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1.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한복음5:24-29)

[성경본문] 요한복음5:24-29개역개정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한복음5:24-29/2018.4.1.오전)
1. 미국의 류 윌리스라는 저술가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어느 날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런 과학 시대에 말도 안되는 신화 같은 예수를 믿는 것이 너무 어리석은 짓이니 한 번 반 기독교적인 책을 써서 꼴 보기 싫은 기독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연구해서 잘못된 내용과 불합리한 것들을 세상에 밝혀내어 기독교 신앙을 무너뜨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때 부터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또 읽고 연구하기를 반복하는데,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한 로마의 백부장 처럼 과연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신론자로서 반 기독교적인 책을 쓰려고 성경을 수십 번 읽은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인류의 영원한 구세주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써낸 책이 그리스도 이야기였고, 이것은 나중에 벤허라는 영화의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말하기를, “나는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하며 史料를 조사했는데, 지금까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것처럼 진실한 연구가를 만족시킬 만큼 순수하고 풍부한 증거를 가진 역사적 사건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인류 역사의 사건들 중에서 가장 뚜렷하고 분명하고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분명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인류 역사를 부인하고 왜곡하는 것이요, 진리에 대항하는 어둠의 세력이 될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축복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새 시대를 열었고, 오늘날 지구촌의 선진 문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2018년도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사복음서와 많은 서신서들이 일관되게 증거하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부활의 능력을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고전15:3-20절에 보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이후 3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베드로가 증거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5백 여 명의 신자들이 증거하고 있으며, 또한 야고보를 포함한 모든 사도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나 고기잡이 거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는 예수님을 3번 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배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부활 이후에는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받게 되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의 증인이 되어 마침내 로마에서 순교함으로 일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3. 의심이 많았던 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사건을 믿을 수 없다고 버티다가, 나중에 눈앞에 다시 나타나신 그 예수님의 손에 난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는 고백하기를,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요20:25-28).
겁이 많았던 다른 제자들도, 처음에는 고난당하시던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목격하고 나서는 베드로처럼 그렇게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잡히심과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낙심하여 시골로 내려가던 엠마오도상의 두 제자들도,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가던 길을 되돌아 와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부활의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눅24:13-35).
오늘날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자라고 있으며, 환란과 곤고가 많은 이 세상을 어떤 믿음의  능력으로 이기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얻었고, 이로 인하여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과, 이 세상을 살면서 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또한 그 분의 부활에 우리 또한 동참하는 그런 영광의 그 날을 소망하며 사는데 있는 줄 믿습니다.

4. 일본이 2차 대전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 단기간에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지금도 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힘이 있는 국가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북해도(北海道) 대학의 전신이었던 삿뽀로 농업학교(札幌農業学校)가 문을 열었을 때, 미국에서 메사추세스 농과대학의 학장으로 있었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교수를 초빙하여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었던 나중에는 동지사 대학을 설립하게 되는 니지마 죠우(新島襄)의 요청을 받고 1876년 7월에 북해도로 왔습니다.
그 때 클라크 교수는 성경이 아니고는 그 어떤 도덕교육도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성경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해서 허락을 받고, 만일 성경을 가르칠 수 없으면 그 날로 나는 귀국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일본에 들어오면서 수십 권의 성경책을 가방에 넣고 들어와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매일 아침마다 수업 시간 전에 성경을 강의하고 나서 수업에 임했다고 합니다.
불과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당시의 학생들에게 끼친 영적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클라크 교수에게 성경을 배운 그들은 예수를 믿는 자의 서약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받은 우리는 그 분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그 분의 제자로서 충성을 서약하고, 신행일치의 삶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갈 것을 하나님과 옆에 있는 동료들끼리 서로 서약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들은 클라크가 일본을 떠난 뒤에도 변함없이 이 서약을 지키면서, 그들이 또 다른 학생들을 제자 삼아서 성경을 가르칠 때, 일본을 움직일만한 유수한 인재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는데, 그 가운데는 무교회 주의자로 알려진 우찌무라 간조(内村鑑三)도 있었습니다.
클라크는 5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내 일생에서 삿뽀로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가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신앙과 그가 가지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1백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전 세계를 놀래게 만드는 경제 대국의 힘이 되고 말았습니다.

5.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어떤 의미를 주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까?  
마27:66절에 보면,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하고 그 분의 무덤이 오늘날까지 비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은 기독교가 부활과 생명의 종교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이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하는 줄 믿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왜 그렇게 뜨거웠고 많은 박해와 장애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교회의 모태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파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는 성령충만의 역사요, 둘째는 설교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순식간에 성령 충만과 회개의 역사를 가져왔고, 그러므로 그들은 온몸과 재산을 드려서 이 지상에 교회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빈 무덤은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며, 영원한 소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이 부활의 사건은 오늘 우리 안에서도 생명으로 살아 역사함으로, 우리는 매일 죄와 사단의 세력을 이기고, 세상의 온갖 유혹을 이기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주님의 몸 된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반석위에 시간이 갈수록 든든하게 서가는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신앙의 확증입니다.

6. 요11:25-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는 이미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 평안을 얻었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이 있는데 이곳을 그리스도로 채우기 까지는 (우리는)아무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그 어떤 수고와 희생을 통해서도 채울 수 없는 우리 심령의 깊은 곳까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히 채우는 줄 믿습니다.
오늘도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우리 주위에는 온통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 속에서 평안이 없이 끝없이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인생의 올바른 목적이 있을 수 있으며, 과연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할지 답을 얻었습니다.  
인생이란 환경이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거나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대로 우리의 심령 속 깊은 그 빈 공간을 그리스도로 채우기 까지는 그 누구도 변화될 수 없으며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7. 인생은 원래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바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 분의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의 빈 마음을 채우고, 그 분의 변함없는 은혜로 우리의 빈 심령을 채우므로 두려움도 물러가고 공허함도 사라지고, 미워하고 분쟁하고 낙심하는 마음도 물러가고 감사와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부활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만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29절에 분명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자는 신앙의 세계와는 관계없이 반드시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부활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생명과 영광의 부활이냐, 아니면 영원한 형벌에 이르는 심판의 부활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연약한 인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참 사랑을 얻었고, 말씀과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됨으로 발견하는 새로운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전에 몰랐던 놀라운 믿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오는 사단의 온갖 유혹과 간계를 물리치면서 넘치는 기도응답을 누리는 줄 믿습니다.

8. 전 유럽을 정복하며 위세를 떨치던 나폴에옹의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국경도시인 펠드리히에 침공했습니다. 군대가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의 시의회는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까지 항전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설전 중이었습니다.
그 때 존경받는 사제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는 예정대로 종을 치고 사람들을 모아 예배를 드립시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의지하면 이 전쟁에서 질 것이요, 하나님께 예배하면 사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시내의 모든 교회들이 예배를 알리는 종을 일제히 울리기 시작하였고, 나폴레옹 군대는 그 엄청난 종소리를 듣고 이것이 오스트리아의 굳은 결심이라고 생각하고, 공격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대신 죽으셨고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셔서, 그 부활의 생명의 능력을 내게 부어주시고, 그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도록 축복해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 분의 사죄의 은총은 물론이고, 그 분의 부활의 능력이 오늘 우리와 우리 가정에 충만히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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