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27.주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호세아9:1-9)
[성경본문] 호세아9:1-9개역개정
1.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
2.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4.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5.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6.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8.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9.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주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호세아9:1-9/2017.8.27.오전)
1.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단은 제정 러시아시대 이후로 러시아 문화의 상징으로 알려질 정도로 유명합니다.
지금도 러시아에 가서 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은 공연을 보려면 몇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도 없으며, 또한 티켓이 5-6만엔을 호가한다고 합니다.
저는 1970년대 국립극장에서 다른 외국 공연단의 이런 공연을 많이 보았습니다마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는 이 볼쇼이 발레단의 외국공연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일본에서 진 아끼라(神彰)라는 35살의 무명의 실업가가 인맥도 자금도 없이 맨몸으로 당시의 일본에 주재하는 소련대표부를 통해서 이 볼쇼이 발레단의 일본공연을 실현시켰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소련의 교향악단이나 서커스단의 공연을 성사시키면서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고, 그 덕분에 60년간 발레단의 일본 공연이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 볼쇼이 발레단에 일본인이 예술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 젊은이의 무모한 도전으로만 보였던 이 일이 나중에는 일본의 대중 문화발전에 많은 공헌을 이룰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런 예는 우리 주변이나 혹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오늘의 언행을 아무도 이해해주거나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의로운 일이라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반드시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며,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 역시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축복하거나 심판하실 때는 반드시 그 징조가 먼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기쁨과 감동을 주셔서 그 일을 기쁨으로 행하도록 도와주시지만, 악을 행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두려움과 고통을 주셔서 그 행하는 일과 가는 길을 굽게 하시고 제 스스로 망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2. 호세아서 전반부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이제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다룬 것이라면, 후반부로 향해 갈수록 범죄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그 내용도 점점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애급의 바로 왕처럼, 재앙을 만나도 회개할 줄 모르고 도리어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하는 이스라엘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돌아올 줄 모르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이 이제 곧 받을 재앙과 고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죄가 당시에는 즐거움을 줄지는 몰라도, 나중에 받아야할 보응과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깨닫고 가던 길을 돌이킴으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그대로 나아가다가 멸망하는 짐승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 죄의 대가로 당하는 고통이 어떤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1년 중에 온 백성이 함께 기뻐할 때가 언제입니까? 추수할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기쁨과 감사의 절기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맥추절, 유월절, 수장절입니다.
맥추절은 보리를 거두는 때이며, 유월절은 애급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수장절은 일명 초막절이라고 부르는데, 추수감사절인 동시에 신년제에 해당되는 날입니다.
3. 문제는 일 년 중에 온 백성들이 함께 추수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함께 감사하며 기뻐해야 할 날에, 도리어 우리 하나님은 찢어지는 심정으로 고통받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본문 1절에 그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추수한 그 모든 제물을 가지고 축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에게로 가서 이 우상에게 그 은혜와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1년 동안 우상숭배를 잘 해서 그 우상이 우리를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다면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런 기쁨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너희는 더 이상 이방인들처럼 기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2절 이하에 나오는데, 너희가 무슨 농사를 지을지라도 흉년으로 고통을 받도록 하겠으며, 내가 받을 기쁨을 죽은 우상에게로 돌렸으니 그 대가로 너희가 이방 땅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종살이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 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레위기 11장에 보면, 부정한 것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계명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선민의 정체성이 박탈되고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이방인과 똑같은 그런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버렸으니, 나도 너희를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부정하다고 생각했고, 먹을 수 없다고 믿었던 그런 음식을 스스로 찾아서 먹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입니다.
