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3.헤롯의 고민(마가복음6:14-29)
[성경본문] 마가복음6:14-29개역개정
14.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15.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헤롯의 고민(마가복음6:14-29/2019.3.3.오전) 1. 오래 전에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를 출발해서 시칠리아 섬을 돌아 몰타 공화국의 수도 발레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에 패해서 이 섬에 들어온 성 요한 기사단들이 오스만제국(지금의 터키)의 3만 대군의 침입을 불과 700명의 기사들이 방어에 성공한 역사와 더불어, 기사단이 직접 세운 성 요한이라는 성당이 있는데, 이 건물은 세계에 현존 하는 성당 중에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성당 안에는 1608년에 이탈리아 사람 카라바조가 그린 세례요한의 참수로 알려진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가로 520센티, 세로 361센티의 크기로 그 앞에 서게 되면, 마치 참수 당하는 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전율을 느낄 정도로 그림이 살아있었습니다. 참으로 묘한 것은 이 그림에서 세례요한이 목이 잘려 피를 쏟아낸 그 바로 밑 부분에 마치 세례요한이 쏟은 그 붉은 피로 작가 카라조바의 사인이 기록된 것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데, 그곳에는 행28장에 나오는 멜리데 섬으로, 사도바울이 로마로 호송되는 도중에 풍랑으로 인해 난파되었던 곳과, 그가 죄수의 몸으로 3개월간 갇혀 있었던 동굴 감옥과 바울의 난파기념 교회 등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어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볼 것은 왜 세례요한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여기에는 헤롯이라는 악한 권력자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인 이 헤롯이라는 인물을 우리는 단순하게 악인으로 단정하고 그냥 넘어가지만,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헤롯이 세례요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가지고 헤롯의 고민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그 이유는 헤롯이라는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의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과거 헤롯의 모습에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신약성경을 펼쳐 놓으면 몇 가지 어려운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헤롯이라는 인물입니다. 그 이유는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한 두 사람이 아닌데다, 이 헤롯 왕 가문의 혈연이 매우 복잡한데, 본문에 나오는 이 헤로디아도 헤롯 대왕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의 딸이기 때문에 그 집안의 족보가 참 복잡합니다. 제일 먼저 마2:1절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 때 유대 땅을 통치하던 임금이 헤롯 대왕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헤롯 아킬레오가 유대왕으로 통치하는데 마2:22절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헤롯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인 헤롯 빌립1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에게 그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긴 사람입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요한을 죽이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을 심문했던 사람입니다. 그 밖에 헤롯 빌립2세가 있고, 사도 야고보를 죽인 헤롯 아그립바1세가 있는데 행 12장에 나오는 인물이 있고, 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사도바울을 심문했던 행 26:1절에 나오는 인물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17-18절에 보면, 빌립1세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아 결혼한 안티파스에게, 세례요한이 그 행위가 옳지 않다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율법에서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출20:14절의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말씀과, 레20:21의 "누구든지 그의 형제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는 말씀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행위를 근친상관으로 규정하고 인간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헤로디아를 놓고 빌립 1세와 이복형인 안티파스가 서로 부인을 뺏고 빼앗기는 그런 관계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막은 헤로디아가 남편으로 버리고 안티파스를 유혹 했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잘못된 행위를 세례요한이 모른 척 넘어가지 않고 그 죄를 엄하게 지적하고 책망했다는 사실입니다. 세례요한의 이런 행위가 본문 19절에 보니, 헤로디아의 분노를 일으켰고, 그 이후로 그녀는 세례요한을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고 권력자의 부인을 원수관계로 만들어 놓았으니 세례요한의 인생은 그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갇혀 죽는 날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인 헤롯 안티파스는 헤로디아 와는 달랐습니다. 잘못된 행위를 지적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이 세례요한을 의로운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도리어 본문 20절을 보면, 자신이 세례요한의 책망을 듣는 것을 달갑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지성과 양심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성격이 좀 우유부단하여 이럴까 저럴까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말이 늘 옳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줄 몰랐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고 육체의 쾌락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만한 도덕적 용기나 영적인 결단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딤후3:4절의 말씀대로,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했던 사람입니다. 4. 마침내 안티파스와 헤로디아, 그리고 세례요한 사이에 일어나야 할 사건이 터졌습니다. 21절에 보니,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세례요한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 그를 원수로 여기고 있던 헤로디아에게 주어진 악을 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생일을 맞아 귀인들을 불러 잔치를 하였는데, 그 때 헤로디아가 데려온 딸 살로메가 나와서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춤을 보고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감탄 하며 만족하자, 안티파스는 흥분한 나머지 무슨 소원이든지 말하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왕권을 휘두르는 존재지만 나라와 백성은 생각지도 않고 의붓딸이 추는 춤에 매혹되어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였으니 제정신이 아닙니다. 더구나 살로메가 그 소리를 듣고 어미 헤로디아에게 달려가서 의논을 한 후에 하는 말이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어리석은 안티파스가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 이런 장소에 나와서 춤을 추는 것은 창녀들이 하는 일이요, 왕가의 자녀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이고 도덕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살로메가 춤을 추는 것을 금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또한 춤 값으로 사람의 목을 달라고 하는 이런 요구는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26절에 보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고 했습니다. 사람 생명 보다는 자신의 채면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5. 