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1.깨어진 언약(호세아13:9-16)

[성경본문] 호세아13:9-16개역개정

9.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12.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13.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14.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15.그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 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16.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깨어진 언약(호세아13:9-16/2018.2.11.오전)


1.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은 남들보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I. Q 라고 하는 지능지수를 측정해 보기도 하는데, 보통의 경우는 110 이하로 나오고, 천재도 천차만별이지만, 130 이상이면 천재 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과 홍콩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짐승들의 경우를 보면 의외로 개 보다는 돼지가 더 똑똑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련사들이 짐승을 훈련시킬 때, 개보다는 돼지가 더 뛰어난다고 합니다.
개미의 경우는 0.1로 기억력은 없고,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데, 물고기의 경우는 다른 물고기가 낚시에 걸려서 올라가는 것을 보고도 돌아서면 잊기 때문에 3초 기억력이라고 합니다.
물고기 아이큐라고 하니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첫째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생각이 나고,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지만, 왜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억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베푸신 은혜와 축복은 물론이고, 온갖 기적과 능력들을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는 기억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에서 광야 40년의 세월을 통해 그들은 전능하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 분의 공급하시는 은혜와 사랑 안에서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기적과 능력은 물론이고,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보고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하면서 살았습니다.
사사기 시대도 마찬가지였고, 남북 왕조의 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억력이 문제였습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스라엘의 고난은 대부분이 이 기억력의 문제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잠17:12) 이라고 하였습니다.

2. 사람들은 행복하고 안전한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면, 재물이나 건강이나 사회적인 성공은 물론이고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들로 진을 침으로 안전하고 든든한 삶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안주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이것을 인생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하던 것들이 내가 원한다고 그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위하여 변함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스스로의 욕심에 속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와 시간 속에서, 지금까지 쌓아 올려놓았던 모든 것들이 바벨탑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에 성공해도 안심할 수 없으며, 남들이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가도 안심할 수 없으며, 아무리 건강한 육체를 소유한다고 해도 내일 무슨 일을 만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의 한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며칠 전, 대만 화련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뉴스의 사진을 보면 호텔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상황입니다.
주변의 건물들은 멀쩡한데 왜 이 건물만 1-3층이 사라진 채로 기울어 있습니까?
얼마 전에도 대만의 지진으로 아파트가 붕궤되면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넣어야 할 부분에 빈 깡통으로 채워 넣은 것이 발각된 적도 있었습니다.
지난번의 지진으로 안전점검을 하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다음 지진을 대비하였더라면 아마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3.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영적인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 드리는 예배와 적당한 종교적 의무를 지킴으로서 우리의 영적인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까?
호세아서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영과 육신의 상황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말씀과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있는지,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감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견고한 신앙으로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미국과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의 관계보다도 강력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동맹국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국이 된 것은 북괴의 남침으로 일어난 6.25전쟁을 미국이 어느 정도의 선에서 해결하고 손을 떼려고 할 때, 일방적으로 북진을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서 미국이 휴전하는 대가로 동맹국의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도 보기 어려운 경제적 대 부흥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금에 보면 이러한 미국의 도움에 대한 기억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가 경험을 하고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처럼 세상과 손을 잡으면 망하는 길만 남았지만,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안에 있으면 자녀들은 물론이고 수 천대까지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도 처음에는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로 축복의 자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통해 그들을 모든 대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자자손손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언약을 지켜 순종하기만하면, 그들은 영원토록 축복의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첫째는 그들이 하나과 맺은 이 언약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에서는 주어지는 특권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특권이 일상화가 되고 나면, 그 귀중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처음에는 귀하게 여겼지만, 세월이 갈수록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그래서 여기에 대한 감사도 기쁨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은혜는 흐르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쉽게 잊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자신들의 정욕을 제어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허황된 욕심과 어리석은 야망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를 낳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원하는 대로 죄의 종이 되어 육신이 이끄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로 달려가게 된 것은 그들의 마음이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교만한 마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고(잠16:18),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신"(잠15:25)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교만한 마음이며 정욕을 향한 더러운 마음이 우상숭배를 낳았고,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집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해서 우상을 섬기고 욕심을 낸 것입니까? 아닙니다.

