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11.사느냐 죽느냐(마가복음9:43-50)

[성경본문] 마가복음9:43-50개역개정

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없음)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없음)

47.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느냐 죽느냐(마가복음9:43-50/2019.8.11.오전)


1. 인생이 추구하는 길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의 생명을 중심으로 사는 인생이 있고, 둘째는, 영혼을 육체보다 우선하여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만일 오늘 내가 육신 만을 위해서 살기로 선택했다면,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에서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의 삶은 불변하는 진리에 기준을 두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은 선이고, 내 인생을 방해하거나 장애가 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내가 남보다 앞서가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그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미 육신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육신 보다 더 중요한 영혼이 우리에게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내려 주신 능력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하여도, 육체를 우선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는 않습니다.

2. 사실 육신을 우선하는 인생의 삶이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육신의 본능에 충실하면, 고민할 필요도 없고 인내할 필요도 없고, 남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짐승들처럼 먹고 배부르고 편안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짐승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 만물을 우리의 손으로 관리하도록 위임 받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인생의 목표로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수준 낮은 것에 가치를 두고 그런 것에 만족하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의 삶을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더 높고 아름다운 목표를 위해 우리의 계획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청교도 신앙의 개신교 목회자의 가정에 태어나 8살에 부친을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하버드 대학의 신학부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편협한 종교적 독선과 형식주의를 배격하며, 하나님 중심의 신앙적 사상과 아름다운 시를 통해 미국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야속하다고 말하지 말고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라」고 하였고, 「현재의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고 미래의 나는 내가 하나님께 드릴 선물」이라 했습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살았지만, 인간으로서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자신 또한 그렇게 살아가 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3.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정말 끔찍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메시지입니다.
네 손과 발이 죄를 범하였다고 도끼 같은 것으로 찍어 잘라 내어 버리고, 내 눈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빼어 버린다니 상상만 해도 너무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과연 이런 말씀을 오늘의 세상 사람들이 듣는다면 기독교가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면,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덤으로 붙여 놓았으니 참으로 난감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세상 뉴스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적으로 과장이 많으며, 심하게 표현하면 침소봉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람들의 정서가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아무리 중대한 사건이나 문제라고 별로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뉴스도 세상 이야기도 들어보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일 온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릴 때,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이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기 거지처럼 된다고 했는데, 공부에 관심도 없고 딴 짓하는 아이들을 의외로 많은데, 그 부모님들의 말 대로라면, 이 세상의 거리에는 거지로 넘쳐 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뛰어난 창의성을 가지고 잘 살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도 범죄한 손발이나 눈을 찍어 버리고 뽑아내 버리라는 이 말씀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까?
생각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고 보면, 과장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4.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더함도 뺌도 없이 실제 상황으로 보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동상이 심해서 발을 잘라내어야 하는데, 그 한쪽 다리를 포기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부를 잃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 하려면, 이런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온 세상의 교회 안에는 다리 잘린 사람이나 해적선의 후크 선장처럼 외 눈 가진 이들이 많아야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통해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회 안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위선자들이고 엉터리 신자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칼 끝은 우리의 손발이나 눈을 잘라내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생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된 생각을 따라서 움직이는 우리의 손발이 문제이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 종일 생활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의 손과 발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눈은 또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손발은 내 개인의 욕심을 따라서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옳지 못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으며, 우리의 눈은 잘못된 것을 보거나 보아서는 안 되는 것들을 보면서, 우리의 생각을 악하고 더러운 것에 빠지도록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5. 이런 잘못된 현실을 잘 아시는 주님은 우리를 위해 두 가지를 행하셨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자신의 몸을 찢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도끼 같은 것으로 잘라내어야 할 손발을 대신하여 주님이 자신의 몸을 수치와 희롱과 채찍과 가시, 그리고 못 박힘으로 희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 줌이 되었"(롬4:25) 다고 하면서,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롬5:9) 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쏟으신 피로 우리의 육신이 범죄 한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손발을 잘라 내거나 눈을 찍어 뽑아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으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까지 우리를 보호해 주심으로,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보혈의 은총으로 씻은 육체까지도 하나님의 선물로 새롭게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또 다시 우리의 육신을 더럽히고 영혼을 파선 케 함으로 멸망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도바울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3) 고 하였습니다.

