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6.깨닫지 못하는 자가 가는 길(호세아7:9-16)
[성경본문] 호세아7:9-16개역개정
9.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10.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11.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12.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 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
13.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14.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15.내가 그들 팔을 연습시켜 힘 있게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16.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깨닫지 못하는 자가 가는 길(호세아7:9-16/2017.8.6.오전)
1.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이 문제만큼 빨리, 그리고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인류가 파멸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심각한 일들이 지금 지구촌 규모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 시스템, 특히 세큐리티 보안 장치에 대한 해커들의 대대적인 공격입니다.
이미 우크라이나에서는 전력시설이 공격을 당해 대규모 정전사태를 불러왔으며, 영국 같은 곳에서는 병원시설과 국민건강 보험센터의 중추 시스템이 마비 상태에 빠졌고, 대기업들도 공격을 받아 혼란 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페덱스 회사가, 스페인에서는 에너지, 수송, 통신, 금융시설까지 공격을 받아 100여개 이상의 기업들이 타격을 받기도 하는 등, 전 세계의 국가, 개인, 단체를 망라한 무차별 공격이 2017년에 들어서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국 비비씨의 보고에 의하면 지난봄에 발생한 런섬웨어 라는 바이러스의 공격이 암호화된 각종 시스템에 잠입하여 원래의 암호를 해제해 버리고 재 마음대로 암호를 바꾸고는 이것을 풀거나 사용하려면 돈을 내라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브이리 원전은 이러한 범죄자들의 공격으로 마비상태에 빠졌었고, 정부, 은행, 교통수단까지 마비되고 은행 돈을 인출 할 수 없는 그런 피해를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개인들의 컴퓨터도 150여 개국에서 수십만 건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의사는 병원 시스템이 공격으로 망가졌는데, 2달이 넘어도 복구가 안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도적놈이 내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문을 잠그고 주인에게 어마어마한 액수를 내고 새로운 열쇠를 사라는 그런 식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모든 컴퓨터는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온갖 정보와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버그라는 것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런 취약성을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보안 프로그램을 깔고 사용하지만, 공격하는 도적놈에게는 당할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비행기나 배나, 자동차 같은 운송수단들이 공격을 받아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정말 남의 일이 아니고 지금 당장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노아 홍수 때처럼,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사람들의 죄악이 너무 무겁고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2.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컴퓨터 같은 현대 과학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학은 진보하면 할수록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한계성을 느끼게 되고, 컴퓨터는 사용하면 할수록 버그를 만들어 내어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듯이, 인간도 살면 살수록 죄를 더해가면서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저주와 고통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고 하였고, 사도바울은 그 죄가 우리 안에서 왕노릇하고 있기(롬5:17)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컴퓨터가 인간을 지혜롭게 만들고 삶의 환경과 질을 높여 줄줄 알았는데, 어느덧 우리 곁에 재앙의 선봉이 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까?
인간이, 세상이, 문명의 모든 것들이 다 축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금 우리는 호세아서를 통해서 세상을 보며 자신들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호세아 7장까지 오면서 변함없는 중대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다시 말해서 온갖 죄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너희는 지금이라도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오면 호세아가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듯이 나도 너희를 다시 나의 거룩한 신부로 맞이하여 영원히 너를 사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7장에서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은유적인 4가지의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반응입니다.
