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5.에브라임의 종언(호세아13:1-8)

[성경본문] 호세아13:1-8개역개정

1.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2.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3.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4.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7.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에브라임의 종언(호세아13:1-8/2017.11.5.오전)

1.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사단의 방해가 심하다 보니,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맡은 일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은 열심을 내어서 잘해보려고 할 때 더 많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문제 때문에 낙심하거나 인간관계가 나빠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교회를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마귀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한 사역이나 은혜의 역사는 다 사람을 통해 일어나듯이, 사단의 시험과 방해도 결국에는 사람을 통해 일어나고 그래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믿음의 공동체가 흔들리는데, 이런 것은 결국 사단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인내하고 열심을 낼 수 있겠지만, 그 분이 지금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알지 못할 때에는 정말 답답하기도 하고 때때로 의심이 되고, 또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말씀대로 바로 가고 있으며 이 길이 바른 길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정말 잘못된 길을 가거나 헛수고를 하고 있는지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저는 두 가지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게 주어진 이 길을 그냥 그대로 가는 것이고, 할 일을 그냥 계속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내하면서 계속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세월이 흐른 후에 아!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서 나를 이 길로 인도하셨구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는 모르고 왔지만 그래서 모르는 만큼 도중에 염려도 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나중에 주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쁨과 감사도 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서 내가 염려하고 수고하고 방법을 찾으면 점점 미궁에 빠지지만, 주님께 맡기고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그 분의 손길이 보이고, 이 길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의 뜻, 그 분의 섭리가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제가 이 도시를 34년 동안 떠나지 않은 것도 남보다 인내심이 강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그 분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3.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는 민족이 있고 그 안에 교회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 아픔이 있었습니다.
빼앗기고 짓밟히고 자유를 잃어버린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픔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고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열강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유수한 인재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서 국위를 선양하고, 국가 경제며 교육이며 문화, 정치, 종교 각 방면에 어느 나라 사람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내가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남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잘 사는 것이 한이 되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빼앗겼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빼앗긴 자의 고통을 맛보지 않으려고 밤잠을 자지 않고 허리를 졸라매면서 가난과 멸시와 천대를 이겨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면 쟁취하고 수고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것도 어렵지만, 이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을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겨졌던 내 나라 내 민족이 지금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문제로 고민하며 기도할 때 만난 것이 호세아서의 말씀이고, 그 세월이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4. 그런데 왜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대리자인 선지자에게 음란한 고멜을 데려다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라고 하셨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로 범죄한 이스라엘의 실상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칭찬에 눈이 먼 허영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거울 앞에서 서서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쁘고 제일 잘난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자기도취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안에는 아람 사람 나아만 장군처럼 속에서는 썩어져 문드러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에브라임의 이름이 나오는데, 에브라임은 요셉이 애급에서 낳은 자식입니다. 그의 형의 이름은 므낫세이고 그는 차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도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이루었고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에 가장 강력한 지파가 되었습니다.
1절에 보면 그가 말하면 다른 지파들이 떨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풍성한 지파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다 보니, 그것이 교만이 되고, 교만한 마음에 자기를 위해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에브라임을 향하여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5. 인생이 영리한 것 같아도 무엇이 자기를 힘들게 만들며, 무엇 때문에 내가 고통당하고 망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특히 세상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곧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풍성함 속에서 계획하고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해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무지할 때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우상이고, 그 우상은 더 솔직히 표현하면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님의 거하시는 거처가 되어야 하는데 더러운 욕심과 허무한 우상과 귀신이 소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에브라임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3절에 보니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품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꿀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무런 가치도 없고 누구의 관심도 얻을 수 없는 허무하고 불쌍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범죄한 이스라엘이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냉정하도록 표현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다 이와 같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43:21절에 보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고, 그 앞에 7절에 보면,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6. 아무리 좋은 기계나 물건이라도, 아무리 비싼 값으로 주고 산 것이라도 제 기능을 못하면 그 때부터 고철이고 쓸모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이 우리의 행복이나 욕심이나 명예를 위해서 지음 받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음 받은 목적이 따로 있으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존재할 때, 가치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인생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다보니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고, 나중에는 축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에게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였습니까?
4절 이하에 보니 에브라임은 애급에 있을 때부터 종살이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이의 택한 언약의 백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홍해 바다에서 구원을 얻었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주림과 헐벗음 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배부르면 반드시 범죄가 잉태되기 마련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다윗 왕입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임금 자리가 안락하여 걱정이 없으니 남의 아내를 탐하게 된 것입니다.
이일로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징계는 참으로 무서운 고통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오랜 세월동안에 하나님이 수많은 선지자들을 그들 가운데 보내시면서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이 오히려 애타게 그들을 찾았지만, 도리어 선지자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7. 이러한 에브라임, 즉 이스라엘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7-8절에 보니 내가 그들을 사자처럼 찢고, 표범처럼 숨어서 기다렸다가 그들을 삼키겠다는 것입니다.
사람 속에 있는 가치관은 그 사람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를 결정하는 인생의 키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2014-2016년도의 자료를 가지고 유엔이 발표한 국가별 행복수치를 보니,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가 1,2,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보니 51위, 한국은 55위, 미국은 14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의 랭킹이 높은 북유럽에 가서 살면 그들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가치나 행복감은 가진 소유나 어떤 지위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어떤 환경과 조건이 더 좋아지고 바뀐다고 인생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찬송가에도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가치관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만족하며 우리가 행복도가 155위로 가장 낮은 중앙아프리카에 가서 살아도 감사가 나오고 기쁨의 찬양이 있는 것입니다.

8.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 에브라임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사라졌고 구원의 감격이 없습니다.
최근에 친구들이나 선배님들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 건강이나 노후 문제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른 채 걱정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까지 이 복음을 위해 영적인 전투를 멈추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면서, 이 싸움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에브라임이 아무리 잘 살고, 존경과 지지를 받아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인본주의에 물들고 말았을 때, 더 이상의 미래는 없었습니다.
에브라임의 특징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그들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도리어 자기들을 위해 만든 우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결국 나를 위해 내 스스로 만든 우상이 결국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모두를 멸망시키는 도구가 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9. 둘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듭된 초청을 멸시하고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상대방을 무시하고 부르는데 못 들은 척, 본 본척하면 관계가 끊어지거나 험악해 집니다.
하물며 우리 인생의 주인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지시고 많은 은혜와 사랑으로 자녀 삼아 주셨는데, 여기에 대한 감사는커녕, 하나님을 무시한다면 우리도 에브라임처럼 버림당하고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42:8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죄의 결과는 고통이요 불순종의 결과는 멸망이요 버림당함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이라도 죄 가운데서 돌이키지 못하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바로 그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이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버림당하고 찢김을 당하고 영원한 죽음의 고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죄악의 세력에게 양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핑계하지 말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뜻대로 나를 사용하여 주소서 할 때, 우리는 에브라임처럼 종말을 맞이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축복의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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