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4.사랑하는 아들(마가복음1:9-13)
[성경본문] 마가복음1:9-13개역개정
9.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랑하는 아들(마가복음1:9-13/2018.6.24.오전)
1. 기원 64년, 대제국 로마가 대형 화재로 인하여 쑥 밭이 되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대형 극장 근처에서 시작된 불길은 6일 동안, 14개 구역으로 나눠진 로마시의 6개 행정 구역을 전소시킬 정도로 맹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이어 드러난 화재의 전모는 그 주범이 바로 네로 황제였습니다.
네로는 새로운 궁전을 짓기 위해서, 두 가지의 범죄를 지었습니다.
그 하나는 이미 많은 대부호들을 불법으로 기소하고 죄를 만들어 처형을 함으로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그 과정에 철학자요 네로의 스승인 세네카도 기소가 되자 스스로 목욕탕에서 동맥을 끊고 자살하였고, 그의 아내도 그의 죽음을 뒤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로마 도시를 방화함으로 자신이 원하는 궁전은 물론이고 로마를 새롭게 만들 궁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대화재를 엉뚱하게도 기독교 신자들의 행위로 소문을 내어서 많은 성도들이 박해를 통해 순교를 당하고 당연히 그들이 소유한 재산도 강탈 당하고 말았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궁전의 전망대 위에 올라가서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면서 하프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인을 향한 첫 번째 박해였습니다.
선천적으로 교활하고 잔인한 네로는 성난 군중들의 민심을 달래려고 그의 보물 창고를 열어서 백성들을 향해 모든 재물과 보화가 바닥이 날 때까지 뿌려 선심을 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할 줄 모르는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죽였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들짐승의 가죽을 입혀서 봉한 다음에 숨질 때까지 사나운 개가 물어 뜯도록 하였고, 또 어떤 신자들에게는 온 몸에 송진을 칠한 다음에, 궁전 뜰에 박아 놓은 막대기에 매달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2. 그 이외에도 네로가 범했던 천인 공노 할 범죄와 부도덕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사도행전 25장에서 바울이 베스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 가이사에게 상소를 한다(25:11) 하던 그 가이사가 바로 이 네로였으며, 베스도 역시 이 네로에 의해 유다의 총독이 된 로마인이었습니다.
네로는 바울과 베드로를 처형한 장본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졌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로마 황제와 로마의 우상을 섬겨 배교의 길을 가던지, 아니면 기독교인의 신분을 숨기고 공개적인 신앙고백이나 예배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은밀한 장소를 찾아서 함께 모여 신앙고백을 하며 예배를 드렸고, 가르침과 교제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를 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카타콤이라는 이 지하 동굴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지켰는데, 지금도 로마에는 당시 박해를 당하던 그리스도인들의 흔적을 이 카타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로마의 카타콤과 터키의 카타콤을 들어가 보고 느낀 것은, 우리 선배들이 하나님 중심의 이 신앙 하나를 지키려고 이렇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으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다시 재림 하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록한 마가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는 자들과 더불어 핍박의 시대를 거쳤지만,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경험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인 이 마가복음을 기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신앙을 배웠고, 그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그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인지 자세히 알게 된 것입니다.
3.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이 마가복음은, 박해 속에서 고통 당하고 혼란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주님을 소망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가복음 속에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미리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으로 부터 시작된 은혜 중심의 새로운 시대에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환란과 핍박을 받아도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돌보시고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죄인들 가운데 오셔서 그들을 섬기시는 종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절정은 바로 갈보리 산 위에 선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면 그도 연약한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연약한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고난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한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부활을 통해 더 큰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이미 인생의 연약함과 십자가의 죽음까지 경험하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부활의 능력과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4. 오늘 본문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통해서 낮아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하셨습니까?
첫째는, 세례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둘째는,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신 것입니다.
셋째는, 아무 죄도 허물도 없었지만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연약한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것을 다 맛보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 분의 겸손의 모습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 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입니다.
11절에 보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천상에 계실 때와 동일하게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연약한 육신을 통해 받으신 고난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살다가 후진국 중에서도 더욱 환경이 열악한 곳에 여행을 가보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고 피곤한지 모릅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죄 많은 우리들 가운데 오셨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5.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즉시 광야로 내 몰리셨고, 그곳에서 들짐승과 더불어 사시면서 40일 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들짐승들과 함께해야 하는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예수님은 불평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온전히 순종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부모가 하자는 대로 아이들은 쉽게 따라갑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내 뜻이 굳어질수록 순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고난을 싫어하고 다른 이에게 복종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늘 평안하고 근심 걱정거리가 없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내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면, 내 육신이 원하는 것과 내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따라옵니다.
과연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육신이 원하는 것을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 칼을 들고 성을 정복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음대로 살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풍성이 누리려면, 예수님 처럼 먼저 하나님께 고난을 통해 순종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6. 내 힘으로는 내가 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하며, 그 말씀을 붙들고 씨름 할 때, 성령님이 오셔서 힘주시고 천사까지 동원되어 우리를 도와주는 줄 믿습니다.
내 힘으로는 고난을 이길 수 없어도, 믿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한 번 낮아 지셨고, 또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의 고난까지 다 감당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요4:34절에 보면,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을 정도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뜻이 순종하는 것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이 사명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달게 받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집에 도둑이 들어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면, 그래서 밤낮으로 아니야,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하면서 괴로워하며 현실을 부정한다가 나중에는 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할 결의를 다진다면, 새 힘이 솟고 이 고난을 이기고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축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잘 아셨기 때문에, 이후로 무슨 일을 만나도 흔들리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7. 그런데 우리는 성령께서 나를 이끌어 주시면 이제부터 모든 일이 형통하고 가장 좋은 일만 만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이 예수님을 어디로 이끌고 가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그를 천상이 아닌 광야, 그것도 짐승과 독충이 우굴 그리는 죽음의 광야로 이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어야 합니까?
아들이라면 누구든지 그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속자는 강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그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아버지의 유산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한 나라의 국가가 되었던 지 기업이든지 아무리 작은 단칸방이라도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고 그것을 더욱 확대하고 재생산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속자가 연약하고 무지해서 이리저리 속고 휘둘린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물려받아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상속자는 강해야 하며, 사랑하는 아들일수록 더욱 지혜롭게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내 몰아서 그곳에서 사단의 시험을 통해 싸워서 영원한 승리자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면, 당연히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통과 저주를 맛보지 않으시고는 진정한 메시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에 제일 먼저 광야로 나가신 것입니다.
8.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참 기뻐하는 아들로 살기 위해서는 받아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는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롬8:26)며, 예수님도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히2:18) 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아 누리지 못하도록 시험하고 있습니다.
물질로, 명예로, 잘못됨 말씀 적용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一喜一悲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하고 염려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는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에게는 듣지 않으면 안되는 음성, 귀를 기울여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는 바로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려면 그 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처럼 우리도 순종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이 임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인정받는 축복의 자녀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능력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고난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 할 때 넘쳐 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광야라는 고난의 현장으로 나가셔서 그곳에서 아버지의 음성인 말씀으로 사단을 이기고 광야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동일한 이 사건의 결과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11절에 보니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로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9. 믿음으로 살다 보면 많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습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광야의 시대와 같은 고난의 세월의 연속입니다.
광야는 유혹과 시험의 장소요 그래서 결코 편안하게 하거나 안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환경과 조건을 핑계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의 승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난 속에서 더욱 겸손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이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과 능력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기독교는 그 어떤 고난과 핍박도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아들이요 자녀의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