5. 본문 11절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 왕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왕정 통치가 좋아보였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왕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통치하는 왕정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너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러한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집요하게 요구하였고, 그들의 끈질긴 요구에 하나님은 그 결과를 잘 아시면서도 그들에게 양보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왕들은 도리어 백성을 착취하였고, 썩고 문드러져서 욕심으로 가득한  정치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재촉하였고, 정작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그들을 구해줄만한 왕이나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왕정통치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지나치도록 떼를 써서 요구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은혜와 축복의 근원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왕으로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새로운 왕을 요구하고, 다른 왕을 구하였으니 이것은 분명 반역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잘못된 소욕은 불행을 낳을 뿐이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고 했습니다.
또한 14절에 보면, 그들을 사망 권세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재앙과 대적들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짧아서 그렇습니까?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은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들의 영은 우상숭배로 마귀에게 사로잡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범죄하고도 뉘우칠 줄 몰랐고, 말씀을 선포해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6. 그 뿐만이 아니라, 15절에 가서는 그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정말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물질의 축복, 세상이 좋아하는 부와 귀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통하고 번성할수록 점점 하나님을 떠났고, 16절에 가서는 마침내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 대가는 처절한 멸망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기 위해서 만드신 하나님의 그 언약을 짓밟고 나중에는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짓밟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과 영광을 약속받고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죄로 인한 정욕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우상숭배를 만들어 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현대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과거 이스라엘처럼 마음이 지나치게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셋째는 과거에 입은 구원의 은총과 남다른 은혜와 축복을 다 잊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우상 숭배자로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데, 그 십자가를 지고 갈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 십자가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지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언약을 깨트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7. 9절에 보니, 패망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보니,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왕을 구했지만, 백성들이 위급한 상황을 맞아도 그들을 도우고 구원할 왕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잘못 구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부으신바 되었고(11),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서 선이나 거룩함이나 의로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아들까지 내어 주셨고 그 아들을 통하여 새 언약을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무참히 짓밟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내 자식은 귀한 줄 알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한 희생은 싸구려 은혜로 전락시키고 말았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 하는 마음까지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의 자녀를 칭찬해주면 좋아합니다.
좀 모자라는 자녀도 칭찬해 주면 부모가 기뻐합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를 칭찬하고 자랑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나타내고 감사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도리어 이방신을 찬양하고 교만한 마음에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을 주셨습니다.
아이가 나오다가 멈추면 산모와 아기가 함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회개가 없는 이스라엘 위에 재앙에 재앙을 더 하였고(15), 나중에는 더 끔찍한 재앙을 선고 (16)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에스키모들이 이리를 잡는 방법이 있는데, 날카로운 칼에 짐승의 피를 묻혀서 얼리고 또 피를 묻혀서 얼리기를 반복해서 땅 속에 묻는다고 합니다.
이리 떼가 피 냄새를 맡고 와서 그 언 칼날을 혀로 핥는데 혀가 마비가 되니 자기 혀가 잘리는 것도 모르고 계속 핥다가 혀가 잘리고 피를 쏟으니 힘없이 잡힌다고 합니다.
세상 유혹과 정욕에 빠진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8.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리고 사는 나라와 민족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언약이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깨어져도,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주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요 영원한 사랑입니다.
인간이 연약해서 지킬 수 없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가 깨트린 그 언약을 대신 지켜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불순종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길, 영생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그 죄로 인하여 죽고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습니다.
다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생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과 사랑의 은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시기 바랍니다.그럴 때 우리는 모든 죄와 고통과 저주에서 해방을 얻으며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가 영원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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