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7.듣고 본 그 모든 것(누가복음2:15-20)

[성경본문] 누가복음2:15-20개역개정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듣고 본 그 모든 것(누가복음2:15-20/2017.12.17.오전)

1. 흔히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라고 하면서 왜 이 세상은 지나치게 불공평하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아름답지 못할까,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는 좋은 것들 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험과 기억들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는 달리, 불량품이거나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께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세상을 불량품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욕심이 우리의 모든 환경과 삶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온 그 죄가 우리를 고통하게 만들고, 인생에 만족을 주지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늘 불평과 불만과 의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대적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서 피터지게 싸우고 저항하고 짓밟고 방해하다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살면 살수록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지금 세계 인구가 76억이 넘었는데, 2천50년에 가면 98억이 된다고 합니다.
벌써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부족하고, 많은 자원들이 고갈되고 있고, 대기오염은 당연한 것처럼 되고 말 정도로 이 지구촌은 총체적인 위기 가운데 빠져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많은 나라들이 도시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건축물의 자재인 모래가 부족해서 심각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철거되는 건물의 콘크리트를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까지 모래는 거의 꽁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질 좋은 모래를 확보하기 위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래 때문에 심각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해변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집이나 건물들이 지나친 사채(沙採)로 인해 지반이 내려 앉아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되는 현상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싱가폴 같은 도시국가들은 모래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합니다.
어쨌든 한쪽은 모래 덕분에 건물을 세워 돈도 벌고 살 집을 마련하는데, 다른 한 쪽은 그것 때문에 집을 잃어버리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면서 인생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더 많은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이 탐욕이 결국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담 이래로 시작된 죄의 역사가 온 인류를 고통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 지구촌과 우리의 삶을 황폐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천국처럼 완벽하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을 아담과 하와에게 관리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 인생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더 아름답고 행복한 지구촌을 만들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지만, 이 믿음은 마치 씨앗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더 위대하고 아름답게, 산을 옮길만한 힘 있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필요한 은사를 주셨고, 축복을 베풀어 주셨는데, 죄로 말미암아 탐욕에 빠진 우리들은 도리어 이 은사와 축복을 개인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만들고 말았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고통하는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아름답게 창조되어진 인간의 모습은 점점 생명의 빛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마귀의 형상을 닮아 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래서 어둡고 살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책임이고 우리의 책임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나 현상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돈이나 성공이나 명예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평생 쓰고도 남을 재물을 쌓아 놓아도,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누린다고 해도, 이런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남들보다 성공하고,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누려왔던 그런 좋은 것들이 도리어 나와 내 가족들을 고통하게 만들고 절망가운데로 몰아넣는 화근이 되고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아 흩어짐을 면하자고 맹세하던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그토록 수고하고 공 들였던 바벨탑이 무너질 때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완벽하고 온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끝을 찾아간다고 하여도 이 세상에서는 그런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으며, 내가 죽을 때까지 평안하고 행복하고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죄 가운데 빠져있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인생은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면서, 밤새도록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라고 하면, 그 당시에 가장 비천한 부류로 취급을 받던 사람들입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성육신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중심으로 이 사람들을 심도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사복음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장 많이, 가장 자세히 다루고 있는 복음서가 이 누가복음입니다.
물론 1장에서도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 미리 많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었던 당일에 이 사건을 제일 먼저 접한 사람들은 바로 이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연구하거나, 율법학자들처럼 예언서에 정통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천사가 와서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족하고 비천하고 연약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하지 않고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성경적으로 보면, 남들보다 도리어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강력하게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문제는 그들에게 천사가 찾아왔을 때, 그들은 심히 두려움에 빠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처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영적 사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과 상식에 비추어보면, 어떤 중대한 내용이나 문서를 전달할 때에는, 가장 신뢰하고 똑똑하고 민첩한 사람을 택하여 보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장 연약한 목자들을 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어떤 인정받을 만한 공로나 자격이나 능력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눈만 뜨면 들에 나가서 양을 치면서 살기 때문에 세상 바깥의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어떤 경험은 물론이고 거의 무지에 가까운 그런 사람들입니다.
늘 반복된 생활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이상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린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야말로 기쁨이 없는 인생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소망이 없는 삶 속에 소망을 심어 주시고,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보다 더 풍요로운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이 천사를 통해서 들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눈으로 목격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고 하는 천사들의 찬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알 수 없는 내용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가서 확인하라거나 또 이것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라는 명령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15절에 보면, 12절에서 천사들이 전하여 준 내용을 확인하러 스스로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양떼를 두고 지체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찾아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0절에,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는 말씀에서, 이 목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이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을 알리는 사명을 주셨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단 천사를 통해 들은 이 복음을 사람들이 알도록 해야 겠다는 사명감이 발동한 것입니다.
인생살이도 그렇지만 신앙 생활하면서 늘 잊어서는 안 되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사명과 사명감의 차이입니다.
사명이라는 것은 인생이라면 누구나 부여 받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명감은 다릅니다.  

