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5.우리는 바나바 (사도행전11:19-26)
[성경본문] 사도행전11:19-26개역개정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우리는 바나바 (사도행전11:19-26/2018.8.5. 주일오전) 1. 이번 단기 선교팀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목사님으로 부터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오셨습니다. 그야말로 단편 소설을 썼다고 할 정도로 긴 문장이었는데, 그 내용이 감동적이었습니다. 18명의 선교팀을 보내면서 한 분 한 분에 대한 훌륭한 장점을 가지고 소개를 하셨는데, 제가 받은 느낌은 목사님이 이 성도님들을 너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선교팀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지만, 이곳에 성도님들을 보내시면서 당회장 목사님이 이렇게 마음을 쏟아서 편지를 보내주신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 목사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저는 가슴이 아프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성도 한 분 한 분이 그렇게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웠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을 신뢰하기 보다는 의심하고, 사랑하기 보다는 나중에 내가 받을 상처를 먼저 염려하고, 또한 이단의 세력이나 교회를 이용하려 하는 불순한 사람들이 없는지 생각하다 보니, 저는 목자의 마음을 가진 목사가 아니라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고 잘되기를 원하여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면, 많은 방해물과 경쟁자들이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잘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우리가 성공하는 것을 제일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두 사람 뿐입니다. 첫째는 우리를 낳아 주신 어머니와 둘째는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입니다. 어느 어머님이든지 어느 곳의 목사님이든지 그 분들은 여러분들과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시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소원은 내 자식이, 우리 교회의 성도가 잘되는 것을 원하고 기뻐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염려하면서 위해 기도하는 귀한 목사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니,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2. 오늘 본문을 포함한 사도행전 11-12장은 초대교회에 대한 본격적인 박해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박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북쪽으로 480키로 정도 떨어진 안디옥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사도바울은 이방선교의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이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50만을 넘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기원전 300년경에 알렉산더의 후계자 중에 한 사람인 셀레쿠스 니카토르에 의해 건설된 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부친의 이름을 따 안디옥이라 했는데,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의 큰 도시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은 제2의 소돔성이라 일컬을 정도로 부도덕하고 음란하며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도시를 통해 복음의 큰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박해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 중의 일부가 이 안디옥에 모여 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를 통해서 세계를 향한 선교의 꿈을 가지고 하심으로, 이방에 선교사를 파송한 첫 번째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만난 위기를 하나님은 복음의 기회로 삼으셨고, 부흥의 기회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3.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신앙적 박해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진출하여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신앙의 대국을 건설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이방 땅인 일본에 보내신 것도 안디옥 같은 교회를 세워서 바울과 실라, 그리고 바나바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양성하여 일본과 세계 선교를 감당케 하시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문제는 안디옥 교회가 가만히 앉아서 세계적인 교회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이 믿음을 지키려는 수많은 성도들과 사도들이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교회, 선교를 가장 많이 하여 많은 영적 열매를 거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할 사람이 있으니 바나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24) 고 하였습니다. 4. 우리 교회가 벌써 34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월이 34년이나 흘렀다는 사실이 아니라, 교회가 사신 우상의 나라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공동체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편하게 하려고 하는 가운데서,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선교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교회가 받은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가 크고 사람이나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사명을 깨닫는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바나바 같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자꾸 생겨날 때 선교의 문은 점점 열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도덕적인 품성이 원래 선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바나바에게는 착한 품성을 주셨습니다.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교회가 34년의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와같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이 교회에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사기꾼 도적놈도 불러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하신 때를 위해 미리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물에 떠내려가는 모세를 건지셨고, 그래서 그를 왕궁에서 40년 간 자라게 하심으로 훌륭한 지도자로 만드셨습니다. 요셉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사무엘도 그랬습니다. 누가 시골 깡촌의 목동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이 나올 줄 알았겠습니까? 누가 형제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왕따 당하는 동생이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어 자신들의 생명을 기근에서 구원할 줄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이 시대의 교회를 통하여 일본 복음화의 일꾼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예비된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가 안디옥에서 본 것이 무엇입니까? 23절에 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11:23)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에 하나님은 광성교회의 여러분을 만나게 하셨고, 작년에 이어서 두 번째 선교팀으로 이곳을 방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 모두가 일본 땅 오사카에, 그것도 이 오사카중앙교회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 때문에 당해야만 하는 환란이나 결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바나바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교회가 어렵다고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믿음으로 십자가를 붙들고 승리할 때 까지 인내하는 사람들입니다. 