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1.어둠을 비추는 참 빛(요한복음1:9-14)
[성경본문] 요한복음1:9-14개역개정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어둠을 비추는 참 빛(요한복음1:9-14/2016.12.11.오전)
1.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고, 정말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유익한 일이며,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지혜롭고 정의로운 일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위에 정체불명의 온갖 유언비어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현혹하고 있는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지만, 개인이나 단체는 물론이고 우리가 잘못 판단해서 행동하게 되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물며 국가의 미래가 걸린 정치적인 사안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이 군부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룬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대통령이 탄핵의 대상이 되는 것은 벌써 두 번째 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볼 때에는 대통령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 덩어리는 국회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300명이 정말 탄핵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정말 대한민국의 수준과 미래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갈 길을 잃고 흔들리면 경제가 무너지고, 그 뒤를 따라 교육이며 사회 규범이 무너지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분의 선하신 뜻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씨를 잘못 뿌리고, 우리가 잘못 행동하고, 우리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것이 있으면 우리의 과실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작금의 한국이나 여타 국가의 현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결같이 시민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민정신이라고 하면, 어느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으로서 그 사회가 바르게 유지되도록 책임의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시민정신이 상실된 상황에서는 선한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본문의 말씀을 통해 혼란에서 안정으로, 분열에서 일치를, 개인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2.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시간 개념 상 태초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신앙의 족보를 가지고 시작하고, 마가와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중심으로 시작하는데, 요한복음은 인류는 물론이고 땅과 하늘, 만물이 존재하기 전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태초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다른 피조물처럼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그 분 스스로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 자신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 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만물의 근본이시며, 그 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어떤 생명이나 피조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고 문제가 무엇입니까?
본문 10절에 보니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 되신 그 분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자기가 만드신 이 땅과 자기의 형상으로 지음바 된 자기 백성 가운데 오셨는데, 그 분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11절에 보니 그 분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많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 인생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는 다름 아닌 인생과 만물의 주인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분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왜 우리에게 좀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느냐고, 그 분의 현현과 표현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본문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 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빛이 어떤 빛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 분을 단순하게 빛이라고 하지 않고 참 빛이라고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빛이라고 하면 단순히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서 그리스도를 참 빛으로 표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은 생명도 살리고, 저주받은 환경으로 말미암아 얻는 병든 생명도 치료하고, 심지어 망가지고 버림당한 생명까지도 살리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참 빛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빛이 있지만 인생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빛은 오직 참 빛으로 표현되어진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빛은 잠시잠깐 어둠을 밝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그 어둠에 삼킴을 당해야만 하는 제한적인 빛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 되시는 분입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고 문을 통해서 빛이 들어오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인생이 참 빛을 통해서 저주가 물러가고 고통이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있는데, 죽은 송장이 아니라면 그것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이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분명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인생에 참 빛으로 오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말한대로 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 어떤 핑계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상에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그 사실을 11절에서 밝히기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 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문제점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까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을 내 안에 받아들이기면 하면,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을 믿기만 하면, 그 분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지신 고난의 희생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일인지 저절로 깨달아지고 수용이 될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서는 안될 곳이나 방문해서는 안될 곳을 가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자기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땅에서 거부당하고 배척당하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자기백성에게 당하신 멸시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당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모욕과 수치였고, 고통이며 외로움 이였으며 마지막에는 그들의 미움 때문에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미리 알고 있던 세례요한은 자기를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1:29)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배척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고, 그 죄 때문에 참 빛의 비췸을 거부하여 어두움에 숨고 말았던 것입니다.
참 빛은 생명을 줄 뿐만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어둠이란 단순하게 태양이 사라진 캄캄한 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어두움은 죄악에 사로잡혀 그 생각과 삶의 모든 영역이 불법과 무지함에 갇혀 진리도 모르고 생명도 모르고 깨달음도 뉘우침도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실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어두움이 지배하는 정치의 특징은 외치는 구호와 명문은 그럴듯하지만, 결과는 사람들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갈수록 고통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 어두움이 지배하는 사회는 개인주의의 욕심으로 팽창하여 결국에는 풍선이 터지듯이, 바벨탑처럼 소리를 지르며 무너져 내릴 뿐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 (롬3:10-12)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고 사람 대접받으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지고의 선과 행복을 누리고 싶어도, 눈물로서 시작해서 죽음이라는 고통으로 끝나고 마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죄 때문입니다.
내 죄가 내 욕심이 내 어리석음이 내 인생을 저주 속에 빠뜨리고 고통하게 만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후에는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져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6.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자기 백성이 구원받고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얻는 일이라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해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본문 12절에 보니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분노를 가지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모든 문제를 분노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면서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들과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나보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만족하면서,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지금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가는 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형님들에게 차별 당하고 무시당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과 조건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꿈꾸는 미래는 자신을 괴롭히는 형님들과 같은 그런 인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살리고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꿈을 가진 요셉을 축복하시고 마침내 어린 소년이 꿈을 꾸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요셉을 보고 애급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창41:38) 이라고 하였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 (39)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꿈이었고 삶이었고, 하나님 앞에 받은 사명이었습니다.
7. 이것은 신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지금도 믿는 자들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요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내어주신 은혜입니다.
아무리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머리 나쁘고 건강이 나쁘면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무엇하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근심덩어리일 뿐입니다.
바로 이런 인생을 위해서, 내 힘으로 내 지혜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며, 의지할 곳도 없는 그런 인생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 우리의 심령의 문 앞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성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12)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 성탄절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고 있지만,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 되었던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10:45)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고, 형제와 친구의 사랑을 받으며, 믿음의 형제들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폼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려고 오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탄절이요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참 성도들이 누리는 대강절의 은혜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비추는 유일한 생명의 빛이요 진리의 빛입니다.
그래서 어둠으로 인해 분쟁하고 고통하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라와 민족 가운데서도 이 빛을 비추면 죄로 인한 어둠이 변하여 생명과 은혜로 충만하며,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참 빛을 찾지 못해서 영원한 생명은 물론이고, 이 추운 겨울에도 외롭고 고통스럽게 소망이 없는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 빛으로 영접하였으니, 이러한 충만을 통해서 우리 가정과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특히 내 나라 내 민족이 생명의 참 빛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가 생명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되며 증거하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