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3.사명자의 자리(막1:2-8)
[성경본문] 마가복음1:2-8개역개정
2.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명자의 자리(막1:2-8/2018.6.3.오전)
1. 세상은 한 마디로 자리 싸움의 전쟁터입니다.
권력에서 부터 시작하여 회사의 직책은 물론이고, 장사꾼들의 자리 다툼과 잠깐 타고 가는 고속버스나 비행기 자리까지, 심지어 죽은 사람을 위한 묏자리까지 사람들은 남보다 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서 치열하게 다투는 세상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어떤 자리가 제일 좋은 자입니까?
과연 내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이며, 내가 어떤 자리를 얻어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감투 싸움이 치열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감투 싸움이라는 것이 결국 자리 싸움입니다.
그래서 자식들까지 이 자리 싸움에서 밀리지 않도록 무엇이든지 최고나 학력까지 일류로만 밀어 붙입니다.
그래서 본인들은 물론이고 자녀들까지 원하는 대로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제자들도 이 자리싸 움에 연연하였는데, 세상이 만들어 놓은 계급 사회 같은 감투 싸움과, 이런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피 터지게 싸우는 그곳에서 과연 인간의 참 가치와 행복을 맛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하여 바르고 명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2.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에서 시작하고 있지만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은 자리 싸움이나 감투 싸움에 휘둘리고 있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가 없는 정말 불쌍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남다른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그 위에 절대적인 대중적 인기를 누리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사회의 변방에서나 맴돌면서 한 번도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권력이나 부귀나 명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그런 곳에 눈길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종교지도자로서 남다른 혜택과 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결혼도 하고 가정도 만들고, 자식을 더 훌륭하게 키워서 유대사회의 핵심적인 인물로 부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본인만 원한다면 절대적인 대중의 지지를 업고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기록된 세례요한은 그런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이나 행복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 살고 있었습니까?
당시 권력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탐욕과 낭비를 일삼으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지만, 그는 광야에 나가 홀로 거하면서 낙타 털 옷에 메뚜기와 석청이 그의 의식주였습니다.
지금이야 그가 입은 옷이나 음식은 최고급이지만 그 때는 달랐습니다.
문제는 얼마든지 제사장 가문의 출신으로서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왜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나간 것입니까?
혹시 다른 사람들과의 자리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권력에 기생하면서 파렴치하게 살아가던 종교지도자들에게 환멸을 느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로마식민지로 끝없이 착취 당하는 유대사회에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까?
3. 생각해보면 요한 처럼 불쌍하고 기구한 인생도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그 부모가 본문 2-3절에 소개된 이 일을 위해 신탁을 받았고, 그는 어려서 부터 이 사명을 위해서 특별히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세상을 향해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그가 느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인생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내 인생과 내가 원하는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즉 자신을 위해서 태어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제 자신이라는 존재를 위해 살다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맛보고 체험한 것은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묵상해 보면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세례요한에게는 하나님이 오직 그에게만 부여하신 특별한 사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사명에 매여서 한 평생 살던 사람으로, 이 사명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던지고 가버린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4.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그분의 의가 이 땅을 통치하도록 하기 위해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당연히 광야가 아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해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 뿐 만이 아니라 유대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예루살렘에 주거지를 정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조직을 만들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도리어 광야로 나갔고 그곳에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한마디로 광야의 역사입니다.
과거 출애급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전 역사는 광야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려면 당연히 그 비옥하고 좋은 환경인 애급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연 달라졌을 것입니다.
속담에 소도 비빌 언덕이 필요하고,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척박한 팔레스타인 땅에 선민의 공동체를 만들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애급인이라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내 뜻대로 되면 그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기 때문입니다.
