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7.예수 그리스도의 피(출애급기12:21-25)
[성경본문] 출애굽기12:21-25개역개정
21.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예수 그리스도의 피(출애급기12:21-25/2016.11.27.오전) 1. 요즘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무엇보다 경제가 어려워 사람들의 생활이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달라서 문제가 있어도 입을 닫고 있을 뿐이지, 일본 경제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일본수상이 전 세계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는 있지만 하는 일 마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왔던 TPP라는 무역협정도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로 인하여 물거품이 되었고, 북방 영토 문제로 러시아와 그렇게 교섭을 하면서 공을 들여왔는데, 푸틴이 그곳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한다고 하면서 상황이 하는 일 마다 어렵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지만 문제가 있어도 항상 조용합니다. 이유는 떠들고 난리치면 칠수록 자신들이 손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복음을 모르는 일본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마16:3절에 보면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씨가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기본적으로는 시대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면 나중에 반드시 고통하고 통곡하는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물 흐르는 대로 시대가 흘러가는 대로 산다고 우리도 그렇게 살다가는 멸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한마디로 점점 가중되는 혼란과 고통으로 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그런 시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살고 정직하게 살았는데 결과가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을 하거나, 이리저리 분노하는 사람들 속에 함께 휩쓸려 가고 있는데, 이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환경과 조건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려운 데를 긁으면 점점 상처가 악화되듯이 문제와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렇게 고통하는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 답을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면 말도 않되고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상황에 있었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히브리 민족은 애굽의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식민지 생활을 보낸 세월이 정확하게 36년이 안됩니다. 그런데도 그 세월 속에서 우리가 당한 고통과 피해는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해방이 되고 7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한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은 지금도 그 골이 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나라도 없이 남의 나라인 애급에서 살아야했고(출12:40-41), 그 중에 많은 기간을 노예로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긴 세월을 고통 중에 살았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 자신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출3:7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 았다고 하였고, 9절에 보면 그들의 부르짖음과 함께 "애급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 다고 하였습니다. 3. 한 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의 현주소는 사람이 살 만한 그런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 자신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애급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것이 어느 정도였기에 그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었습니까? 애급인들은 히브리인들이 자녀를 낳으면 딸아이의 경우는 살려 두고, 아들의 경우는 나일강에 던져 악어의 밥이 되게 하였습니다(1:16,22).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할 때, 바로는 그들의 종교적인 행사를 막으려고 노역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5:8-9). 이스라엘은 노예 출신이 아니면서도 노예로서 살아야 했고, 자식은 죄 없이 학살당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없는 그런 환경 가운데 있었습니다. 도리어 애급에 산재한 무수한 우상들에게 예배하기를 강요당하는 곳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세상하고 너무 닮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최소한 주일 하루만이라도 성전에 와서 예배함이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살아갈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혼과 육신을 제대로 관리할만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육신을 위해 먼저 수고해야 하니, 남은 시간에 제 몸 하나 관리하기도 힘든데 여기에다가 어떻게 영혼문제를 더할 수 있겠습니까? 4. 일본 사람들의 종교생활을 보면 참으로 편리하다는 느낌이듭니다. 집 안에 부쯔단을 설치하고 그곳에 자신이 원하는 때 마다 잠깐 문안 인사를 드리면 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두 번씩 절이나 신사에 가서 공양을 드리면 훌륭한 신앙생활이 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나타나서 갑자기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우상숭배자들처럼 그런 예배가 아니라 우리가 우상과 억압으로 가득찬 애급 땅이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온전한 예배와 온전한 예물로 하나님께 예배 한 번 드리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의 예배와 우리의 예배가 무엇이 다릅니까? 그들은 예배하는 자인 자기중심, 즉 인간 중심으로 인간이 주도권을 잡고 예배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방법을 따라 인간 중심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영광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함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애급의 형편으로는 이러한 예배는 도무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현대인들도 생명의 보존이나 연장의 차원에서 삶을 살고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애급에서의 이스라엘처럼 거의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사회적인 구조는 도무지 하나님 앞에서 희생의 제사를 올려 드릴 수 없는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우리가 주일 이라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고 예물 드리는 이 행위 자체가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웃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 보면 알 수 있고, 그 사람들을 교회에 데리고 함께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 이스라엘이 이 고통의 현주소에서 해방되고 사는 길이 있다면 한 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지금 당당 애급에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 이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군 복무의 경험도 없고, 칼이나 창을 쓰는 법도 모르고, 늘 중노동에 시달리는 이 오합지졸과 같은 노예들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대한 패권국가 애급을 상대로 이스라엘이 그들과 싸워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돌을 던져 날아가는 비행기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요 꿈도 꾸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자손손 애급의 종노릇 하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무능하고 불쌍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21-22절의 말씀입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자신들의 집 문의 위와 좌우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밤에 식구들이 모여 양의 고기를 나누어 먹고, 밤이 새도록 피를 바른 집 문 에만 거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의도가 있다면 삼손이나 골리앗 같은 그런 천하장사로 구성된 대 부대를 보내시든지, 백성 중에서 지도자를 뽑아서 모세와 함께 외국에 군사유학을 보내든지, 아니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주셔서 많은 용병을 사서 애급군대와 싸우도록 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준비하신 방법이라는 것이 기껏 양이나 잡아서 문에 그 피를 바르는 것뿐입니다. 