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3.예배는 무엇인가(요한복음 4:23-24)

[성경본문] 요한복음4:23-24개역개정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예배는 무엇인가(요한복음 4:23-24/2016.1.3.오전)
1. 로마에 가면 라테라노의 성 요한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입구에는 이 요한 교회를 가리켜 전 세계 교회의 어머니며 머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로마교회의 교황이 새로 선출되면 반드시 이 교회를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내력을 보면,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 받으시기 위해 올라갔던 28개의 계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있던 이 계단을 옮겨다가 이곳에 설치하였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이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약 20년 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때 동행했던 몇 분이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면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세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사죄의 은총을 구하면서 이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음성을 듣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도중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인간이 신적 존재에 대한 섬김과 경외의 표시로서 반드시 그 중심에는 예배가 있으며,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이 예배를 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엄청난 재물과 희생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을 돌아보면 이런 현상은 감탄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 건물 하나를 완공하는데 1,2백년 씩 걸려서 완공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그 교회 안에 장식된 물건들은 다 예술품이고 보물들이며, 교회 건물 자체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족 교회가 있는데. 이것은 천재건축가로 불리는 안토니 가우디에 의해 1882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짓고 있으며, 세계유산에 올라 있는 건물입니다.

2.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52번의 주일 오전 예배를 중심으로, 주일찬양예배와 수요예배며 새벽기도와 계절이나 각종 행사에 맞춘 특별예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교회 바깥으로는 심방예배와 야외예배, 각종 관혼상재에 관한 예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예배 행위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예배는 인생의 존재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보다 더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에서 사업이나 직장의 일이나 공부하는 일이며 여가 등에 쏟아 붓고 있지만, 우리가 하루를 통해서 행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은 당연히 하나님께 대한 예배 행위인 줄 믿습니다.
왜냐면 성경은 우리 인생이 지음 받은 그 존재의 목적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사43:21) 고 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의 흐름을 통해서 드러나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은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그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는 예배의 역사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형제가 똑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올렸지만 그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창4:7절에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고 했습니다.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의 차이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와 이유를 말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믿음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믿음에 기초한 그의 제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경우는 왜 하나님이 그 제사를 거부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인간들처럼 편견을 가지고 계시거나 다른 어떤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하실만한 그런 분이 아니시며,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시며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신 그런 하나님이 가인을 차별하실 이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제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 드리는 당사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도무지 그 예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치명적인 죄 문제가 가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죄가 하나님 앞에 바른 제사를 드릴 수 없도록 만들었고, 또한 그 제사를 받으실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베푸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여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제사를 드리고 안색이 변하고 분노에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회의나 회담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그 회의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내고 난 이후의 집 주인의 경우나, 초대 받아 간 손님이 돌아 나올 때 그 표정을 보면 그 시간이 즐거웠는지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돌아선 뒤에 분노로 가득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제사에, 예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특징 중에 하나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탓을 바깥에 두고 남을 공격하고 비난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 악인의 특징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인데, 가인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것을, 제 탓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잘못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복 받고 형통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죄인이라도 자신의 죄로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날 평지에 모여서 바벨탑을 쌓아 올린 사람들처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사람들이 영광을 받고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고 자신을 과시하려고 할 때 그 예배는 잘못된 예배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였던 아브라함을 택하여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께 올리는 바른 예배를 통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그는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었고, 예배에 대한 성공이 그로 하여금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게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12:7-8절에 보면, 그가 가는 곳마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고, 그는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 드렸습니다.  
9절에 보면 옮겨 다니는 그런 불편한 생활 속에서도 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쯤 교회에 나와서 1시간 남짓 예배로 시간을 때우고,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지만, 성경에서나 기독교 역사에서나 우리 주위의 현실 속에서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과 수고와 때로는 이 예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생명까지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몸 만 와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이 예배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가, 바로 이것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올리는 예배의 성패를 좌우하며, 그것이 세상에서의 인생의 성패와 관건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성공한 인생은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예배에 실패한 인생이 세상에서도 실패한다는 것을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생명을 걸면 그 예배는 생명처럼 소중한 예배가 되지만, 똑같은 예배에 임하면서도 시간만 때우는 사람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도 만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6.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기도 가운데 성령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은, 예배를 통한 인격적인 만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는 헛된 것에 굴복하여 예배하는 어리석은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시고 그 인생에 축복을 선언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배에 온 맘과 정성을 다하고, 동시에 생명을 건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예배해야 합니까?
우리는 죄인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영원한 고통과 저주 속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죄인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 주시고 그 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희생하여 그 값으로 주고 산 바 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잠언8:17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 이라 했고,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3) 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냉랭한 예배가 아니라, 예배에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모함이 내 심령 안에서 먼저 뜨거워져야 합니다.

7. 그러나 하나님 만나지 못한 사람들, 머리로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예배가 비인격적이고 간절함이 없기 때문에, 점점 예배가 의식화되고 형식으로 흐르다가 가인처럼 오히려 예배 때문에 망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의 변화가 어디에 나타나고 있습니까?
삶 속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부드러워지고 변화된 새 사람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성격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인생의 가치관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예배하면 할수록 말이 많아지고, 점점 교만해지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가인처럼 얼굴의 안색이 변하고 예배드리고 난 후에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으로 선지자를 통해 기름 부음 받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지만, 나중에는 기름 부음 받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자신을 위해 성급하게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온갖 법도를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예배 빨리 드리고 밥 먹자! 예배 일찍 보고 월드컵 보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 예배하면 그 예배를 통해서 과연 얻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께 얼마나 정성을 다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예배가 과연 은혜 넘치는 예배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8. 믿음의 사람 다윗은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를 위해 대가를 치룰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삼하24:24-25절에,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은 오십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올바른 예배, 정성을 다하고 생명을 건 예배를 드린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다윗의 본을 따라서 바른 예배를 드리면, 병든 육신도 치료하고 더러워진 영혼도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땅이 저주 받고 환경이 오염되고 경제가 위기를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바른 예배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 깨어지고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정성과 희생을 쏟는 그런 예배를 통해 우리의 저주받은 땅과 저주받은 모든 환경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름답고 축복으로 넘치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하루의 모든 일과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예배를 위해 희생할 줄 알고, 예배의 참된 가치를 깨닫고, 예배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9. 마리아는 옥합을 깨트려서 자기의 희생을 주님께 보여 드렸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남보다 더욱 사랑하는 증거요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그녀의 희생적 예배로 보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을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희생할 때 하나님께 기쁨이요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잃어버렸던 인생의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 삶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어야 하고, 그것이 곳 내 인생의 복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본문의 말씀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만나고, 그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리고, 예배에 성공하여 인생에 성공하여 전무후무한 축복과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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