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16.제자의 길(마가복음8:34-9:1)
[성경본문] 마가복음8:34-38개역개정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제자의 길(마가복음8:34-9:1/2019.6.16.오전)
1. 사람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행복에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조금 더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개인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만족할만한 그런 행복을 추구함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복된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도와주고 밀어주고, 내 생각에 조금 맞지 않아도 머리를 맞대고 하나 되려고 노력하고 양보하며 사는 것입니다.
일본의 상업정신이라고 하면 시가껜(滋賀県)을 중심으로 하는 오우미(近江) 상인입니다.
그들은 삼뽀요시(三方よし)라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삼뽀요시라는 것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과 물건을 사는 사람과 그리고 그 지역의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물건을 만들어 사고 팔 때, 어느 한쪽만 이익을 보고 만족하는 그런 상업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다 함께 만족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장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그들에게도 십계명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선두에 있는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업은 세상을 위해서,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 이익은 저절로 나온다.
둘째, 가게의 크기 보다는 장소를, 좋은 장소보다는 좋은 물건을 만들라.
셋째, 물건을 자랑하지 말고 팔고 난 후의 섬김이 영원한 고객을 만든다.
넷째, 자금이 부족한 것을 염려하지 말고 신용이 모자라는 것을 염려하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자기 밖에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이 이기주의와 돈의 노예가 되어 남이야 고통 하든지 말든지 불행해지던지 말든지 오직 나 밖에 모르는 세상입니다.
2. 나라가 어려운데도 흥청망청 국가의 세금을 눈먼 돈처럼 퍼다 쓰니까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별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점점 곯아 터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갉아먹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남들처럼 한 번 잘 살아보자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근검절약이고 섬김이고 희생이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학생들과 국민의 의식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겨울만 되면 연탄가스로 죽거나 골병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현상금을 걸고 연탄가스 문제를 해결하도록 관심을 가져 주었고, 농번기에는 팔 다리를 걷어 부치고 논에 들어가 거머리에 뜯기면서 농부들과 함께 일 하면서 백성을 사랑하였습니다.
옛말에도 미운 자식은 떡 하나 더 주고, 사랑하는 자식은 매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 잘 만나면 나는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이 행복해 지지만, 잘못된 지도자 만나면 나라는 무너지고 사람들의 생각도 병들고 썩게 만들어서 백년, 천년을 고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면 많은 사람들은 제 살길만 찾고, 법도 질서도 무시하고 제 욕심만 부리지만, 한편으로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의인들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오늘의 일본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상인들이지만 내 욕심만 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해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과 삶이 오늘의 일본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3.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좀 충격적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데로 31절에서 예수님 자신은 이 세상에서 버림당하고 고난을 받으며 그것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이 말씀 때문에 그를 따르는 제자들 사이에서 큰 소동이 났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는데, 그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의 반응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고 하시면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도 한 가지 중대한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사람의 생각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내 힘으로 감당이 안 되는 그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 과연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었는지 아니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는지에 대해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죄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죄가 주는 사망의 고통을 맛보면서 살아야 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죄 값을 치루면서 사는 것입니다.
물론 일생을 통해서 치러도 치룰 수 없는 것이 죄 값이기 때문에 이생에서도 고통당하고, 내세에 가서는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통과 저주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4. 본문의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적어도 12명의 제자들 중에는 스스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자원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 예수님이 여기저기 찾아다니시면서 불러 모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원해서 예수님 만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전도자들을 통해서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나온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기 때문에 이곳에 모였고,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당연히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주일성수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렇다면 내가 주일에 일하지 않고는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고 하면서 왜 내게는 고난도 많고 더구나 지금은 질병으로 고통당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런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34-35절의 말씀으로, 첫째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스스로를 부인하면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경쟁을 하기도 전에 스스로 포기해야 하니 남들의 놀림감이 되고 그들의 밥이 될 뿐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에 있고 성공에 있으며,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제 스스로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5.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부인하면 그것이 곧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대표성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따라가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내 마음대로 살면서 제대로 된 일이 있으며, 마음이 편하고 행복한 결과가 있었습니까? 모든 것이 실패요 무너짐이요 낭패와 실망뿐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남들보다 몇 배의 몸부림을 쳤지만 남는 것은 고통과 후회뿐입니다.
이렇게 못난 내가 내 인생의 대표자로 살았으니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도 모른 채 내 마음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부인하면 그 순간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성을 회복하시는 것이 되고, 그 때부터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행하시고 모든 책임도 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는 이 말씀은, 원래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내 인생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뜻대로 이 세상에 왔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에게 생명과 삶과 은사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6.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고, 나를 위한 인생의 계획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을 부인하는 즉시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아들이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되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기 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부인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이 나의 주인으로 내 안에 오십니다.
그래서 그 분이 통치하시고 책임을 져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머리를 굴리면서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고 영광인데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 때문에 욕심을 내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분량을 따라 감사하며 살 때, 영원한 행복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참된 행복은 나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분이 가라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머물고, 침묵하고 기다리라 하시면 조용히 기다리면 이것이 100점짜리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인간관계를 보더라도 나를 주장하고 나를 남들보다 먼저 앞세우면 결코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내 안에서 평안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양보하고 내가 먼저 무엇을 원하세요? 어떻게 해 드릴까요? 하면 문제가 생겨도 걱정할 것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7. 계속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분을 닮아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전연 그 분을 닮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마다 자기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방향이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고, 나를 따르라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내 십자가도 남에게 지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 대해서 예수님은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마11:29-30절에 보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가는 십자가는 무겁지 않고 힘들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 인생의 십자가라도 주님과 함께 짊어지면 끝까지 갈 수 있으며, 주님 때문에 짊어지는 십자가라면 그것이 어떤 십자가이던 힘들지 않다는 것입니다.
8.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기독교는 내가 살려고 몸부림치면 우리 모두가 죽을 수 있지만,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 때 모두가 함께 살아날 수 있는 신앙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자기를 부인하면 끝장이지만, 기독교는 자기를 부인할 때 주님이 대표성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행복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 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거나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지만, 우리는 내가 죄인 되었을 때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져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부활의 영광을 얻으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을 함께 나누는 축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36-38절의 말씀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에서 육신의 생명을 건질 것인가 아니면 영생을 얻을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15: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 하였습니다.
죄 가운데 빠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귀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희생이 고맙고 감사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 가는 길은 제자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벌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나아가는 이 길만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요,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축복의 길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