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18.돌아갈 길이 없다(호세아5:1-7)

[성경본문] 호세아5:1-7개역개정

1.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

2.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제공: 대한성서공회

돌아갈 길이 없다(호세아5:1-7/2017.6.18.오전)
1.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타향에서 인생에 실패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굶주림 속에 있을 때, 살기 위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마지막 소망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을 향해 돌아갑니다. 그런데 만일에 아버지가 그런 아들은 필요 없다고 돌아오는 탕자를 거부했다면 그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생이 병들고 실패하고 연약해져도, 돌아갈 곳이 있고 받아 줄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기회가 있는 인생입니다.
수백만, 수천만 엔 하는 초 호화로운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도 두 번 다시 돌아갈 집이 없거나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면, 그 여행에서 무슨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반겨줄 사람들이 있고, 여행하면서 보고 즐겼던 것들을 이야기 하며 함께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 여행의 종말이 기다려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사람은 그 끝이 두려움과 고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호세아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 예배가 끝나면 돌아갈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있고 직장이 나를 기다리고 새로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상 대대로 함께하시던 여호와 하나님께로 더 이상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비참함과 그 고통이 무엇이며, 무엇이 이스라엘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문제 많은 우리 인생이 헛된 것들을 추구하다가 알게 모르게 잃어버렸던 귀한 것들을 회복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2.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세상에는 인생을 고통하게 만드는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납득할 수 없는 문제로 씨름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무너지고 생명까지 포기하는 인생도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누구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며 어디서 인생의 답을 찾아야 합니까?
인생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뜻대로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 분을 의지할 때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이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스라엘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고 했습니다.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도 없으며 그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음란한 마음이 무엇입니까?
호4:12절에 보면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고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음란한 마음은 원어로 보면 음란한 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음란한 영에 사로잡혀서 우상숭배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음란한 영이란 사람의 외부에서 들어와서 지배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 가장 깊은 곳에서 스스로 자리를 잡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창조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 있는데 본문은 그것을 가리켜 음란한 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 원래 이곳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우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로 채우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5장의 첫 부분을 보면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왕족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사냥꾼의 올무나 그물처럼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는 어느 곳에서 그 어떤 신을 숭배하던지 팔레스틴 지역에서 대부분의 경우는 실제적인 음란 행위를 동반하는 제사였습니다.
신전의 창기들과 제사드리는 사람들이 육체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흥분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땅이 윤택해져서 풍년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보다는 이러한 이방신을 섬기는 행음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영적으로는 배신의 행음을 일삼고, 육신적으로는 합법적으로 간음을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여기에 빠지면 제일 먼저 진리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그래서 인생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진리와 생명에서 떠나 방황과 고통을 반복하면서 더 깊은 쾌락을 요구하기 때문에 점점 더 악하고 더러운 행위에 빠지는 것입니다.

4. 심리학에서「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쪽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드러낼 때에 상대방에게서 같은 감정이나 행동적인 반응이 나타나면 둘 다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상대방에게 화를 낼 때, 상대방도 화를 내면서 같이 반응을 하게 되면 이 두 사람은 같은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여자가 어느 남성에게 음란함을 드러내면서 유혹했을 때, 그 남성이 그 음란함에 반응해서 그 여자의 의도를 받아들이게 되면, 이 두 사람은 똑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잘못된 의도를 받아들이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이 여자는 유혹에 넘어간 상대 남자를 생각하기를 나하고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사회적으로 아무리 지위가 높고 학식이나 교양이 뛰어나도 무시하고 자기 수준에서 그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자녀에게 부모가 화를 내면 처음에는 무서워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자녀는 점점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되는데, 이것은 자녀가 화를 내고 있는 부모에 대하여 나하고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은 지도자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전체가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똑같은 수준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세력은 무서운 것이고, 한 번 죄의 올무에 걸리면 빠져 나오기도 어렵고, 5절의 말씀처럼 주위 사람들까지 함께 넘어지고 죄의 고통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5.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으니, 이것은 그들이 지각도 생영도 없는 죽은 우상과 동일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 국가를 통치하고 있으니 어찌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러한 그들의 행위가 생명의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것들이 힘을 잃고, 도리어 우상과 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영적인 것들은 점점 어두워져서 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문제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사장들이나 왕족들은 백성들을 생명의 길로, 진리의 길로 이끌어 그들이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을 받으며 살도록 해야 하는데, 도리어 백성들과 같이 같은 죄에 빠짐으로 지도자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백성들에게서 신뢰를 잃으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길은 어렵고, 한 번 신뢰를 잃어버리면 회복이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로 영적인 음란에 빠진 이스라엘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문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5절에 보니 이웃 나라 유다도 같은 죄에 빠져서 함께 망할 것이고, 6절에는 그들이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지라도 이미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떠나셨다는 사실입니다.