6. 그렇다면 마귀는 우리의 어떤 부분을 공격할 것 같습니까?
가장 연약한 부분입니다. 그곳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육신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각이 무너지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게 되면 결국 마음이나 육신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47절에서 눈이 죄를 범하도록 만들면 그 눈이라도 빼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큰 불행이고 고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범한 눈을 찍어서 빼어낼 각오로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설사 두 눈이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 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아가며, 두 눈을 가진 자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믿음의 사람 헬렌 켈러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두 눈이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고, 두 눈을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할 만한 복 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고, 이것이 전 인류의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발이나 눈이 죄를 범하게 만드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모른 척 방치하거나 짐 짓 죄를 범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 사람의 결과는 본문 49절의 말씀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마땅합니까?

7. 나를 실족 시키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말씀의 검으로 잘라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그리스도께로 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내가 먼저 떨어지고 떠나야 할 것입니다.
본문 42절에 보면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 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 지는 것이 나으리라" 고 하였는데, 문제는 남이 아닌 내 스스로를 실족 시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죄 짓는 자신을 통째로 수장 시키는 것이 살아 있는 것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 곧 자기 자녀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선물이라도 잘 관리하지 못하면 가치가 상실되고 없는 것 만도 못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관리해야만 하는 것들이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이전보다 더 높일 수도 있고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관리를 잘해야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하고, 가정도 교회도 어떤 기관도 서로의 유익을 위해 상부상조 하면서 선한 일을 위해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잘 관리하려면 사람에게 남다른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8. 잠22:26절에 보면,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고 하였고, 또한 잠11:15에는,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잠6:1에 보면, 남의 보증을 서게 되면 스스로 올무에 잡히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남의 보증을 설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여러 번 검토를 합니다.
인생의 보증은 인생이 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눈앞에 안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을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도와주고 그 나머지는 기도하며 성령님이 도와주시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내가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서 현재의 삶은 물론이고 미래까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힘써서 관리해야 할 것은 먼저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영적인 전쟁이고,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가치를 육체 문제에 두느냐 아니면 영혼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육체를 신봉하는 자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것인 가에 관심을 두지만,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를 기쁘시게 할 것인 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는 전연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9. 물고기는 낚시 바늘 끝의 먹이를 삼키려고 달려들다가 바늘을 보고 도망을 가지만, 금방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시 달려들어 먹이를 먹으려고 하는데, 이 물고기의 지능지수가 3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3초가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너덤 벨컨이라는 사람이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책을 썼는데, 내용은 낚시 바늘 끝의 먹이를 또 다시 먹으려고 달려드는 물고기의 그런 행동의 이유를 밝힌 책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물고기의 환경이 생존경쟁이 치열 하다 보니 식욕이 통증의 트라우마를 압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도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다 보니, 신앙 생활 자체를 어리석은 일로 생각하고 믿음에는 관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내가 노력한다고 능력이 있다고 뜻대로 되는 세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어야 다윗 처럼 존재감도 없고, 연약한 인생이라도 시골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다윗 왕가를 이룰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마4:4)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만 있으면, 손발을 잘라내고 눈알을 빼어내지 않아도 믿음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어주셨습니다.
육신과 육신에 속한 것들만이 우리의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답고 영원한 하나님의 복 된 나라가 있기 때문에, 말씀의 검으로 매일 우리의 범죄 한 죄 덩어리의 육신을 잘라낸다면, 마귀는 감히 우리를 유혹하지 못할 것이고, 주님은 이런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해 주셔서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 까지 믿음으로 이 싸움에 승리하도록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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