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8.부름 받은 사람들(마가복음1:14-20)
[성경본문] 마가복음1:14-20개역개정
14.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부름 받은 사람들(마가복음1:14-20/2018.7.8.오전) 1. 요즘 텔레비전이나 신문들이 진실에는 눈을 감고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TV 방송이나 언론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진실보다는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면서 그것을 확대 재 생산 해냄으로 이 시대 사람들의 만족을 끌어내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진실이나 사실을 추구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안일이나 성공을 절대 시하고 그곳에 더 많은 관심을 쏟다 보니, 이것이 곧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의 정신이 되었고, 방송이나 언론들은 알게 모르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가는 유통망을 통해서 24시간 쉬지 않고 배달되고 있는 엄청난 물건들은, 곧 이 시대 사람들의 삶과 그 정신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언론이나 방송 문제 이전에 우리 각자의 삶이 이런 시대를 만들어 낸 것 뿐입니다. 이미 우리 시대는 그 어떤 진실이나 공의 보다는, 내 개인의 생활이 안정되고 남들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을 선이요 행복이라고 여기고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습니다. 믿음의 세계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 원하고 계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 20-30년 전에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그 당시의 모습이 왜 그렇게 촌스럽고 엉성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를 기억하기 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더 세련되고 더 밝고 더 아름다운 미래의 변화 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2천 년 전의 세계로 돌아가서 갈보리 십자가와 주님의 몸으로 태동한 지상 교회의 출발점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추구하고, 그 이전의 아브라함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참 믿음의 가치를 오늘 우리 생활에 반영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영원한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얻고자 합니다. 지금 이 세상과 기독교는 같은 모습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만 봐서는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그 내면에서 지향하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이나 목적은 물론 그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좋은 예화를 이미 세례요한의 삶에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시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살다가 받은 사명을 완수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새 시대를 여는 그분의 첫 음성이 무엇입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때가 찼다는 말은 다가오는 어떤 시기가 매우 임박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시간의 개념은 두 가지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카이로스」 라고 하는 시간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시간은 「크로노스」 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위해서 예정하신 특별한 시간, 즉 인간 구원을 위한 구속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때가 찼다는 이 말은, 세례요한의 죽음으로 율법 중심의 구약시대는 끝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은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3. 이러한 시간에 대한 이중적인 개념은 우리에게 중대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개념, 다시 말해서 지나가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그런 시간에 매여 살아가지만,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인류 구원을 위한 구속사적인 시간 속에서 복음의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시간이라는 틀에 메여 발버둥 치면서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은바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세처럼 80세에도 부름을 받으며, 세례요한 처럼 30살에 이미 사명을 완수하고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20살까지 살아도 특별한 사명이나 목적도 없이 내 몸만 챙기면서 먹고 자고 먹고 자기를 반복하면, 수백 년을 산다고 해도 그 생명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생의 가치는 시간이나 나이와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 복음의 사명을 위해 얼마나 충성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천국 자체가 이 땅에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그래서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이 변화된 삶이 계속해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 확장되어 나가면서 계속된 변화를 이루는 것이 곧 하나님이 통치 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4.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데도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본문 15절의 말씀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 는 것과, 둘째는 16절 이하에서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 곧, 복음의 사명자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것도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를 시킬 수 없으며, 행복도 성공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죄에 따라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으로 알 수 있지만, 사람이 의지를 굳게 세움으로 일시적인 변화는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 할 수 있는 그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지은 죄를 깨닫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행5:31절에 보면,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신" 다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것과 죄 용서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사람을 변화 시키고, 세상을 바꾸고 이 세상의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불신앙의 가정 식구들이나 문제 있는 자녀들의 변화를 원한다면,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구원이나 변화는 하나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5. 그렇다면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하시면 우리가 받은 사명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사업가가 파산하여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는데,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밤에 잠도 자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멀리서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라는 찬송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몽유병 환자처럼 찬송 소리에 끌려 찾아가보니, 조그만 교회에서 어느 노인 부부가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넝마주이로 시작했지만 마침내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다시 사업가로 일어섰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영적인 눈을 떠서, 십자가의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영생을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절망과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면 살아날 길이 열리고,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 즉 복음의 일꾼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롬10:14-15절에,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하면서 마지막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수 없으며, 또한 세상에 아무리 귀한 일이 많아도 복음을 전하는 이 전도자의 사명보다 귀한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면 하나님은 능력 많은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고 죄 가운데 죽어가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이 일을 통해 받을 상급과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크고 중대한 일과 받을 상급을 어찌 하나님의 자녀를 섬기도록 만든 천사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갈릴리 지방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예수님은 이 사명을 모든 사람이 아닌 12명의 제자들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남다른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신 것은 남다른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6. 제일 처음에는 시몬과 안드레 형제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을 때 그들을 보시고,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고 하셨고, 18절에 보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배 안에서 그물을 수리하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시고 똑같이 부르셨고, 그들 역시 똑같은 반응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의 반응을 보면 한결 같았습니다. 그들이 할 일이 없어서 장터에 서서 빈둥빈둥 하거나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의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처음 본 예수님의 말씀에 이렇게 순순히 반응하여 하던 일을 다 버리고 즉시 그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불가능한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지체하지도 않고, 심사숙고도 하지도 않고 즉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욕심에 사로잡히거나 지나치게 육신의 일에 메이게 되면, 그 순간부터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일을 주문 받아 오늘내로 끝내야 해도, 지금 재해로 인하여 피난 명령이 떨어지면 다 버리고 목숨 만이라도 살려고 도망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을 해도, 지금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 생기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즉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보다도 주님이 부르셔서 맡겨 주시는 이 복음의 사명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도 접어야 하고, 직장도 버려야 하고, 가족도 떠나야 하지만,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더 중요한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7.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부인 사라는 물론이고, 심지어 당사자인 아들 이삭에게도 말하지 않고 즉시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히11:19절에 보니 그 때의 아브라함의 생각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 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으로 부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 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형제나 야고보 형제는 자기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이 예수님에게서 갈릴리 어부로서 한 평생 살아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명과 이에 대한 미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평소에 더 크고 위대한 꿈을 꾸는 사람은 제 인생에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복음의 사명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복음의 사명자로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이 사람들처럼 과감하게 버릴 때, 참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온전한 사명자로 서는 줄 믿습니다. 8. 어린 학생이 중병으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수입이 없으니 나가서 신문도 팔고 구두도 닦고 하면서 어머니를 간호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는 장님이었습니다. 돈이 벌리는 대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갖다 드렸는데, 어느 날 어머니는 십일조를 드리자고 하니, 아들이 펄쩍 뛰면서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이냐,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셨느냐, 우리가 공산당 총에 아버지 죽고 재산까지 다 빼앗기고, 피난 와서 우리 둘만 남았는데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데 무슨 십일조냐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도 잃고 고향도 재산도 건강도 다 잃었는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마저 잃어버리면 무슨 소망으로 살겠느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인생이라고 설득하여, 믿음으로 키웠는데 나중에 아들이 커서 맹인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불신앙 식구들을 구원하도록 먼저 복음으로 불러 주셨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웃의 고통 당하는 사람들, 소망이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불러 주셨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선교사로 이방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고 가정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들이나 우리나 다 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변화 시키는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변화되지 않고는 세상을 변화 시킬 수도 없으며, 우리 가정을 변화 시키지 않고는 선교의 소망도 헛된 꿈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부르심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새 사람이 되고, 변화된 우리로 인하여 세상은 점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아름답고 복 된 나라가 되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