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0.위로를 기다리는 자(누가복음2:25)

[성경본문] 누가복음2:25개역개정

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위로를 기다리는 자(누가복음2:25/2017.12.10.오전)
1. 산모가 태내의 생명이 출산하는 날을 기다리고, 일하는 사람들은 월급날을 기다리고, 학생들은 졸업하는 날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고, 농부는 풍성한 수확을 꿈꾸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고, 고기잡이로 나간 선원들을 무사히, 그것도 만선으로 돌아오기를 가족들과 선주가 기다리고, 어린아이들은 성탄절에 산타 할아버지가 좋은 선물을 가져오기를 꿈꾸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억압과 착취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신음하고 있는 저 차가운 북녘 땅의 고통당하는 자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지고, 대한민국의 잘못된 정치나 경제나 교육, 그리고 종교가 개혁되고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만사가 다 기다립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도 마찬가지이고, 특히 신앙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것 한 가지도 바로 이 기다림입니다.
성도는 복되고 거룩한 주일을 중심으로 일주일 단위로 살아가는 존재로 늘 이 날을 기다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후에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고, 교회에서 반가운 얼굴로 만나는 성도들을 기다리고, 다니엘 기도에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일 년 내내 11월의 다니엘기도회를 또 기다리고, 종말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림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모든 것도 다 기다림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기다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우리의 신앙생활도 기다림이 없이는 믿음을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 기다림에서 우리 각자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러한 기다림에 대한 중대한 사실은 우리에게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2.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성도가 살았는데,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한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 4주간을 강림절이라고 하기도하고, 대강절이라고도 하는데, 이 대강절의 의미가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강림절을 영어로 보면, Advent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타나다, 도착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탄절 전야까지 4주 동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아들을 사모하고 있었는지 대강절이라는 절기를 만들고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에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겠습니까?
그들의 간절함이 대강절이라는 용어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구약 시대의 사람들, 특히 언약의 말씀에 충실한 사람들에게는 유일무이한 소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대망이었습니다.
이 메시야에 대한 대망은 그들에게 임하는 고난과 역경이 심하면 심할수록,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뜨겁고 강력하고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3.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언약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소망가운데 힘을 주시기 위하여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는데, 그들이 외치는 핵심적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있는 언약의 백성을 위해서 때가 되면 친히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자기 백성을 저희들의 죄와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위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구약시대의 사람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11:13-14)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이 비록 육신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메시야를 만나 보지 못하였고, 영원한 위로를 맛보지 못하였지만, 그런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고, 또한 영원한 하늘나라를 기다리며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이 예루살렘의 시므온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이 하나님의 위로가 살아생전에 나타날 것을 확신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기다림은 시므온뿐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안나라는 여선지자도(눅2:36-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막15:43).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조상들이 살아생전에 메시야를 만나 보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마지막 까지 기다리다가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간 것에 감동을 받아, 이 사람들도 의심 없이 흔들림이 없이 메시야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4. 이러한 기다림은 구약시대의 성도들만의 기다림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이 기다림에 대하여,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1:7)고 하였고, 계속해서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리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라고 함으로,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이미 구약에서 예언하신 동일한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원의 주로 오셔서 우리 모든 죄를 담당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신약시대의 기다림은 다른 기다림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영접하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그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오늘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의 그 예언이 성취된 것을 많은 증인과 증거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오시는 재림의 기다림을 의심없이 흔들림이 없이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 임하는 특별한 은총이요 은혜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중대한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이 세상에 메시야로 보내신 하나님도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차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려고 일어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합니까?      
5.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의 시므온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고 하였고, 그 뒤에는 계속해서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의롭고 경건하며, 또한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을 가리켜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가 예수님처럼 전연 죄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을 잘 준수하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경건하다는 이 말은 종교적인 의무에 충실하여 매우 헌신적인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나 종교인으로나 모범이 되고,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도 신실한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본문 아래의 26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 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조상들과 선지자들도 그렇게 기다리며 보기를 원했던 메시야 그리스도를 살아 있을 때 그를 분명하게 볼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의 시므온이  경건하고 거룩하고 종교적인 열심히 남달라서 메시야를 눈으로 보고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다 불경건하거나 불충하였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6. 예루살렘의 시므온이 평소에 드나들며 기도하며 예배하던 그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한 날로 여겨서 세상의 모든 노동을 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성전에 올라와 경배하는 이 예배의 행위 자체가 바로 기다림의 절정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예배를 가리켜 기다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예배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날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통해 천군천사의 화답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구약시대의 메시야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지금 올려 드리는 이 예배는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기다리는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연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 집중하게 되고, 예배를 통해 응답과 축복과 능력이 임하므로 기다리는 자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7. 그런데 기쁨이라고 하면, 구약성경에 보면 4가지 종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히브리어로「싸마흐」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기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즐거움과 형통함, 또한 자부심이 충만한 상태를 가리켜 「싸마흐」라고 합니다.
둘째는,「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서 돌아다니고 흥분하고 몸을 떨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싸마흐 보다 한층 격렬한 기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셋째는,「알라츠」와 「쑤스」가 있는데 이것은 가장 최상의 강력한 기쁨을 의미하는 단어들입니다.
물론 이 세 번째의 기쁨은 예루살렘의 시므온이 기다리는 구원과 위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맛보는 기쁨도 각각 그 심층이 다르고 폭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각각 다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 그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기다림의 마음과 자세입니다.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40:1)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응답을 남다르게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시편 기자는 간절한 기다림에 응답의 축복을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예배를 통해서 이러한 간절함이나 기쁨으로 충만할 수 없습니까?
그 분에 대한 간절함이, 그 분의 임재를 간절히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예배를 시간 때우기나, 종교적인 의무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 이 시간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간절함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부터 우리의 예배는 달라지고, 우리의 몸과 심령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8. 예루살렘의 시므온이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성령이 함께 하시고 동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조상들로부터 시작하여 기다리던 그 메시야를, 그 또한 평생에 걸쳐서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만난 메시야로 인한 그 기쁨이 어떤 기쁨이겠습니까?
온 이스라엘이 그토록 대망하던 메시야, 그 분의 오심을 갈급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모함과 그 기다림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기다림이 알게 모르게 믿음의 사람 시므온으로 하여금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이같이 하나님의 위로와 응답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기다림에는 반드시 응답의 기쁨이 있고 만남의 기쁨이 있고, 회복의 기쁨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경건한 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기다림에는 반드시 응답하시고 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2017년의 끝자락에 서면서 고통과 두려움과 근심에 더하여, 흉흉한 소식으로 흔들리는 이 시대야 말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때에 위로와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기다림 속에, 이 세상의 빛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한 사랑과 구원이 온 땅에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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