4. 사람들은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죽기보다 싫어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강요당하고 말았을 때 사람들이 맛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체성의 상실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학이 시작됩니다. 인격의 총체적인 무너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이런 것이 다른 민족에 비해 더욱 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절에 보면 자신들은 죽지 못해서 부정한 것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가서 제사의 제물을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4절 끝에 보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 양식이나 음식을 가지고 도저히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쥐도 잡아먹고 지렁이도 먹고 박쥐도 잡아 먹을 수 있지만, 아무리 타락한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 앞에는 이런 것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싶어도 드릴 마땅한 제물이 없기 때문에 율법에 근거한 온전한 예배 자체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행한 영적인 음행의 대가로, 자신들을 스스로 더럽힌 대가로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5. 어떤 사람은 예배가 싫고 귀찮고 예배가 너무 따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조차도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의 예배권을 박탈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는 그런 삶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 사람들은 일벌레라고 말할 정도로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제가 연세 드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생을 일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며칠만 쉬어도 마음에 안정이 없다가도, 일을 시작하면 기쁘고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오늘 갑자기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어졌다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 도시에 교회가 없고, 성령의 역사도 없으며 십자가가 보이지 않으며, 찬송 소리가 없어진지 오래되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어도 갈 곳이 없고, 함께 예배할 믿음의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여행 오신 분들이 가끔 우리 교회를 들리시는데, 아주 잠깐의 시간이지만 이런 곳에도 한국 교회가 있고, 기도하고 예배할 장소가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족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6.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복되고 좋은 땅, 환경과 조건이 좋은 곳에서 산다고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광야처럼 메마르고 그늘 한 점 없으며, 흐르는 물줄기 하나 없는 곳이라도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예배처가 있고, 예배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곳이라면 그곳은 축복의 땅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제일 먼저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는 성막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광야애서 고생은 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제사를 위해서 온 백성들이 아낌없이 자신들의 보물을 바치고 몸으로 헌신하며 함께 예배했던 그 때가 아마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있을 때에는 그 귀중함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빼앗겼을 때, 잃어버렸을 때에는 그 소중함을 깨닫고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의 이름을 높이고 그 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인줄 아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그 분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이스라엘처럼 다 빼앗길 날이 오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137:1)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던 그 영광스럽던 과거를 기억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예배할 수도, 예배자로서 살아갈 수도 없는 자신들을 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마4장에 보면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게서도 이 예배권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예배는 구원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예배를 빼앗기지 않도록,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예배하는 자의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7. 본문의 말씀의 핵심은 선민 이스라엘이라 하여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욕심을 따라 우상을 섬기면서도 회개할 줄 모르고, 온갖 죄악에 빠져서 썩어 문드러질 때에는 하나님도 그들에게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5절 이하를 읽어보면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조롱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면 그곳에는 성전도 없으며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예물도 없는데 너희가 어찌 나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겠느냐는 조롱섞인 말씀입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은 부모에게서 조롱받는 자식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욕심을 따라 하나님을 떠났고, 죄가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
떠나기는 쉬워도 돌아오기는 어렵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파멸로 치닫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그 모든 것을 회복하고 돌이키려면 예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시간과 희생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다면 그 나라와 그 민족은 영영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마치 인간의 힘으로 오늘에 이른 것처럼 자랑하고 서로 헐뜯고 싸우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찢었으니, 내 나라와 내 민족도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은혜를 잊고 바벨탑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이제라도 회개해야 사는 길이 열릴 것이고, 우리 개인도 지난날의 죄악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할 때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앞길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8. 지금 우리가 눈만 뜨면 대형사고의 소식이며 테러며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시대인지 아니면 심판을 받고 있는 시대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7절의 말씀에 있는 것처럼, 백성들과 주의 종들이 무슨 말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벌과 보응의 날에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첫째로 당시의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도 않은 거짓 예언을 남발하여 백성들을 미혹하였고, 둘째로 백성들은 반대로 참 예언을 하는 진실한 선지자들을 가리켜 미친놈 취급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와 백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속이고 멸시하고 고통을 주는 그런 관계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시의 이런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본문 7-9절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9.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보면 이 시대가 보이고, 성도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이 앞으로 우리 가운데 행하실 일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거짓된 예언에 사람들이 속는 이유는 그들의 어리석음과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 선지자를 조롱하고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것은 성령에 이끌리는 신앙이 아니라 인본주의 새 술에 취한 결과입니다.
지금도 죄는 우리가 가는 곳 마다 따라 다니면서 고통과 슬픔과 저주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과 고통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뿐입니다.
예배권을 빼앗기기 전에 기쁨과 감사의 예배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오늘 여기에 이른 것은 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은혜인 줄 믿습니다.
제가 5월에 파라과이서 가져온 아보가드 씨 2개를 심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지 않아서 죽은 줄 알고 포기했는데, 어느 날 보니 크게 자라난 것을 보니 기뻤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지금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씨에는 생명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그런 믿음과 삶의 씨앗을 통해 장차 우리 가정과 이웃과 열방에 풍성한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악만 기억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살고,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더욱 기뻐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