6. 아이를 출산하면 여자에게는 당연히 어머니로서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어머니로서의 사명감이 있으면 아무리 어렵고 험난한 환경이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아이에 대한 미래의 아름다운 소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명감이 없으면 내 뱃속에서 나온 핏덩어리를 그냥 내다 버리게 됩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어렵다고 슬그머니 도망가거나 숨어버리는 사람은 교회에 대한 사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야 여기 아니라도 다른 곳에 가면 더 잘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세례를 받고 은혜를 받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교회와 복음에 대한 분명한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서 직분을 받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믿음의 경우는 교회나 환경이 어려울수록 사명감에 불타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어떤 욕심이나 다른 의도가 아니라 그 사람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믿음의 분량만큼 타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사명이 아니라 사명감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이 말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들이 사명감에 불탔기 때문에 베들레헴의 현장에 가 보자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래서 가 보았더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보다 먼저 만나 뵐 수 있었고, 그 역사적인 현장, 축복의 현장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비천한 목자들이었지만, 천사가 전해 준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듣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될 때, 그들은 역사적 현장의 증인이 되었고, 더 놀라운 것은 복음의 나팔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까지 그들은 이 성탄절의 증인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7.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사마리아성을 에워싸고 공성을 벌일 때, 비둘기 똥이 고가에 팔릴 정도로 양식이 없었고, 나중에는 자기 자식을 삶아 먹는 끔찍한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7장에 가서는 하나님이 아람군대에게 두려움을 주시니 그들이 밤에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4명의 문둥병자들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차라리 적군의 진영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해보자고 해서 갔는데, 아람의 온 진영이 텅 비어 있었고, 그들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전리품을 거두었지만, 지금 사마리아 성 중에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왕과 모든 백성들을 생각할 때, 두려움과 양심의 고통을 느낀 나머지 이 사실을 알리게 되어 사마리아 성이 기사회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날이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왕하7:9) 고 하였습니다.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사마리아 성에게 있어서는 아람군대가 도망간 것은 복음 중의 복음이고, 기쁜 소식 중에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 중에라도 생명을 살리는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 소식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8. 요즘의 세상을 보면 남들이야 어찌되었던지 나만 안전하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었다는 그런 심각한 이기주의가 팽배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남들이 나보다 못되기를 바라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적이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사랑이 식은 것이고 이것이 말세의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도들도 복음을 전할 생각이 옛날 보다 약하고, 가정에 믿지 않는 식구들에게 대한 위기감이나 영적 부담감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무너진 철교를 향해 기차가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려간다면 제 몸으로도 막아내는 것이 이웃 사랑이고, 또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사명입니다.
며칠 전에도 일본 신칸센의 차량에 균열이 간 것을 발견하고 당장 운행을 멈추게 했는데, 그냥 두었다면 탈선으로 대형 사고를 낼 뻔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고 보고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내가 누리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가족이나 남들에게 증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부끄러운 자가 될 것입니다.
목자들이 천사를 통해 들은 이 기쁜 소식인,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이 아기는 목자들뿐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과 헤롯 왕까지 들어야 할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듣고 본 그대로의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면, 이 세상은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뀔 것이고, 두려움에서 평안으로 바뀔 것이고, 가난과 질병과 무지에서 벋어나 영생과 축복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강탄은 물론이고, 삶의 현장에서 매일 체험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그 은혜를 우리의 삶으로 증거하고 나누는 그런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