선교팀이 계속해서 찾아와 주신다는 것은, 이 오사카가 영적인 안디옥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눈으로만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그 다른 하나가 바로 믿음의 눈이요, 바나바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영적인 눈인 줄 믿습니다. 육신의 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지만 영의 눈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24절에 기록된 대로 바나바처럼 성령과 믿음에 충만하지 않으면 이 눈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6. 그렇다면 믿음의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도행전 4:37절에 보면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땅이나 건물, 부동산은 산성과 같고 요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귀한 것을 함부로 내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바나바는 왜 남들이 쉽사리 하지 않는 이런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바나바는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분명히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를 보았기 때문에 남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재산을 어떤 일에 다 바쳤다는 것은 그곳에 자기의 전부를 던졌다는 의미입니다. 마13:44에 보면, 예수님이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평생을 살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너무도 엄청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이 자기 재산을 다 걸었던 것입니다. 그는 눈이 열린 사람이요, 생각이 열린 사람이요,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열린 눈으로 23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나바의 열린 눈이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과 그 은혜가 어디에 임하는가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말이요, 그 분의 소원이 이방 땅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이요, 그래서 그는 세계를 향한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그곳에 던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7. 과연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방 땅에 많ㄹ은 재정과 수고를 감수하면서 단기선교팀을 파송한다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나바처럼 그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인 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사울과 다윗의 내용이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과 용모를 가진 사울 왕을 나중에 하나님이 버렸습니다. 그런데 작고 볼품도 없는 시골 목동인 다윗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울왕은 외모는 번듯하고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어도 그 속사람이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정욕을 쫓아 가다가 버림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착하고 진실한, 그러면서도 큰 꿈을 가진 다윗에게는 사울이 누릴 것 까지 더하여 하나님이 끝까지 동행하시면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바나바에게 주의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마음에 불이 붙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에 왔지만, 이곳에서도 복음의 최전선에 앞장을 서서 사람을 키우면서 복음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주저하고 있으며, 많은 핑계를 대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주님 앞에 내 자신을 드리기를 망설이고 있습니까? 주의 충만한 은혜가 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교회 오면 속상하고,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들만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8. 그러나 바나바는 보았습니다.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에서 뿐 아니라, 죄악의 도성인 안디옥에도 주의 은혜가 크게 임하고 주의 손길이 믿는 자들과 함께함을 목격하였습니다. 사도들 뿐 아니라 평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도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 헬라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는 것을 보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혹시 과거 때문에 일본을 미워하고, 일본의 정치가나 특정 집단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우리가 속상한다고 해서 한일관계에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이 착하고 진실한 사람의 특징은, 잘못된 사람이나 죄인을 볼 때 늘 불쌍히 여기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7곱 번 뿐만이 아니라 7번을 70번까지 반복해도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가 과거에 대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꾸 자꾸 사과하라고 하는가? 언제까지 사과해야 속이 시원한가?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이 이제는 되었다고 말할 때까지 나의 태도나 말에 문제가 많은가 보다 생각하고 더욱 간절함으로 용서를 빈다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서로 간에 이것이 되지 않으니 피차에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9. 더 놀라운 사실은 25-26절에서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라는 곳까지 찾아가서 그를 데리고 와서 함께 동역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열린 사람이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당시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은 사울이라고 하면 아무도 상대를 하지 않았던 때 입니다. 그 사람을 불신하고 거부하고 미워하는데 바나바는 그를 데려다가 함께 동역 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한일관계에도 바로 이런 바나바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착하고 진실하여 남들이 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는 일까지 앞장서서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일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선교이고 바로 이것이 교회의 부흥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람, 주의 은혜가 함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좋으면 하고, 싫다고 그만두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하고만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지 먼저 생각하고, 비록 내 마음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기꺼이 참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동역 하는 것입니다. 10. 안디옥 교회는 박해 중에 일어난 평신도 중심으로 부흥 된 교회입니다. 그 교회 가운데 유능한 평신도 지도자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큰 무리가 주께 더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24).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선교지원군인 광성교회를 만났습니다. 여러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면서 힘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안디옥 교회를 찾아간 바나바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 결과 안디옥교회는 물론 안디옥 지역이 바나바 같은 사람으로 인해 구원의 큰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이 오사카에서는 광성교회와 우리 교회가 하나가 되어 복음을 전한다면, 오사카는 일본에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일본에서 제일가는 축복의 땅이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