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20.살과 피(마태복음 26:26-30)
[성경본문] 마태복음26:26-30개역개정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살과 피(마태복음 26:26-30/2016.3.20.오전)
1. 인생이라는 것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신이 나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 살수록 외롭고 고달프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죽고 싶고 살기가 싫고,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많아지고 정말 살맛이 안 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살아도, 나이를 먹어도 인생의 가치를 모르고 어디 가서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이슬람의 과격파 IS처럼 세상을 다 파괴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사람의 가치를 자꾸 떨어뜨리고, 그래서 사방에서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이용당하고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가치가 무엇이며 왜 살아야만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하던 마귀는 이런 연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귀에다 속삭이는 말이 무엇입니까?
살면 뭐해? 너는 틀렸어! 그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짓 하고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만물과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인생의 가치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래서 마구 잡이로 살고 함부로 살면 안되는 너무도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시장에 가면 돈을 지불한 만큼의 가치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사꾼에게 속지만 않으면 싼 것은 싼 값을 하고, 비싼 것은 그만큼의 가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도 내가 수고하고 노력하고 희생을 지불한 만큼 그 값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지불한 만큼, 지불된 가치만큼 존재감이 있으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우리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많은 내 대신, 내 멋대로 내 욕심을 따라 살던 그 죗값을 대신 치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만큼 우리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내 대신 생명을 지불하신 분의 그 가치만큼 우리는 존재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돈 몇 천엔 때문에 살인을 하고,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분노 때문에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기도 합니다.
지난 2월16일에는 가나가와껜에서 7살, 5살의 자녀의 목을 졸라 죽이고 11살 장남도 목을 졸라 죽이고 삶에 지친 자신도 죽이려던 39살의 모친이 채포된 사건이 있었고, 며칠 전에는 효고껜에서 15살 아들이 52살의 모친을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공부 안하는 자식을 정신 차리라고 꾸짖었는데 아들은 화김에 모친을 찌른 것입니다.
자식을 죽인 어머니나 어머니를 죽인 아들이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가치,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 인생이 타락하면 동물 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괴물이 될 수 있지만, 동물은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 해도 결코 인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동물과 인간은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시기, 질투, 미움, 거짓말, 배신과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데, 이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의 존재가치나 생명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잠언에도 보면 악인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한"(잠4:16) 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 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그 분이 나를 살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고난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그 희생이 얼마나 귀한 사랑이며 가치 있는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먹고 마시고, 소유를 누려도 만족할 수 없는 인생, 행복을 추구하지만 결코 그것에 도달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수고해서 육신의 배는 부를 수 있어도, 그것으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참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라고 시험했을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마4:4)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육신이 떡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 영혼도 하늘에서 내려온 영원한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만족과 감사로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4. 사람은 짐승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는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14장에 보면, 빈들에서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에 차도록 남긴 사건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 분을 육체의 빵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업이 잘되고,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 성장한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그것으로는 인생의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축복만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적인 복을 받아야 영육간에 참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 영혼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까?
이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새 차에 새 옷에 새 집을 사 입고, 각종 액세서리로 자신의 몸을 장식하고, 이 남자, 저 여자를 바꾸면서 살지만 인생에 여전히 만족은 없고 도리어 피곤하고 죄책감만 쌓여 갈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치고 수고하고 열심히 사는데도 불구하고 왜 만족이 없습니까?
이유는 인생은 본래 흙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지었다는 것은 원래부터 인생은 근본적으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흙에는 영원함도 없고, 오직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이 영혼을 불어넣어 주셨고, 이 영혼으로 인생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기 때문에, 인생은 가치가 있고 소중하고, 그래서 인생은 그 어떤 피조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로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받은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신병 환자처럼 살고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심령이 원하는 만족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5.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계십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중대한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면서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26) 고 하셨고, 또 포도주 잔을 나누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27-28)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이며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임을 당하는데, 그 때 찢어지는 내 살은 너희가 먹을 영원한 양식이며, 그 때 흘리는바 나의 피는 죄를 씻으며, 저주와 영원한 고통에 빠진 너희를 영원토록 살리는 생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나를 믿으라고 하지 않고,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바로 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죄도 안 지으려고 노력하는데, 이상하게도 유혹이 더 많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면 그냥 믿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내가 인간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깨달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정욕을 죽이려고 칼로 자기 몸을 찔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자신의 몸이요 피라고 하신 것은, 너 혼자의 힘으로 살지 말고 이제 부터는 내가 너 안에서 너와 함께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특별히 다른 피조물과는 구별해서 매우 소중하고 보배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그 사실을 요6:56절에서 밝히기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단순히 말로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주님과 내가 하나 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의 역사도 단순히 배고픈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목적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떡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고 소유함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녀로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단순한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라 정신세계는 물론이고 삶 자체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으로 먹고 마시는 음식은 내 속에 들어가서 소화가 될 때, 내 살이 되고 내 피가 되어 나의 힘의 근원이 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내 안에서 영적으로 소화가 되어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사실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갈2:20)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갈등을 느끼고 죄를 범하고, 이전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존재로 거듭났는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은혜가 내 안에 부음바되어,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줄 아직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그분과 가까움을 느끼다가도, 어떤 때는 냉랭함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낙심해서 모든 힘이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그 분과 하나 됨에 있다는 사실을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안에 살로 오시고 피가 되심으로 나와 하나 됨으로, 이후로는 생각과 행위에서 예수같이 되기 원하시기 때문에, 자신을 떡과 피로 비유하시면서 나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7.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 줄 깨닫고, 나의 존재를 축복하시고 존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복음의 사명을 완수하는 자들이요, 십자가의 증인으로 사는 사명 자들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죄 안 지으려고 몸부림치는 대신에, 또한 주님을 잘 믿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대신에, 그냥 주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을 사모하시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모시고 있는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가를 깨달아서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살과 피 가운데 일체가 되어 당신의 능력과 권세로 나를 통해 역사하시고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