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5.왜 고난을 받으시는가(히브리서 5:7-10)
[성경본문] 히브리서5:7-10개역개정
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왜 고난을 받으시는가(히브리서 5:7-10/2018.3.25.오전)
1. 어느 부부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눈물로 도움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2개월 된 아들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는데 뇌막염이었습니다. 의사는 혹시 치료가 된다고 해도 소경이나, 벙어리, 귀머거리, 또는 반신 불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 날들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병원에 가보니 아이는 의식도 없이 링거를 꼽고 누워 있는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온 교인들과 함께 아이의 생명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는 깨끗이 치료가 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하나님이 아이를 건강하게 살려주셨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남들에게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자유당 시절에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최인규씨와 그 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인규 하면,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그가 부정선거의 원흉이고, 데모하는 사람들을 학살한 악질로 나오지만, 실제는 정말 믿음대로 살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연희전문학교를 거쳐서 미국 뉴욕까지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지만, 교통부 장관을 하다가 갑자가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을 하라고 하니, 도무지 감당이 안 되어서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평생을 새벽기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내무부 장관직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밤에 남산에 올라가서 함께 기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4.19 혁명과 군사혁명을 거치면서 주위에서 그의 사람됨을 아는 사람들이 그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많은 노력을 했지만, 본인은 죄 값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심지어 해외로 도망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그것은 남자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물론이고 남들이 잘못한 것 까지 다 자기 죄로 자백을 하고 사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진실은 어두움에 덮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잘못된 내용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선악 간에 하나님만이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2. 고후 12장에 보면, 사도바울은 3층 천국까지 올라가 볼 정도로 남들이 맛보지 못한 신령한 세계를 경험하였고, 그 이외에도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사람을 살려낼 정도로 믿음이 충만하고 영적으로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 중에 하나는 드로아에서 밤늦도록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2층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었을 때에도 그 자리에서 그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행20:7-12).
그런 사도바울이었지만 그의 삶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박해와 고난의 세월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특히 남들의 질병은 잘 고쳐주면서 자신을 가장 난처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드는 질병은 고치지 못했고, 평생 육신의 생활은 고통 가운데 보내다가 로마에서 목이 떨어지는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욥과 같은 경우도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정직한 사람이 도중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난 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예수 잘 믿으면 복을 받고 그 자녀들도 형통하다고 하는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잘 믿는 사람들도 고난이 많고 어려움이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것도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분이, 왜 그렇게 고난이 많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33년의 전 생에는 출생에서 시작하여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난으로 충만한 생애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도 없으시면서 고난을 받으셔야만 했는지, 또 우리는 왜 믿음으로 사는데도 불구하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3. 눅17:25에 보면,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고난은 이 세대 즉 그 분이 살아계셨던 그 시대로부터, 함께 하였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일본의 이지메는 참 무섭습니다.
한 번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면 그 때부터 세상은 캄캄해지고 맙니다.
친구도 동료도 이웃도 다 사라지고 나는 미운 오리새끼 한 마리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특히 종교지도자들에게까지 버림을 당하셨고, 제자들의 배신까지 당하시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실 때, 다른 많은 말들을 남겨놓고, 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라고 하셨겠습니까?
출생하실 때, 헤롯 왕이라는 정치세력으로 부터 공격을 당하여 애굽으로 피신하였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다보니 평생을 가난함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으셨고, 그들에게 선동 당한 이스라엘로부터 버림 당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제자들의 배신과 십자가 위에서는 자신을 이 세상에 메시아로 보내주셨던 그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당하시고 말았습니다.
과연 여러분 같으면 이런 상황을 견디며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자신을 위해서 못 하실 일이 없으며 자기 방어나 자기 변호를 위해서 행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4. 여기에 대한 대답이 마26:5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체포 당하실 때, 의분에 넘치는 베드로가 칼을 휘두르며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할 때,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잡히셨고, 결국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도 죄의 삯인 사망 곧 죽음을 맛보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당하는 죽음의 고통을 대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인간의 육체를 통해서 역사하는 죄의 세력을 멸하고, 그 죄를 그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벧전4:1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죄를 마비시키고, 그 활동을 영원히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믿으면서도 박해나 고난을 받는 것은 아직도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배운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말하는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운다는 이 배움이라는 것은, 체험을 통해서 습득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순종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죽음에 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만 하는 것입니까?
본문 9절에 보니,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 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 곧 그를 믿는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고, 이렇게 배운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함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영원히 사는 종교입니다.
대한민국 산악 등반대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을 때의 일입니다.
8,848미터의 정상에 오르기 전에 먼저 그들은 이 산을 도전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각자 가슴 속에는 성경책을 품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산소통의 공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그들에게 최대의 위기가 왔습니다.
그 때 그들은 시121:1-2절의 말씀인,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줄 믿고 그냥 전진하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눈 덮인 계속 속에서 13개의 산소통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주 비행사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13개 중에 12개가 산소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시는 놀라운 체험을 통해 큰 힘을 얻어 정상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어렵고 힘들 때,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때, 죽기를 각오하면 그런 위기 속에서 참 신앙의 능력과 축복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6.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고난 받은 자들을 도와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생각을 조사했는데, 거의가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 당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은 진취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눈앞에 가로 놓인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렇게 담대하게 할 수 있습니까?
히2:18절에 보니,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도 사단의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명예의 시험, 종교적 시험, 온갖 수치와 고통을 다 맛보셨습니다.
여기서 도우신다는 이 말의 의미는, 울음 + 달래다 는 합성어로, 울음소리를 향해 뛰어간다는 뜻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경험하셨고, 우리의 부족함과, 부끄러움도 경험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으로 통곡하고 슬픔으로 눈물을 흘릴 때, 그 소리와 모습을 보시고 우리에게로 속히 달려오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헬렌켈러 여사는 귀와 눈과 입이 전연 기능을 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모든 것이 닫힌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열린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외롭지 않았으며, 고통스럽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세상을 향해 닫힌 것들로 인해 하나님을 향해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것으로 감사했던 사람입니다.
7. 사도바울은 갈6: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 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왜 이 세상에 오셨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의 능력과 권세를 가진채로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세상이 주는 모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당하시면서 잠잠히 순종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고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이루시는 주님을 따라, 자신도 그렇게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배우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그의 영광에 들어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은 당연히 오늘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함인 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주님이, 그 영광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려고 오늘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며, 또한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는 모든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