6.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 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열심히 제사를 드리고 귀한 제물을 준비하여 드릴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제사가 형식에 치우쳤고, 그들이 드리는 제물에는 정성이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제사는 어떤 것입니까?
특히 죄 가운데서 방황하며 고통 하다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탕자와 같은 인생이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사죄의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까?
선지자 사무엘은 불순종하는 사울왕에게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 고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 이전에 먼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는 거역하는 것이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고 했습니다.
시편기자도 하나님이 인생에게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의 제물이 아니라,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중심에서 통회하고 자복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그런 마음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7. 그러나 우상을 버리며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할 줄을 모르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7절에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 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배신과 거짓과 순결성을 상실한 대가였습니다.
특히 사생아를 낳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해도 더 이상 인정받지도 못하고 열매 맺을 수 없는 소용이 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화학제품 공장을 운영하던 장로님이 한 분 계셨는데, 세월이 지나고 강남 터미널 근처의 반포 아파트에 있는 비싼 땅을 교회에 바쳐서 남서울교회를 세웠습다고 합니다.
어느날 청와대에서 당신의 사업을 도와 줄테니 한 번 만나자고 해서 금요일 오후 2시에 청와대로 들어가기로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금요일 오후2시는 이미 구역예배를 약속해 놓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를 가야 하느냐, 구역예배로 가야 하느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주일날이면 몰라도 금요일 구역예배 정도야 시간을 변경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장로님은 고민을 하다가 청와대를 포기하고 구역예배를 인도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계시를 받기를 빨리 공장에 가서 이렇게 저렇게 약품을 배합하라는 지혜를 주셔서 당장 가서 그대로 했더니, 그 물건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유혹에 약하고 세상 권세나 부귀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며, 사람과의 관계나 약속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우선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나님이 열어주시고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신앙도 모험이고 인생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8. 인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교만하게 되고, 잘 될 것 같은 인생의 길도 어느 순간에 가면 막히게 되고, 나중에는 고통과 멸망이 가까이와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이 그랬고, 노아 시대의 홍수로 전멸하기 까지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했던 덧입니다.
그래서 5:12절에 보니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저주 받는 것이 마치 좀에게 먹히는 것 같으며 상처가 썩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4: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유가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 기 때문이며, 4:5절에 그래서 선지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밤에나 낮에나 다 넘어지고, 6절에 보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 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여호와를 힘써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들어가면 혹시 우리가 범죄하고 불순종하더라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지자들도 제사장들도 백성을 가르치고 책망하는 것을 포기하고 함께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의 손에 멸망하였고, 유다도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하셨는데, 이 진리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온갖 거짓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인권을 부르짖는 사람들 때문에 또 다른 더 많은 인권들이 짓밟히고 있습니다. 평등과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에 의해 도리어 불평등과 거짓과 속박과 분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종교의 탈을 쓰고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테러의 공포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는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규모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왜 이런 부작용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는 잘못된 세상의 수단과 방법들이 마치 진리처럼,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처럼 포장되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길은 하나뿐입니다.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 우상숭배로 달려갈 수밖에 없으며, 온갖 거짓에 속아서 인생을 탕진하고 고통 하다가 그 결과는 멸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6:3절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를 힘써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우리 인생의 힘이요 능력이요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처럼 인생을 새롭게 하시며 영원토록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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