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5.오병이어의 기적(요한복음6:1-15)

[성경본문] 요한복음6:1-15개역개정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오병이어의 기적(요한복음6:1-15/2015.11.15.추수감사절)


1. 어제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큰 사건이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습니다.

과격한 이슬람 세력에 의한 파리 중심부에 무차별 총격과 폭탄테러로 150여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31일, 이집트에서 출발한 러시아 항공기가 폭탄테러로 224명 전원이 사망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또 대형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이미 국제적인 정치나 경제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90년에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21세기는 지구촌이 평화롭게 더 잘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점점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중류층의 몰락으로 인한 빈곤의 문제, 경제적 차별의 문제, 환경의 문제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들뿐입니다.
극단 이슬람 세력인 IS의 배후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치나 종교나 문화는 일종의 구실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문제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상실감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특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폭력과 살상이라는 잘못된 돌파구를 찾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경제적 차별로 인하여 진행되고 있는 계급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현대의 추수감사절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유럽에서 신천지 미국대륙으로 건너간 퓨리턴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1년 동안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2. 이 같은 추수감사절이나 맥추감사절은 결국에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에 대한 보답과 감사의 표시이고 보면, 감사절도 경제적인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문제로 인해 파급되고 있는 오늘날의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 특히 젊은이들이 기성사회에 대한 좌절로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성경에서 이런 경제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늘 본문을 선택하고, 그 제목을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만들어 보았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그곳에는 그를 따르는 남녀노소의 큰 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 때 제일 큰 문제는 그들이 함께 나누어야 할 양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5절에서 예수님이 제자 빌립과 함께 대화를 나누시면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고 하셨는데, 이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과,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이 배고픈 사람들을 남김없이 다 배불리 먹이시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핵가족 시대에 손님 몇 사람만 방문해 와도 온 집이 난리법석이고, 일거리가 대단하고 번잡스럽고 신경 쓰이는 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특히 명절을 맞이하면 온 식구는 물론이고 형제들, 친척들이 모여 들면 그들이 함께 먹고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큰 무리라고 표현된 이 사람들을 다 먹이시기로 작정을 하셨으니, 예수님은 그렇다 치고 제자들의 걱정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3. 마14:21절에 보면 같은 사건을 두고 기록하기를,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고 했으니, 남자 어른 5천 명 이외에 몇 명이 왔는지 몰라도 대단한 숫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막6:35절에 보면 같은 사건을 놓고 표현할 때, 이곳은 빈들이고 날이 저물었다고 했으니, 이 엄청난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운다는 것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생각해 봐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문제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이야 갈릴리 바닷물을 떠 마시면 그만이겠지만, 떡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옛날부터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듯이, 요즘 경제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노인들의 빈곤문제가 심각합니다.
이혼하고 자녀를 혼자 키우는 30-40대 여성들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그야말로 현대사회의 약자 층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날이 저물고 있는 빈들에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무리 궁리하고 생각해봐도 앞으로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에서 본다면 어떤 모습입니까?
막6:34에 같은 사건을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로 모여든 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모습이 목자된 주인을 잃고 홀로 방황하고 있는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없으니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난런지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위기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선진국 사람들은 잘 살고, 후진국 사람들은 가난하니 불쌍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진국일수록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이 더 심하고, 정신병자나 우울증, 변태적인 사람들이나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선진국은 사회 전체가 거대한 병동과도 같습니다.

4.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 빌립에게 물었으니 무슨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빌립이 예수님의 질문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사람들의 식사를 해결하려면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금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역시 빌립도 돈 없이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를 향해 달러를 마구 찍어 쏟아내고 있고, 일본도 밤을 새면서 엔을 찍어 내고 있지만, 그 원수 같은 돈은 왜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만나보기가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돈벼락이라도 맞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돈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제자들을 향해 이 많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마14:16).
예수님의 이 말씀은 현실의 한계성을 무시하는 말이요 제자들을 괴롭히는 말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일본에 살면서 늘 느끼는 것은, 주어진 현실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도 특히 조심할 것은 분위기 파악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와서도 한국식으로 생활하는데, 이게 잘 안 되면 어렵습니다.
실제로 분위기 파악이 잘 안되서 살다가 도중에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이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서 마을로 들어가 각기 먹을 것을 해결하도록 하자고 했습니다마는, 예수님은 그냥 너희가 먹을 주라고 했으니 예수님이야 말로 분위기 파악이 전연 안되는 것 같습니다.

