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3.감사의 제사를 드리자(시편50:14-15,22-23)
[성경본문] 시편50:14-15개역개정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제공: 대한성서공회
감사의 제사를 드리자(시편50:14-15,22-23/2016.7.3.맥추감사절)
1.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사람을 귀하게 말하고 귀하게 여기는 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로 보셨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까지 그 어떤 철학자나 과학자나 정치가나 영웅이나 도덕가도 예수님처럼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목사님들이 설교 중에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니, 그런 성경구절이 있는 줄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직접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없지만, 그 분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셨고, 죄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실 정도로 한 생명, 한 영혼을 귀한 존재로 받아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16:26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고 하셨으니, 이 말씀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과 33년간의 생애를 통해서 본을 보여주신 모습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의인이냐 죄인이냐를 상관하지 않고,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상관하지 않고,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그 사람의 생명을, 그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아무리 실패하고 고통과 문제에 빠져 있는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누구든지 새사람이 되는데 여기서 3가지의 변화를 맛보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 첫째는, 내 인생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 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대할 때, 내가 가진 소유와 능력을 보고 점수를 매겼습니다.
심지어 학교는 어디를 나왔고, 출신지는 어디이며, 지금 어떤 직장이나 사업을 하며, 장래성이 얼마나 있느냐를 가지고 나를 판단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결혼할 때에는 키가 얼마나 큰지, 배는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본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3등 인생처럼 대우를 받으며 살았고, 그것 때문에 수치와 분노와 열등감을 숨긴 채 살아왔는데, 오늘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내 인생이야말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결코 세상 사람들의 판단이나 생각에 결정되어지는 그런 간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이 귀한 선물을 받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귀하게 여기고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던 것들이, 들풀의 이슬 같고, 피었다 곧 시들어버리는 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세상에는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귀하고 영원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입은 귀한 존재인 만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다 나처럼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적인 개념보다는 내 개인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나만 잘 살고 내 소원만 성취하고, 나만 불편하지 않고 문제가 없으면, 내 주위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든지, 지진과 기아와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쓰러져 죽어도 나와 내 자식만 편안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사람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나도 귀한 존재요, 내 자녀도 내 식구도 귀하지만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다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소유나 어떤 특별한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고,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이웃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를 위해서 물질을 보내면서 기도로 후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명을 얻는 것이 천하보다 더 귀한 일인 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는,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죽음에 이르도록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한두 번 실패하고 무너지면 아무도 돌아보거나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없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 한 번의 실패로 인생의 미래가 결정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니,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서 특별히 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아름답고 귀한 존재로 만드시고 또한 축복하셨다는 사실과, 그래서 만물과 인간이 같은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창조되었지만, 이 모든 만물이 전부 나와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바 사랑과 그 은혜와 구원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자신이 귀한 존재인 줄 알게 되고, 남들도 귀한 존재인 줄 알아서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사죄의 은총, 영원한 축복에 감사하는 줄 믿습니다.
4.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전부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인간은 특별한 방법으로 만드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3:19절에 보면, 인간이 사단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죄에 빠졌을 때에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의 근본이 가장 흔해 빠진 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좀 벌고 인생이 잘 나간다고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으로 칠을 해도 결국은 흙 위에 옷을 입히고 흙 위에 페인트칠하는 것뿐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미이라가 몇 천 년을 썩지 않고 남아서 온 세계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제일 좋은 장례방법은 빨리 흙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장하고 산이나 바다에 가서 뿌리는 것이 제일 현명한 방법입니다.
인간이 흙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을 만났을 때, 땅의 흙을 침으로 이겨서 그 눈에 바른 후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고, 순종했더니 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위에서 가죽신을 신고 사는 사람보다는, 시골에 가서 맨 발로 흙을 밟고 사는 사람이 훨씬 건강합니다.
