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12.듣게 하고 말하게 하라(마가복음7:31-37)
[성경본문] 마가복음7:31-37개역개정
31.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듣게 하고 말하게 하라(마가복음7:31-37/2019.5.12.어버이주일)
1. 미국의 최고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의 말단 사원이었던 존 아치볼드는 출장을 가면 어김없이 숙박부에 자신의 이름 뒤에 한통에 4달러 스탠더드 오일이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그를 한통에 4달러 사나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갔다가 숙박부에 그렇게 적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느 신사가 왜 그렇게 적느냐고 했더니, 혹시 호텔 손님 중에 갑자가 석유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종업원들이 기억하고 그 사람에게 우리 석유를 소개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적는다고 했습니다.
한 달쯤 후에 그는 회장 록펠러의 특별초청을 받아갔더니 그 때 호텔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의 회사 회장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록펠러는 아치볼드에게 당신과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을 내 곁에 두고 싶다고 하였고, 나중에 그는 록펠러의 후계자가 되었고, 그의 열정은 스탠더드 오일을 세계 최고의 회사로 키워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초점은 단순하게 경영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든지, 회사 일이던지, 교회 일이던지 간에 내가 맡은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누구나가 경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치유와 회복입니다.
그래서 주어진 말씀을 가지고 오늘 우리들의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특히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이나 고통, 그리고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2. 성경을 읽다보면 여기저기서 난해한 구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하신 행동 중에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방지역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셨을 때, 사람들이 듣지 못하고 소리는 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을 그에게로 데리고 와 치료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자신의 손가락을 그 사람의 양쪽 귓구멍에 넣고, 그 다음에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고는, "에바다", 즉 열리라고 명령하셨는데, 왜 침을 뱉으셨으며, 그 침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요9장에서 맹인을 치료하실 때,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발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심으로 눈을 열어 주신 사건은 있지만, 여기서는 자세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예수님이 이 사람의 귀를 열어 듣게 하셨고, 혀에 맺힌 것을 풀어서 말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귀는 들어야 하고, 혀는 말을 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사35:5)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들이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도록, 닫힌 것을 열고 맺힌 것을 풀면서 치료하시고 회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같은 식구라도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 것과 상대방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3. 일반적으로 식구들끼리 소통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부부간의 경우는 성격차이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부모 자식 간에는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거나 장기화되면, 그 가정에는 심각한 균열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의 경우를 보면, 듣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인지 갑자기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만일 그렇다면 어떤 일에 큰 충격을 받았거니 돌발적인 쇼크 현상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35절을 보면,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렸" 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그동안 말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적인 요소가 제거된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치료 방법은 스킨십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귀신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는 이방여인의 경우는, 환자를 보거나 만지지도 않고 오직 그 어머니의 믿음만을 보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경우에도 그렇게 치료해 주시면 서로가 간단할 것인데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예수님 자신의 손가락을 환자의 양쪽 귀에 넣고, 환자의 혀에는 자신의 침을 발랐다는 것은, 이것은 분명한 어떤 의도가 없이는 할 수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4.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환자들에게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치료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방법을 찾아내어 치료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때 그 때마다 치료하시는 모습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 사람의 현재 상황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배경까지 다 살펴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마다 임하는 방법이 다르고, 주어지는 기도의 응답이나 축복도 각각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적당하게 생각하고 적당하게 행동하는 것에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것을 내 자신 중심으로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관계를 맺기 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 3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치료하시는 과정에서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병자를 앞에 두고 탄식하는 것은 그 사랑의 모든 형편을 잘 알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입니다.
환자의 귀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고, 그 혀에는 자신의 침을 바르고, 그리고 탄식하시는 이 모든 것은 병자와 의사가 치료라는 목적을 위해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이 잘 행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치료하고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못 듣는 사람을 듣게 만들고, 말 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회복케 함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 바로 이것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장애는 심각한 것입니다.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걷지 못한다든지,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든지, 말을 못하거나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감각이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체적인 장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사지나 오장육부는 멀쩡한데 감사가 없으며, 더불어 누리는 기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육체적 장애가 아니라 감정의 장애, 표현의 장애, 더 심각한 것은 영적인 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15:17절에 보면,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 보다 나으니라" 고 하였고, 13절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고 하였으니, 이 말씀들의 공통점은 전부 마음의 병에서 오는 고통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과 하나님이 주시고 맺어주신 아름다운 가정 안에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집안 식구를 원수로 만들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귀가 가져다 준 유혹, 즉 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6. 이곳에 모인 우리들은 다 원래는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배움이나 삶의 환경도 다르고, 과거를 보면 이곳에서 함께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함께 모여 감사함으로 예배하고, 기쁨으로 교제를 나누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우리를 하나 되게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교회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거쳐 오면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맛보았으며,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감사와 기쁨과 기도의 응답과 치유를 맛보고 누리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소망 없이 죽어가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닫힌 귀를 열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받게 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였습니까? 이것이 누구의 무슨 힘으로 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 이라도,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 이 된 줄 믿습니다.
요10장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양과 목자로 표현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1, 15절에 보면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언어는 통역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은 국경이나 민족의 장벽도 막을 수 없으며,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이러한 사랑은 성격차이도 세대 간의 갈등도, 다른 어떤 장애물이나 장벽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육신도 치료하고 귀신도 물리치고, 한 영혼을 지옥과 저주의 고통에서 영원히 구원하는 것입니다.
7.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선물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처럼 내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가정의 부부관계라는 것이 피도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서로가 내 자신을 주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기 때문에 고난이 많고 넘어가야할 장애물이 많아도 다 이길 수 있고 다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랑으로 용서하고 이해함으로 하나 되지 못했다면, 그 사람들은 원수끼리, 적과 동침하고 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장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못 듣고 말 못하는 이 사람을 치료하시는 과정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에바다" 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람어로 그 뜻은 열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맺힌 것은 풀고, 닫힌 것은 열고, 막힌 것은 뚫어야 하는데 이 세상의 힘으로는 이런 것을 풀고 열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가 그 분의 능력을 받아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을 때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말 못 알아듣는 사람이나 양쪽 귀를 막고 아무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미워하면서 더럽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과 감사와 찬송이 나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8.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복된 가정은 사회구성 요소의 기본단위인데, 이것이 점점 파괴되면서 다른 사회적 관계도 파괴되고, 윤리도 신앙도 바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 우리 가정의 자식들이 부모의 음성을 거부하고 청개구리처럼 행동하고 부부관계도 남남처럼 등을 돌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식에게는 부모로서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고, 부부는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요10:27절에 보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른" 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정에 돌아가서 할 일은, 부모의 사랑을 믿고 의지해서 자녀가 듣고 말하도록 해야 하고, 깨어진 부부관계도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먼저 이해하고 용납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먼저 불쌍히 여기고 다가가서 용서를 구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며 용납할 때, 얼음 덩어리처럼 차가운 마음도 녹아지고, 가정을 위한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벧전4:8) 다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나 동료나 상사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고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면, 듣지도 않고 말 안하고 피하는 자들이 먼저 찾아와서 말을 걸어오는 기적의 역사도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변화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