빵 굽는 화덕처럼,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어리석은 비둘기, 그리고 활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그렇게 하나님께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에는 혼합이라는 단어가 먼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는 이방나라의 우상들을 용납하여 자신들의 주인으로 섬기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이방 나라와 연합하여 그들의 조공국가로 전락한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이방인들의 가치관과 삶의 모습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여 반란이나 독립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이주 정책을 사용함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그 때 혈통적으로 혼혈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이스라엘은 이런 혼합주의 정책을 사용함으로, 종교적인 타락으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혼혈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에는 예수님 시대에도 유대인으로부터 멸시받고 배타적인 대상이 되고 만 사마리아 지역의 슬픈 운명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나의 믿음과 가치관은 여호와의 말씀에 비추어 문제가 없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와 우리의 허물이 오늘 우리 시대의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백성의 근간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출31:13하)라는 말씀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번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되"라(출22:31) 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구별된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때문에 따로 선별되고 구분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서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방인인 애급이나 앗수르나 블레셋이나 모압이나 에돔이나 두로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4. 혼합주의 특징은 정체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세계까지 다 빼앗기고 무너졌으니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더 큰 문제, 더 큰 심각성은 9절에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말도 안되는 그런 상황, 모든 것이 빼앗기고 무너져 내리는 그런 상황에서도 위기의식이 없고,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백발이 무성한 지혜로운 자들도 모른다고 깨닫지 못하고 있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혼자 잘난 척 하면서 그 얼굴에 교만으로 가득찬 채로 애급에게는 눈물을 흘리면서 도움을 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하나님께로는 돌아올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는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분석해 보면 3가지 죄가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적으로 무지하게 된 것이요,
둘째는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고집된 것이요,
셋째는 우상숭배로 가득찬 욕심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것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몰랐고, 그런 것을 알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웃 나라에서 그들을 본다면 이보다 더한 코미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 근간의 전체가 흔들렸고, 앗수르의 손에 의해서 비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5. 세상에서 인간은 개인이던지 집단이던지 문제점을 다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보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가진 생명조차도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고통과 문제 속에서 씨름하지 않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던지 결국에는 인생이 마지막에 가는 길은 하나요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이 생명 때문에 고통과 갈등과 문제에 빠졌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도우심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이 하나님을 향한 가슴 뜨거운 그런 감사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아니하고 내 힘으로 살았고, 내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살아온 인생은 절대 감사가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번영이 여로보암2세의 능력이고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49:20에 보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고 했습니다.
뉘우칠 줄 모르고 깨달을 줄도 모르고 가는 길이 잘못된 줄로 모르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신 결론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깨닫지 못하는 짐승처럼 그렇게 대우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 하나님의 경고인줄도 모르고,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음성인 줄도 모르고, 여전히 어제처럼 오늘을 그렇게 살고, 내일은 더 많은 패악으로 달려가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6.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게 나라냐? 백성이 개돼지냐? 이런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말로 망하게 생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민14:28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네게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였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다가 상대방이 밉다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그런 말은 내가 들을 때 나의 자화상이 그렇게 만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은 하나님이 들으시고 들은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잘못된 말을 듣고 시험 들거나 잘못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개나 돼지 취급 받아서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망하려면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축복의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영원하 상속받은 그 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 인생에는 소망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받은 사명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축복의 입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입술,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언어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어찌되었든지 이스라엘은 원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지만,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말 못하는 우상에게 달려갔고, 축복의 근원되신 여호와를 떠나 욕심을 따라 불법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떠나 돌아올 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개나 돼지처럼 취급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깨닫지 못하는 자가 가는 길입니다.
7.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3절에 보니, "내가 그들을 건져주려 하나" 바로 이 말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라도 깨닫고 돌이키며 구원의 손을 내밀고 계시는 간절한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한다면,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그들을 그 고통과 저주에서 건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들이 나를 그슬려 거짓을 말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그 분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스라엘을 이방의 우상에서, 이방인들의 죄악에서 구원하기를 원했습니다.
글서 호세아 선지자를 희생하면서 이스라엘에게 간곡한 말로 호소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속이려는 것뿐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우리 자신이 제 모습을 거울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를 존중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더 많은 감사로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제 생각과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움과 고난을 당하도록 버려두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정신을 차리고 회개의 길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말로 할 때 알아듣고 잘못된 것을 고침으로 자신을 새롭게 만들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말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멸망의 길을 그냥 나아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8.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에 19명의 왕들이 있었는데, 9번은 반역의 역사였고, 그 마지막 30년의 역사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의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들 가운데 선지자들을 보내시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곁가지와 같은 연약하고 불쌍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죗값을 저 십자가에서 대신 치르게 하심으로 영적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축복의 백성으로 삼으신 줄 믿습니다.
또한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이런 귀한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며 남은 생애도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게 하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호세아서의 말씀을 가지고 이 시대를 보면서, 또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면서 하나님 앞에 더욱 새롭게 거듭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태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고 하면서,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이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