5.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풍요로운 땅인 애급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불모지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고, 그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서 계시의 말씀을 받았으며, 광야에서 12지파를 중심으로 하는 신정국가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바위를 쪼개어 샘의 근원이 되게 하시며, 하늘의 문을 열어서 만나를 40년 동안 내려 주신 것도 광야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로부터 광야라고 하는 특별한 환경을 때어 놓고는 이스라엘을 바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그들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스라엘의 영적 중심은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광야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도 이 사실을 알았던지, 그가 회심을 한 이후에 제일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그곳에서 새롭게 변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광야가 필요합니다.
광야가 없는 인생은 인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줄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광야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남의 아픔이나 고난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인생의 광야를 경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원하지 않는 배신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인생의 광야를 거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생의 광야는 결코 고난만 있고 외로움만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6. 인류 역사의 위대한 승리를 거둔 인물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인생의 광야를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광야를 통과하면서 눈물을 양식으로 삼으면서 거듭나고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1715년, 프랑스의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가 죽자, 겨우 5살인 그의 증손자인 루이 15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백성들은 그가 강력한 리더쉽을 가지고 프랑스를 다시 위대한 국가로 만들어 주길 원하여 최고의 지성과 학식을 지닌 인물들을 불러 모아 왕을 교육했습니다.
11년의 섭정 기간이 끝나고 그가 모든 왕권을 누리게 되자 상황이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공부를 하거나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었습니다.
국가의 모든 업무는 드 플뢰리 총리에게 맡기고 그는 온갖 쾌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쾌락에 빠졌고 왕궁은 매음굴이 되고 말았으며, 나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빵집의 딸인 뒤 바리가 후궁이 되고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될 정도였습니다.
1774년, 루이 15세의 방탕한 인생은 그의 죽음으로 끝이 났지만, 프랑스 국가는 엉망이었고, 18년 후인 1792년 혁명으로 프랑스 왕권은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루이 15세와 그의 손자 16세의 삶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인생에 광야의 세월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통치자에게 광야의 고통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과 더불어 프랑스 전체가 무너진 것입니다.
7. 세례요한의 시대로 그랬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개인의 성공과 자신이 속한 종교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에 살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심령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회개의 세례를 전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보다는 이 세례요한의 음성을 듣기 원하여 스스로 그를 찾아 광야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참 놀라운 것은 국가나 종교나 공동체의 미래가 암담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심령에 목마름을 느끼면서, 위선과 거짓으로 차려입은 종교지도자들의 달콤한 메시지보다는, 지은 죄를 책망하며 회개를 선포하는 선지자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은데 주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없으며, 십자가는 있는데 사랑이 메말랐고, 감동적인 메시지는 많은데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그런 공허한 메아리가 이 세상에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회나 종교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광야가 없는 삶을 살았고, 세례요한 처럼 사명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광야가 없는 인생이야말로 그것이 인생의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오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의 주로 고백하는 이 신앙을, 시장에 가면 돈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액세서리처럼, 인생의 장식품이나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려는 사회적인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 중심의 십자가의 신앙의 가치가 이런 것입니까?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의 사명감은 의식주나 인생의 미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불타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나 언론은 물론이고 죽고 사는 생명에 관한 것도 전연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외칠 수 없었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는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자리에 머물면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세례요한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내게 만 남다른 주신 거룩한 사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그 자리에 우리가 서 있어야 하며,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자리를 지킬 때, 그 때 그 순간이아말로 인생은 가치가 있고 아름다우며, 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가 머물러야 하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를 지킬 때 어머니는 세상에서 둘 도 없는 존재로서 존경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참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한다면, 내가 받은 이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떠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9.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있고, 이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이 주는 성공이나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과 영광의 자리를 누리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사명의 자리에서 나의 왕이 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세상에 취하여 이미 받은 사명을 잊었다고 하여도, 우리는 세례요한 처럼 이 시대에 광야의 소리로서 살아갈 때, 우리는 영원히 성공한 인생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공의,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삶을 통하여 나와 우리 가정과 우리 주위를 변화시키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내 삶이 광야 한 가운데처럼 고통스럽다고 하여도, 이 광야의 고통은 우리를 새롭게 하며, 우리가 받은 사명을 더욱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