제가 어릴 때 눈에 다래끼가 잘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친이 머리는 하나에 몸뚱이가 셋인 물고기 그림을 그리고 그 물고기 머리 한 가운데 눈에 바늘을 찔러 부엌의 밥솥을 걸쳐 놓는 부뚜막의 벽에 꼽아 놓게 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 나이에도 속으로 이게 무슨 소용이냐고 속으로 웃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구원하겠다고 하나님이 행하신 방법을 보고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6. 우리가 성경을 보면 말도 안되는 이런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말도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구원받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나 외모나 소유나 능력이 아니라, 이 바보같은 명령에도 온전히 순종하느냐 아니냐 바로 그것을 보시려는 것입니다. 애급 가운데서 고통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보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이나 재산 가치나 위치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그 집 문에 양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만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에 피가 없으면 비록 그곳에 히브리인이 살아도 히브리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죽음의 재앙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바보같이 들려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를 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다윗은 어린 소년 목동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점점 갈수록 기울어 가다가 마침내 망했지만, 다윗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점 갈수록 왕성하여 마침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7. 그 뿐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인 에스더나 다니엘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에스더는 페르시아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하나님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죽음의 함정에 빠진 온 히브리인들을 다 살렸습니다. 요셉은 애급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유혹과 고난을 뿌리치고 자기의 순전함을 지키는 중에 도리어 기근을 만나 죽어가는 세계를 먹여 살리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신앙을 지킬 수 없는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가 믿는 자에게 은혜와 기적을 베푸신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도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나라 왕보다 더 위대하고 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그들이 정치적인 수단이 좋거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서 된 일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 중심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한결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더 큰 능력과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를 붙잡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남의 나라에 와서 살고 있고, 사회적으로 상당히 약자의 상황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정말 전투요 생존의 몸부림같은 그런 삶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미래가 있으며 무슨 꿈이 있겠습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벌써 망한 사람들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출애급을 위해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살라는 것입니다. 8. 이스라엘은 출애급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온전한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소망을 가지고 피를 발랐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믿음으로 자기 집에 그 피를 발랐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째는 온 애급을 죽음의 저주와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것입니다. 27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어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모든 것을 빼앗아 갔던 애급이 초토화되면서 저들은 그곳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칼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일전의 재물도 사용하지 않고, 그 어떤 외교적인 수단이나 정치적인 수단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불의에 분노하고 그래서 촛불을 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과 지성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를 때,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문제들은 물러가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더 좋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집에 그 피를 발랐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둘째는 온전한 희생을 드리는 예배의 길이 열렸습니다. 27절 마지막에 보면 "백성이 머리숙여 경배하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이 누리는 참 자유와 평화를 측정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곳에서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얼마나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9. 그들이 믿음으로 자기 집에 그 피를 발랐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셋째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축복의 길이 열렸습니다. 3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대로 주게 하심으로 그들이 애급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애급 사람들에게 갈취당하고 억압당하는 세월을 보내었는데, 출애급할 때에는 자신들이 소유한 것은 물론이고, 애급 사람들이 가나안으로 떠나는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추수감사절 전 주일에 제가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우리의 생활 주순에 맞춰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수준에 맞추어서 드린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이 출애급 할 때에 양의 피를 바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믿음으로 순종하였더니, 죽음의 재앙이 넘어가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가 주어졌고, 생각지도 못한 재물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적으로는 출애급은 하였지만 여전히 애급에 묶여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애급에 묶인 그런 생각과 그런 생활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믿음의 생활을 해도 기적과 능력은 성경에만 기록된 사건들이고 나는 늘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삶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 고통의 땅인 애급을 떠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인 가나안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내 가슴에, 내 심령의 지성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그럴 때 광야에도 길이 열리고, 바위를 터뜨려 샘이 되게 하고, 낮에는 구름기둥이 인도하고 밤에는 불기둥이 지켜주며, 하늘이 열리고 만나가 쏟아질 것입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오늘부터 우리도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고 나아갈 때 출애급 보다 더 위대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