5.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현실성이나 분위기에만 메이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과학이나 수학에 뛰어난 사람들, 머리 굴리는데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 성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도리어 엉뚱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앞서갑니다.
본문에서 빌립이 주장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 (7)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수학적인 계산으로 보면 빌립은 상당히 상식적인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아예 허공에 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이나 행동에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려는지 도무지 알아먹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비하면 빌립은 굉장히 실제적이고 도움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는 빌립처럼 이렇게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사람의 생각과 계산대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오늘 당장 시장에 가서 병아리 몇 마리만 사 오면 몇 년 가지 못해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병아리를 키우다 보면 족제비가 와서 물고 가고, 병 들어서 죽고, 키우는 사람의 부주의로 다치거나 죽습니다.
설사 백 번 양보해서 잘 키워서 큰 양계장을 한다고 해도, 조류 인플렌자로 떼죽음을 당하거나, 가격 폭락 같은 된 서리를 맞고 망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빌립 같은 계산은 전연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6.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9절 이하에서 해결의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순종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겨우 한 아이의 식사에 해당하는 도시락을 찾아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제목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즉 오병이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오병이어는 숫자적으로도 이 많은 사람들이 먹기에는 불가능한 일이고, 더 나아가서 이 오병이어는 웬만한 사람들이 먹기에는 형편없는 양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이 지혜로운 것은 이백 데나리온의 돈은 물론이고 막대한 양의 떡도 가진 것이 없지만, 군중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까하고 그들 가운데 들어가서 오병이어를 찾아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께로 가져 온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처음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반응을 보셨지만, 이제는 제자들이 이 오병이어를 들고 와서 예수님의 반응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려면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지 말고, 학교에서 배운 계산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지 말고,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이라도 관계없고, 그것이 아무리 적은 물질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반응이고 순종입니다.
본문을 보면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오병이어를 제자에게서 받아 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식사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앉게 한 후에 떡이 안 나오면 망신당하고 몰매를 맞을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어디에 나옵니까?
요2장의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종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도 이 사건을 기억하고 그렇게 순종했을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신비를 체험했기 때문에 그들도 용기가 생겼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제자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7. 그렇다면 두 번째 원리는 무엇입니까?
본문 1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와 감사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신 축사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예수님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이 오병이어를 가지시고도 하나님을 향한 풍성한 감사를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최근에 힘들고 어려워서 잘못하면 우울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사람 만나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책상에 앉아도 무슨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가 시작한 것은 무조건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계속 입술로 고백하는 감사를 시작했더니,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감사가 줄줄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왜 그렇게 감사가 많은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형식으로 하는 감사였는데 나중에는 진심어린 감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다 고백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사를 알게 되면서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용기와 담대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할 때 감사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세상의 왕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찬미를 받으소서 하면서 기도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 인생길이 고난의 발자취였고, 마지막에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는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에게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감사가 있었고, 우리를 향하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참 사랑으로 넘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빌립처럼 계산만하고 산다면 감사할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참된 감사가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쁨으로 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8. 이렇게 감사 기도를 올린 후에 나누어진 오병이어는 제자들의 손을 거쳐서 순식간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공급되어졌습니다.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되었습니까? 저들이 먹고 배부를 때까지 였습니다.
처음에는 200데나리온이라는 막대한 돈이 있어도 해결될 것 같지 않던 문제였지만, 믿음으로 순종한 제자들에 의해서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고 그것이 축사를 통해 감사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 보좌에 올라갔을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만족할 만큼 풍성히 공급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우리의 지나온 발자취가 보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풍성함 속에서도 인색한 마음으로 살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함 속에서도 풍성함으로 드리면서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잠24:12절에 보니,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박혜란이라는 여자 분이 어머니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자녀 셋을 서울대학에 보내고 그 아이들이 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 엄마들이 궁금한 것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양육했는지 그 비결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아이들 과외수업 한 번 안 시키고 막내아들이 고삼일 때는 엄마가 일 년 동안 중국 연변에 가서 공부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식 망칠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그 비결을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이들을 믿어 주는 것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부모가 자녀를 쉽게 키우면 쉽게 자라고 어렵게 키우면 어렵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그 분의 인생과 자녀교육의 전부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9.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로 모여든 이 큰 무리를 배고픈 채로 그냥 돌려보내도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왜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먹이시되 배가 부르도록 먹이셨습니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본문 14절이 그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장차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기적을 베푸시고 먹을 양식을 주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40절에 가서 밝히기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미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 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목적은 일용할 양식이나 우리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다 오늘처럼 이렇게 공급해 주겠으니, 너희는 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복 받는 것도 성경대로 바로 믿으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욕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보다는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떡을 배부르게 먹고 난 후에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욕심에서 나왔고,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해 혼자 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 욕심이 우리에게 예수님 대신에 다른 생각을 품게 만들고, 다른 잘못된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는 상관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어렵고 교회 다녀도 은혜의 생활 축복된 생활은커녕 점점 어려운 일만 만나는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대로 경제문제, 자녀, 미래문제는 사람의 생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만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고 풍성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우리 영혼이 잘 되는 것과 더불어 내년 추수감사절에는 우리가 더 많은 감사로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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