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5.끝까지 사랑받는 사람(호세아3:1-5)

[성경본문] 호세아3:1-5개역개정

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

2.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끝까지 사랑받는 사람(호세아3:1-5/2017.3.5.오전)
1. 한국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던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역사의 연구」나「도전과 응전」이라는 책을 통해 세계의 역사를 보는 혜안이 깊고 남다르기 때문에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가 유명한 말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 보면 국가가 망하는 이유 3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어떤 일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람이 없을 때, 국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힘이 정의를 대신하게 되면 국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중심적인 것, 즉 사람들의 욕심이 국가를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슴 아픈 것은 어쩌면 그의 말이 오늘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옛날 것을 배우며 새 것을 알게 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이고 그래서 주어진 현실을 바로 진단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매우 지혜롭고 도덕적이지만 자신의 과거를 볼 줄 모른다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어느 민족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나라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나, 불순종으로 거역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면 재앙과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한 인류의 역사가 이 사실에 대한 반복이었습니다.

2.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진정한 사랑 하나만 있으면 인생에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만으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무엇이 부족해서 범죄하고 쫓겨났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이 욕심을 마귀가 건드리고 유혹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적으로 보면 우상숭배는 자살행위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어디서 이 같은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찾고 있으며, 그런 것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호세아는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하나님에 대하여 음행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그런 사람을 고멜같은 음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이스라엘과 우리를 끝까지 따라다니시면서 우리를 놓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없으면 심심하고 외로워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죄 가운데 우상 숭배 가운데 내버려두면 영원히 마귀의 밥이 되고 멸망하면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어느 날 선지자 호세아는 고멜이 아이들을 버려둔 채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이유는 1절에 보니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되" 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집을 나간 아내를 기다리면서 문득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멜이 남편된 자신에게 대하는 행동이 마치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행동하는 것과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지만 그들은 그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집을 나간 아내 때문에 속상한 것처럼 하나님도 이스라엘 때문에 속이 상해 괴로워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으면 남의 사정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집을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심정을,
사고뭉치 아들을 데리고 사는 어머니의 마음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선지자 호세아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당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6:15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고 했습니다.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아 집을 나간 고멜에 대하여 미움과 질투와 원망이 치솟아 오를 때,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4. 그 때, 선지자 호세아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하라는 말은 가서 그녀의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의 현실에 일어난다면 그 상황에서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또" 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고멜이라는 여자는 상습적으로 집을 나가는 습관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이런 기회를 통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 집구석이 말이 아니고, 본인은 물론이고 자식들이 당하는 고통과 상처는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애꿎은 아이들만 두들겨 패고 술 마시고 화풀이합니다.
그리고 호세아의 경우에는 선지자의 체면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의 생각이 어떤지는 상관도 없이 그녀를 또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종 한 사람의 몸값에 해당하는 돈과 곡식을 지불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서 의미 없이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그는 고난 속에서도 묵상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로 깨달은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범한 모든 죄악들보다, 그들을 용서하시고 변함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5. 고멜은 자신 한 사람의 정욕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남편과 자식들을 다 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아내이며 3명의 아이들의 어머니였지만, 그녀의 정욕은 인간으로서의 지켜야 할 의무나 사명 같은 것들은 걸레쪼가리만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더러운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며칠 전에 NHK의 BS방송에서 아프리카의 내전지역에 파견된 PKO 다국적 군대의 문제를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그 군인들이 자신들의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현지의 10대 소년 소녀들을 무참히 짓밟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귀국을 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한순간의 정욕해소 때문에 이런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평생을 육체와 정신적이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가정의 부모들과 형제들까지 주위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감수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프랑스인 유엔 사무직원은 이런 사실을 보고하고 조치를 요구했더니, 유엔에서 해고되어 실업자로 본국에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무총장까지 이 사건을 알게 되어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정욕은 한 사람의 순간적인 욕심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정욕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 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도록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6. 인간은 아무리 완벽하고 좋은 것을 주어도 그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입니다.
귀한 것을 주어도 그것이 귀한 줄로 모르고 발로 밟아버리는 우리안의 돼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머니의 태속에서 복된 인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도, 결국에는 저주와 고통이 따라다니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심판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죄인을 향한 은총과 회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고멜에게 선지자 호세아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너는 이제부터 나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를 묻지 않고 용서하겠다는 것이며, 더 이상 외롭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너도 더 이상 다른 남자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도 너의 남편으로서 모든 의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고멜을 버린다고 해도 비난을 받거나 책임을 회피한다고 욕먹을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어려운 결단을 내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나타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조금이라도 친절하고 관심을 보여주면 자기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매너이거나 예의에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멍청한 사람들은 이것을 오해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7.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하나님이 아쉬워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사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마귀의 종이 되고 영원한 멸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대한민국의 형편을 놓고 한번 쫄딱 망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말하는데, 망하면 정신 차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법대로 하시면 우리는 당장 망할 인생들뿐입니다.
그래서 법을 초월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분을 통해 보혈의 은총을 입게 하신 것입니다.
고멜을 데려 오기 위해서 선지자 호세아가 치룬 값은 전부 은 30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가롯유다의 손에 팔릴 때 치러진 값이 은 30냥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음란한 고멜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이 사랑의 행위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을 미리 나타내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더러움은 죽는 그 순간까지 끝이 없지만, 이러한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도 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눈먼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돌아올 마음도 없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선지자 호세아처럼 일방적으로 자신이 먼저 찾아가서 죄의 몸값을 치루고 손을 먼저 내미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언제까지가 돌아오기만 앉아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마치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처럼 직접 죄인 된 우리를 찾아오시는 사랑인 줄 믿습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 5절에서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도망만 가던 이스라엘이었고, 그런 이스라엘의 뒤를 쫓아가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고난의 70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에는, 그 때에는 그들이 먼저 남편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아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스스로 감사하고 그 분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종말의 때가 반드시 오기 마련입니다.
배신을 당하던지 서로의 사랑이 식어버리든지,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될 때,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되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끝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한 번 택하심을 입으면, 온갖 정욕으로 인하여 반복되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고멜처럼 세상에서 망신창이가 되어도 관계없이, 변함이 없이 아껴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 때 까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되듯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십자가를 통해서 멈추지 아니하고 영원토록 계속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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