그런데 헤롯 안티파스가 왜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해야 합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육신의 생활, 옳지 못한 행동을 끊어버릴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음성은 듣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책망도 달게 받을 줄 알면서도 그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진리보다 육신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 신앙이란 둘 중에 하나를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애급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였고, 언약의 백성이라도 금송아지 우상이나 아니면 하나님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으며, 여호수아도 백성들을 향해,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내내 고민했던 부분이 무엇입니까? 바알이냐 하나님이냐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식에 대한 선택의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라도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헤롯처럼 우유부단하여 고민하다가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있으며,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시는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이것이 가장 탁월한 선택인 줄 믿습니다. 6. 그렇다면 왜 세례요한이 헤로디아의 미음을 받아 죽어야만 합니까? 악한 자들의 옳지 못한 삶을 눈치도 없이 함부로 간섭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도덕한 일을 봐도 모른 척 하고 넘어갔더라면, 세례요한은 옥에 갇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목배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이후에 신약 시대에 더 크고 위대한 모습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쓸데없는 일에 간섭하여 개죽음 당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길을 자청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구약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복음 사역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의 받은 사명은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악에 대한 책망과 회개를 촉구함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입니다. 또한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 예수님으로 하여금 은혜의 복음 사역에 꽃이 피도록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세례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일어남이 없도다"(마11:11) 고 하셨습니다. 7.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관여하지 않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다윗이 자기에게 충성하고 있는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그를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어 일부러 죽게 만든 것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한 나단 선지자의 행위가 정치적인 문제입니까? 엘리야가 우상숭배하고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는 아합 왕과 악마 같은 그 아내 이세벨을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인 문제입니까? 엘리야가 여호람 왕에게 백성을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뜨린 것을 책망하는 것이, 선지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착한 동생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을 몰수한 것을 책망하는 것이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입에 담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까? 세례요한처럼 왕이 율법을 어기고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책망하는 것이 마땅히 교회가 할 일입니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이 좌파정권에 의해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교회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까? 대한민국은 기독교 신앙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기도하며 세운 나라요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오늘에 이른 나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새벽종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시작하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며, 부모님 세대가 반 잠도 자지 않고 잘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일구어 낸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경제와 신앙과 교육을 파괴하는 국회와 전교조 민노총의 온갖 행패를 보면서도 침묵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이란 말입니까? 헤롯 같은 인간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고 책망하고 있는 세례요한을 의로운 사람이요, 그가 하는 이런 행동이 옳다고 여기는데 왜 우리는 지금 침묵해야만 합니까? 그들이 지금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너무 잘하고 있어서 그렇습니까? 8. 오늘 우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선악을 구분할 줄은 아는데, 말씀에 순종하고 의를 따르고자 할 때에 감수해야만 하는 고통과 피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어떤 것이 바른 길이고 어떤 것이 우리가 받은 본연의 사명인지 잘 알면서도 회피하고 모른 척 하며, 이 핑계 저 핑계로 도망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미 세상은 죄악으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너무 많이 오염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선악에 대한 판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로디아 같은 골빈 여자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선동하고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핵폭탄 시계, 혹은 지구 종말 시계라는 것이 1947년에 나타났습니다. 핵폭탄이 지구상에 터지고 난 이후에 나타난 시계입니다. 그 때는 지구 멸망 7분 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53년 미국과 소련이 연이어 수소폭탄을 실험할 때, 3분 전까지 갔다가, 미국과 러시아가 무기 감축 협상을 하면서 1991년에 17전 까지 후퇴했고, 작년에는 인류멸망 2분전에 초침이 멈춰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핵폭탄 시계는 있는데, 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시계가 교회에 걸려 있지 않는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판이 가까웠다, 회개하라! 인류멸망 5분전, 이런 시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9.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첫째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과, 둘째는 잃어버려진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며, 셋째는 타락한 시대에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정화를 하며,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일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헤로디아와 그 딸 살로메는 세례요한의 목을 베는 살인을 공모하였지만, 얼마 후에 헤롯 왕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다 누리지 못하는 온갖 것으로 치부하였지만 행복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기원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피 바다를 이루었고,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헤롯의 고민하는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불의 앞에 고민하거나 망설이거나 도망가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우리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끝나는 그날 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이를 위해서 힘차게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