운전자를 구타한 사건으로, 범인은 지금 전국 지명 수배를 당한 상태에 있습니다.
일본에서 상대방에게 위협을 주는 위험한 운전 행위를 아오리(煽り) 운전이리고 하는데, 특징은 운전자의 감정이나 분노가 조절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작년에 일어난 동종의 사건은 어떤 부부를 사망하게 한 이 사건은, 범인에게 23년 구형에 18년의 실형을 내렸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감정을 조절하거나 인내심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분노를 폭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분노는 인생을 가장 쉽게 가장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주범입니다.

3. 오늘 본문의 이혼 문제도 결국은 죄가 주는 잘못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거나 보호 받기가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인구 조사를 해도 어린아이와 여성은 통계에 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의 소유물 쯤으로 여겨지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남녀의 결혼도 어떤 계약을 맺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여자는 시집을 보내는, 어떤 소유물을 취득하거나 이전하는 것 쯤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위나 가치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 바로 2절의 말씀으로,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들조차도 아내를 내어 버린다고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부부간의 문제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남자에게 있었고, 남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많은 남성이 아내와의 관계를 끊고 집에서 쫓아내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음행이지만, 바리새인 중에 힐렐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남편이 먹을 음식을 태우거나 요리를 잘못해도 그것이 이혼의 사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여자가 남자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되면, 여자는 평생을 부끄러운 여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이런 여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남자들이 함부로 여자들을 버리지 못하도록 이혼 증서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4. 그렇다면 이혼 증서를 써 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 마음이 완악 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 했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5절의 이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의 완악 한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악 하다는 말은 목이 곧다는 의미로, 이것은 여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남자들이 반항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완악 한 마음이 가정을 파괴하고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배우자와 원수 관계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창 2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남녀의 관계를 주종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돕는 배필로 삼으셨는데, 남성 중심의 이 세상이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거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회가 열리면 새로운 법이 제정되지만, 결코 그런 법이 사람들이 사는 이 환경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법이나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은 어느 정도로 영향을 줄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가운데서 남녀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문제를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처럼, 우리의 문제 역시 예수님을 찾아올 때 길이 열리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5. 첫째는, 6절에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를 구별하여 따로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남녀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만들어질 때, 각각 다른 존재로 만드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남녀가 받은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창2:18절 끝에 보면,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창2:15절에 보면, 아담의 존재는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는 것이고, 이런 일을 효과 있고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담의 일을 돕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부터 하나님께로 받은 달란트와 사명이 다르므로, 두 사람이 힘을 합하고 의지와 마음을 합하면 몇 배의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라"(창2:24) 고한 이 말씀은, 남자의 일은 여자의 내조 때문에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즘 남녀의 결혼 적령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는데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남녀가 성장하면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떠나는 이유가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리어 한 몸, 한 가정을 이루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남녀를 각각 다른 존재로 만드신 그 목적을 깨닫고 결혼을 통해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6. 둘째는, 본문 9절에 부부관계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으니 사람의 뜻대로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9절의 서두에서 "이러므로" 라는 이 말은 이혼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잘못된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11-12절에 명시되어 있는데,      
상대방을 버리고 다른 배우자를 만드는 것은 간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유명한 율법 학자의 견해나 법적 해석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무엇을 보시고 간음에 해당하는 죄라고 하셨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근거하여 아내를 내보낼 때, 이혼 증서를 주고받으면 남녀 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여자가 다시 재혼할 수 있으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행동은 간음으로 가는 죄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는 여전히 이 두 사람은 부부 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법정에서는 이혼이 성립되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여기에 우리는 한 가지 심각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상대방이 싫어지고 부부 싸움에 잦아지고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사는 것이 지옥 같은데, 어떻게 참고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들이 이대로 살기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이혼이 뭐가 나쁘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혼도 할 수 있고, 사별도 할 수 있고, 별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혼을 통해서 더 아름다운 인생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이니 이혼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내를 버릴 때 그 여인을 위해서 이혼 증서를 써 주었지만, 요즘은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청구며 자녀 양육비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간에 윈윈으로 가는 이혼을 선호하지만, 예수님은 헤어지지 않아도 부부 사이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몸을 이루고 살던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근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한 몸을 이루었던 아담과 하와의 사이를 갈라 놓은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부 사이를 회복하는 비결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벧전4:8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입을 때, 의롭고 깨끗한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다 죄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분의 용서를 통해 우리의 부끄러움은 자랑스러움으로 변했고, 우리의 연약함이 용기와 신뢰로 변했고, 우리의 더러움은 씻겨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부 관계의 문제도 한쪽이 먼저 용서할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8. 그런데 문제는 나는 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다시 받아 주고 싶어도 상대방이 용납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은혜의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바로 이분이 우리 두 사람을 짝 지어 주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의 남편과 같은 존재였지만, 이스라엘은 그 남편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우상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심으로 호세아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호3:1) 고 하시면서,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남편을 배신한 음녀 고멜을 속량하여 데리고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배우자에 대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새 출발 하는 심정으로 주님께 나가면, 주님은 상처 받은 마음도, 상처를 준 마음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도 사랑했던 사람을 버리는 사람도, 주님이 다 만져 주셔서 이혼 증서나 위자료나 소송이 없이도 다 넘어가게 하시고 가정과 부부 관계를 이전보다 더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관계라도 두 사람을 짝 지어 주신 주님께로 나아가면 주님은 이스라엘처럼 모든 고통과 부끄러움과 절망 속에서 가정과 부부를 건져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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