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8.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호세아14:1-4)

[성경본문] 호세아14:1-4개역개정

1.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2.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3.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4.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호세아14:1-4/2018.2.18.오전)
1. 엔도 슈샤쿠(遠藤周作)의 「침묵沈黙」이라는 작품은 에도시대에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당할 때의 내용으로, 마카오에 머물러 있던 세바스챤이라는 포루투칼 신부가 자신의 은사인 페라이라 신부가 박해를 견디지 못해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을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작년 이맘 때 쯤에 일본에 공개된 이 작품은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감명을 주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등장인물들 가운데 구보즈까 요스케 라는 배우가 연기했던 가찌지로라는 일본인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꾸레 기리시단(隠れキリシタン)이었지만, 당국에 자신의 신앙이 발각이 되자 십자가에 침을 뱉으며 신앙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신앙을 버렸다가는,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서 다시 신부를 찾아와서 고해성사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또 다시 가롯유다 처럼 돈을 받고 신부를 배신하여 팔아넘기고 맙니다.
옥에 갇힌 신부를 찾아와서 또다시 용서를 구하지만, 그 후에 후미에(踏み絵)를 밟고 또 다시 변절하기를 반복합니다.
더 이상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다시 참회를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찌지로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갈등과 고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갈등이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가장 불쌍하고 못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만일 내가 이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훌륭한 신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그를 기피하였지만, 마지막 장면에 가서 이미 배교를 하고 일본 정부의 이용물로 전락해버린 신부 세바스챤을 다시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 있었는데, 왠지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보였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곁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서, 거듭된 배신과 그로 말미암아 내가 당해야 하는 고통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고 물었던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무제한의 용서를 떠나서 단순한 계산으로 보아도 490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 오늘 호세아서의 마지막 부분인 14장을 보고 있는데, 호세아서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인생이 죄로 말미암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는지,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인간이 그 어떤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는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으니 선지자 호세아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선지자 호세아와 고멜 과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내린 첫 명령이 무엇입니까?
1:2절에 보니,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 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나라가 여호와를 더나 크게 음란하" 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선지자는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자녀까지 얻었지만 고멜은 이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가출하였고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 안겼습니다.
호세아는 사창가에 팔린 아내를 데려 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값을 치러야 했지만, 고멜은 남편 호세아의 사랑에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호세아에게 그녀를 용서하고 다시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음란한 고멜 처럼 하나님을 떠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3. 지난주의 13장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의 형편이 너무 처참하고 앞으로 받을 형벌은 더 더욱 무서웠습니다.
왜 언약의 백성이 끔찍한 고난을 당해야 하고 마침내 잔인한 이방인에게 망해야만 합니까?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의지해서는 안 될 것들을 의지하였고, 사랑해서는 안 될 것들을 사랑하였고, 믿어서는 안 될 것에 소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짐짓 행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신부 세바스챤에게 배신과 고통을 주는 가찌지로 같은 사람을 누가 고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수행이나 자기 성찰을 통해 어느 정도 인격의 변화를 보일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변화에 불과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고 감당하기 힘든 한계점에 이르면 누구나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고장 난 시계는 시계 전문 수리 점에 가져가야 제대로 고칠 수 있고, 자동차는 구입한 회사 의 판매 대리점에 가지고 가면 알아서 다 고쳐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스스로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의 도움을 구하고 그를 의지할 때,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직접 고쳐 주시는 줄 믿습니다.

4. 세상 살면서 사람 잘못 만나면 내 안에 쌓인 악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사람 잘 만나면 그것들이 잠잠하고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변화가 아닙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그 분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만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되고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잠27: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내 주위에 변화되지 못한 위선자들이 많으면 그것이 바르고 정당할 줄 압니다.
그래서 친구도 잘 만나야 하고, 배우자도 잘 만나야 하고, 교회도 잘 만나야 복이 됩니다.
인생의 행복은 사람 잘 만나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성공합니다.
이러한 만남의 축복도 하나님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임금부터 시작하여 온 나라가 우상과 탐욕으로 가득했습니다.
우상숭배라는 것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 안에서 나옵니다.
남들이 비단옷을 입었다고 나도 비단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내 수준을 넘어가는 모든 것이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욕심을 성경은 가리켜 우상숭배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동안 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막고 정욕에 이끌리는 데로 살다보니,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과 행위를 따라 받을 심판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 주는 것이 13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너희 중에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5.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정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본문 1절에 보니,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는 것입니다.
여기서 돌아온다는 것은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처음부터 있었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그곳에서 떠났습니까? 우리의 욕심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눅15장에 보면, 아버지를 떠나는 탕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둘째 아들이 왜 아버지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떠나면 자유롭고, 무엇보다도 아버지 보다 더 성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떠나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멀지 않아 쫄딱 망한 탕진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사기꾼에게 다 빼앗기고 이제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는 먹이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이 아니라 품꾼의 한 사람으로 받아달라는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집에서는 둘째 아들이 떠난 그 날부터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달려 나와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안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21세기의 탕자와 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물건은 제 자리를 지킬 때 가치가 있고 아름다우며 사랑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품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지만, 비록 그 자리를 떠나더라도, 고통 중에라도 다시 돌아가는 것도 지혜롭고 복된 일입니다.

6.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은 대가나 어떤 공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빈 손들고 나오면 됩니다.
본문 2절에 보니,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입술로서 진실을 고백하면 됩니다. 오죽하면 입술로서 수송아지를 대신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입술로서 죄를 진심으로 자복하고,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결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것 같아도 어렵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내 안에 정욕의 세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소돔성이 하늘로서 내리는 심판의 유황불로 멸망할 때, 천사의 도움을 받아 도망가던 롯의 아내는 그만 뒤로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는 정욕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탕자처럼 아들이 아니라 머슴살이도 감사하다는 그런 마음을 가질 때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이런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의 실패와 부끄러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7.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정하신 뜻의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본문 4절에 보니,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역은 하나님을 습관적으로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호세아서의 내용 흐름을 볼 때, 이것은 영적인 간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간음이나 불륜이나 이런 것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고치기가 매우 어려운 죄의 습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고, 그들이 어떤 형편에 있었던지 관계업이 그들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이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이 죄악의 질병을 치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기쁘게 그들을 사랑" 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하고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환자를 대하다보면 사랑하는 마음이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보다는 의사라는 직업으로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러 마음은 자식을 대하는 부모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아이들이 귀찮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대응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자식이 심각한 질병으로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을 때 자식은 부모의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 분의 사랑의 특징은 망가진 인생일수록, 버림받고 쓸모없는 그런 인생일수록 더 귀하게 여기고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씩 용서하면서 까지 인생이 죄 가운데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도 치러 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그래서 그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 자녀로 삼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죄 때문에 죽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8.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단하고 왜 이렇게 실패와 고난이 많습니까?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쳐 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우리 인생의 실패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절망의 심연에 빠진 인생을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내게로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마치 남편의 사랑을 버리고 집을 떠난 고멜을 위하여 남편 호세아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네 아내를 다시 데려 오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신부의 옷을 입히고 단장하여 다시 사랑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는 2:19-20절에 기록된 것처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는 이것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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