그래서 의사도 포기한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가 흙과 물을 가까이 하고 살면서 건강을 얻게 되는 것이 인간은 흙에서 시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이라도, 남들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살지라도 자랑하거나 교만할 이유가 없는 것은 전부 흙에서 났다가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들이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남을 지배하면서 살려고 서로 속이고 속으며 죽고 죽이는 아귀다툼을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5.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50편의 말씀은 우리 하나님은 인생을 심판하시는 전능하신 재판장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데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그 예배 행위를 살펴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형식적인 예배며, 이로 말미암은 정성이 없는 예물을 다 살펴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14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감정이 매우 상하고 노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들이 짐승을 잡아 제사 제물로 올리는데, 그것들이 다 누구의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을 잡아 제물로 올릴 때, 내가 그것을 사람들처럼 그 고기를 먹으로 그 피를 마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나에게 제사를 올리는 너희가 더 잘 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본문10-12절에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내 것처럼 욕심 부리고 강탈하고 속이며 제 소유로 만들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와 그 제물은 무엇입니까?
14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제사 드리는 자들의 중심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이 얼마나 복잡하고 그래서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습니까?
이런 방법은 하나님이 원래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지만 죄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완전한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통해 이 아들이 드리는 단 한 번의 완벽한 제사를 통해 구약의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던 모든 제사를 다 없애버리셨습니다.
6. 참으로 놀라운 것은 15절의 말씀입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희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14절과 15절을 놓고 오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약속한 서원을 갚는 사람은 하나님이 환란 때에 도우시고 건져 주신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행위의 결과를 따라 반응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은혜는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값없이 조건도 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공로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 형식적으로나 엉터리로 예배하지 아니하고, 정성을 다해 감사로 드림이 마땅한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환란을 당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에 그 분이 돕는 척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고 그래서 그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거래가 아니라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언약을 맺은 당사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당연한 반응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런 관계를 설명하기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고 하면서 계속해서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고 단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7.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하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그 분의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 보다는 불평과 낙심과 원망을 가지고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옹기를 살 때 겉이 번지르한 것은 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그곳에 사람의 몸을 해롭게 하는 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사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귀한 딸을 시집보내는데 사윗감을 겉만 보고 결혼시키면 평생 딸을 고생시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인물 잘나고, 공부 많이 하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런 것에 현혹 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시장에 가서 짐승을 살 때는 겉만 보고 그 가치를 결정합니다. 당연합니다.
이 소가 심지가 깊은지 생각이 깊은지 어디서 자랐는지 그런 것 보지 않습니다.
튼튼하고 힘이 세고 무게가 많이 나가고 크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먼저 그것을 봐야 합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인자하게 보여도 그 속에 칼이 숨어 있는지, 분노가 숨어 있는지, 게으른 사람인지, 용기가 없는 사람인지, 겉으로는 사람을 웃겨도 그 속에는 기쁨도 감사도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인지 잘 봐야 합니다.
저는 딸을 보낼 때 두 가지만 보았습니다.
신앙심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내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속에 있는 그 사람의 마음과 인격과 심령입니다.
겉이 행복해 보인다고 속까지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8.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그 사람의 속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 속에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있는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는지, 날마다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도 말하기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약2:1).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구원의 감격과 함께 감사가 넘치는 예배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본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행위란 무엇입니까? 구원과 축복의 하나님을 향한 바른 반응을 말합니다.
그 바른 반응이란 바로 앞에서 말하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제사는 22절에 보니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찢으신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앞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이 말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내게 베푸신 구원과 은혜를 잊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사와 기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해 당연히 나아와 할 감사의 반응이 없어지고 형식적인 예배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의 존재가 흙으로 지어진 연약하고 가치가 없는 존재지만,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있으며,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된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었고, 저주 받은 인생이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었고, 썩어질 인생이 변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았으니, 삶의 현장에서는 물론이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본분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삶의 현장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더 크고 영원한 축복의 세계로 나아가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