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마태복음1:18-25)
[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개역개정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마태복음1:18-25/2015.12.13.오전)
1.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미리 준비되어서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병원에서는 태어날 아이를 받을 의사와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고, 또한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의 품이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밖에 많은 친척들과 가족들과 이웃이 생명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생명의 탄생을 위해 사람들만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날 아이에게 입힐 옷이나 여러 가지 신생아를 위해서 필요한 많은 물건들이 함께 기다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생아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이의 이름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뱃속에서 잉태될 때부터 시작해서 딸아이라면 어떤 이름을 지을까? 아들이라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하고 많은 고민을 하고, 또 사람들에게 물어서 만들어낸 이름이 아이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에게서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없이는 생명이 있어도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름이 없이는 세상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일수록 제 소유로 삼을 수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름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많은 기다림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의 품속만큼 소중한 기다림은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분도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니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예수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라는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그의 자녀된 구원의 감격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2. 예수라는 이름은,「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으로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너무 보편적인 이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녀에게 남다른 이름을 붙여 주고 싶어 하는데, 그 이유는 이름대로 남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첫 아이의 출생에 붙인 이름치고는 너무 평범한 이름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기 예수에게 붙인 이 이름을 요셉이나 마리아가 준비한 이름이 아니며,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붙여준 이름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본문 21절에 보면 예수라는 이름을 작명해준 분이 나옵니다.
그 분은 성령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그 아들 예수에게 이 이름을 붙여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고 따라 오지 못할 위대한 이름을 아들에게 주실 수도 있는데 왜 가장 평범한 이름을 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은 세상을 호령하고 지배하는 영웅이나 황제의 출생이 아니라, 도리어 이 세상에서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고 불쌍하고 고통 받는 인생들을 섬기고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름으로 그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삶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기 때문에, 그 분의 이러한 사역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요셉의 아들로 출생하셨지만, 그러나 그 분 안에는 이름에 관계없이, 인간의 육신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능력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이 예수라는 이름이 성령님에 의해 계시된 이름인 것처럼, 그의 출생 또한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처녀가 아들을 낳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왜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23절에 보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은 언약 안에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사 삼손의 경우도 일시적으로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다가 떠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생을 살피시고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계시지만, 사람과 일체가 되어 늘 함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임마누엘 자체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불가능을 가능케 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택한 자기 백성을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으로 보이는 예수라는 그 이름 속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있으며,
또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그것도 마구간에서 출생하셨지만, 도리어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를 어떤 상황에서도 능히 구원해주며,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능히 지키고 건져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자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하기로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한 번도 살기 좋은 세상이고 내 인생이 복되고 평안하다고 하는 소리를 듣기 어려웠습니다.
60-70년대도 어른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었고, 80-90년대도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세상을 욕하고 비난하면서 더러운 세상 못 살겠다고 불평 원망하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전 세계적인 재앙과 경제적인 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대로 한다면 한 번도 평화로운 시대가 없었고 늘 위기뿐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죄의 세력이 서로 욕심을 내게 만들고 분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을 벗어버리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권력으로 울타리를 삼고, 많은 물질로 성벽을 쌓아 그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울타리와 성벽은 쌓으면 쌓을수록, 그 높이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격리되고, 세상에서 차단되고 그래서 안에서 오는 고독과 두려움과 갈등의 고통을 통해 결국에는 모든 것이 병들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런 울타리나 성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시고 낳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5.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고 있습니까?
본문 21절에 보니,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라고 했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이 만드신 축복의 동산에서 행복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고통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죄" 라고 했으니 곧 우리 자신들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를 저주 가운데 영원한 고통 가운데로 몰아넣었으며, 우리의 욕심이 미혹하는 사단에게 빠져 죄의 노예로 살게 했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어리석음에 빠짐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아름답고 선한 것을 다 잃어버리고 소망 없는 삶을 살게 만든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도 19절에 보니, 약혼한 마리아가 자신과 동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한 것을 알고는 그 관계를 끊으려고 했으니, 요셉이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고 사리 분별이 있고 행동에 조심성이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할 뻔 했던 것입니다.
똑똑하다고 유능하다고 경험이 많다고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인생을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런 것을 믿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망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먼저 깨닫는 자가 성공하는 인생이요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는 축복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6.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엔도 슈사꾸는 게이오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통해 문학의 지경을 넓히고 1955년에「하얀 사람」이라는 작품을 통해 아쿠타가와 상(芥川賞)을 받으면서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데, 그의 작품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보면, 막부시대의 박해로 인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를 당하고 또는 배교를 당하는 상황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기를 왜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가에 대한 의문과 불만으로 인해, 하나님을 거미줄에 걸려 있는 나비처럼 힘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때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너는 내가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외면하고 침묵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도 저들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고 하면서, 로드리고 신부에게 너도 나를 밟아라, 나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밟히기 위해서 세상에 왔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 분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에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감당하기 어렵고,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분의 참 사랑과 은혜를 아는 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잉태된 것", "성령으로 된 것" 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 일은 지금 성령님이 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이 일도 지금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과 수치를 생각하기 전에, 적어도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마리아가 당하는 일이나 요셉이 당하고 있는 일들을 한 번쯤 묵상해 보셨습니까?
그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일, 다시 말해서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고 계시는 성령이 하시는 이 일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인생 일대의 최대의 위기와 고통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 하고 하나님도 남편도 버리고 떠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은 자기 생각, 자기 계획이 분명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깨닫고 그의 아내를 데려 왔다고 24절에서 밝히고 있으며, 마리아도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제일 순위는 늘 내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으며, 그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하는 요셉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려움 당할 때, 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실타래가 엉키듯이 우리 인생이 계속 꼬여갈 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시고 분명한 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에는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깨닫고 나니 평안했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기븜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다니엘도 나라가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칼과 굶주림과 병으로 쓰러졌고, 자신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으면서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떠난 먼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역사하시고, 그 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요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며, 언약의 백성은 끝까지 붙드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사자 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왕명을 거부하는 것도 두려워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8. 그렇다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려진 자기 백성을 다시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탕자처럼 자기 발로 걸어 나가 범죄에 빠진 백성이라도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은 자기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셨고, 세상 온 만물을 자녀된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요셉과 마리아는 순종함으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연 것처럼, 우리도 은혜 받고 깨달았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 뜻과 계획과는 상관이 없이 인생이 흘러간다고 해도 그곳에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과 우리의 자녀들을 통해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면, 아무래도 고난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백한대로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는 말씀 그대로의 축복과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는 3가지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깨닫고 부르짖을 때 사는 길이 열리니 기도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애급에서 고난 중에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고,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부르짖으니 사사를 보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이 일본과 내 나라 내 민족, 전 세계 열방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부르짖으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원히 사는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둘째는,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시고 사랑 가운데 우리를 낳으셨으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하고라도 죄로 잃어버린바 된 우리를 다시 찾겠다는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 일이 우리가 받은 사명인 줄 믿습니다.
셋째는, 성탄절은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섬김을 위해 오신 예수님처럼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 병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면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기념하자는 것입니다.
마구간의 출생에서 갈보리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그 은혜를 증거하며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리면서 2015년의 마지막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