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1.내가 너를 씻지 아니하면(요한복음13:1-17)
[성경본문] 요한복음13:1-17개역개정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
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내가 너를 씻지 아니하면(요한복음13:1-17/2015.3.1.오전)
1. 세상에서 제일 쉽게 그리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사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제일 흔한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의 대화는 물론이고 유행가나 복음성가의 가사에서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한국의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는 기독교와는 관계도 없는 일본의 복지시설에서도 많이 애용되고 있는 노래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는데도 웬일인지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라 하고 있으며, 사랑에 굶주려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찾다가 지쳐 쓰러지고 사랑 없이 병들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 갈급해 하고 있는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디를 가야, 누구를 만나야 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요즘은 한국에서 50-70대의 홀로된 인생들 사이에서도 사랑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인생 100세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 정도의 나이라면 아직도 청춘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100년이나 살면서 사랑도 없이, 사랑에 굶주린 채로 인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사실 끔찍스러운 일이요, 불쌍하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그 사랑이 어디서 오며, 누구에게서 그 사랑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사랑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는「고별강화」로 즉,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사랑」 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13장을 보면,「사랑」 이라는 단어가 7번 반복되고 있으며, 1절에서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말로만 표현되어지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가르침은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 갈급해 하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 하루 전날 밤에 함께 다락방에 모여 마지막 만찬을 들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심정을 한 마디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본문 1절의 말씀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쏟아 붓는 대상을 가리켜 “자기 사람들”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자기 백성” 이라고 해야 하는데 본문에서는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계시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기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그가 주시는 사랑과 믿음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3. 그 사실을 요한은 1장의 처음부터 확실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0-11절을 보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람들” 즉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은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그 사랑을 의심하거나 부정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랑을 베푸는 자의 행동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사랑을 받는 쪽에서의 오해나 잘못된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을 받는 쪽에서 확실하게 이것이 참 사랑이구나 하고 인식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 해 주는 것입니다.
일본어 성경에는 이것을 표현하기를 남김이 없이 사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 역에서는 한국 성경처럼 마지막까지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원어인 헬라어로는 완전히 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던지 간에 거의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랑을 말하면서도 참 사랑에 굶주려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4. 그렇다면 예수님이 끝까지 남김없이 완벽하게 자기에게 속한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4절 이하를 보면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 답이 나옵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것이 뭐가 그리도 대단하며, 겨우 그런 행위를 통해 참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이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로서는 사람들 앞에서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는 것은 노예들이나 하는 행위입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집 주인의 발을 씻기 위해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씻는 것은 노예들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런 행위에 대하여 완강하게 저항했던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말은 내가 도리어 선생님의 발을 씻어 드려야 마땅한데, 이것은 너무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겸손한 사람, 예의가 바른 사람, 말이 통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5. 자신의 발을 선생님이 결코 씻길 수 없다고 거부하고 있는 베드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9절의 말씀을 보면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너와는 상관이 없다는 이 말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유산을 상속하거나, 약속의 땅에 대한 분배나, 하나님 나라에서의 나눌 분깃에 대하여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어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너의 발을 씻기지 아니하면, 장차 미래에 하나님이 나누어 주시는 언약의 축복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욕심도 많게 발뿐만이 아니라 머리와 온 몸을 씻어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이 행위, 씻김을 받는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이것은 이제 곧 일어날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중요한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림으로 인류의 죄를 씻는, 그래서 자기에게 속한 이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영원히 거룩한 자로 세우시는 십자가의 보혈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의 제물이 되시는데, 이 만찬 석상에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시는 것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절에 보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위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깨달았던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이 행위는 십자가의 보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피로 죄에서 정결함을 받고 죄가 주는 저주와 고통과 죽음에서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영원히 해방시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6.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자신을 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선행이나 도덕이나 철학이나 그 어떤 종교의 힘으로도 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씻어 주시는 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근심과 걱정거리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샘에서 씻을 수 있으며, 온갖 두려움과 불안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을 수 있으며, 우리의 쌓이고 쌓인 더러운 행실과 악한 생각은 물론이고 온갖 고통까지 씻어주시는 영원한 샘의 근원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참 사랑이란 결코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고, 그 사랑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조건 없이 주는 것이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도 거래하는 사람들처럼 하고, 사랑도 흥정과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도 내가 이만큼 했으니 도와주고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교회가 좀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결코 참 사랑도 참 신앙도 아니며 다만 어리석은 자들의 더러운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며, 십자가 사건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할 때 일어나는 잘못된 반응이라는 사실입니다.
7. 바로 그런 사람이 오늘 본문에도 나오고 있는데 그가 누구입니까?
배신자 가롯 유다입니다.
그는 12명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당연히 예수님의 손에 의해 씻김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0절에 보니,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고 하셨고, 11절에서도 다시 반복해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베드로가 온 몸을 다 씻어 달라고 할 때에는, “온 몸이 깨끗하다” 고 하시면서 발만 씻어 주셨는데, 가롯 유다는 발을 씻기셨음에도 불구하고 깨끗지 못하다고 하셨으니 이유가 무엇입니까?
18절에 보면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택한 자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배신행위를 가리켜,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시41:9참조) 다고 표현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씻김을 받기 전부터 예수님을 팔려는 사단의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씻김을 받은 이후에도 회개할 줄 모르고 도리어 배신을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축복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행사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배와 섬김과 전도, 구제, 봉사 등등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을 낸다면, 반드시 그런 행사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힘을 얻으며 주님과의 관계나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확신을 얻을 수 있지만,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교회가 무슨 행사를 해도 그것이 은혜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시빗거리고 되고 분쟁의 실마리로 삼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는 세족식의 귀한 은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악한 일을 구체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8.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이 행위는 4복음서에서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사건입니다.
문제는 요한이 이 사건을 기록하여 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겸손과 섬김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종의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우리의 거룩함을 매일 발을 씻듯이 씻어 거룩함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우리를 거룩한 자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하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17절에 보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제대로 받는 자녀는 잘 성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만, 반항하고 거부하면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나쁜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가롯 유다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발을 씻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다는 깨끗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9.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그 뜻을 다 이루시고 하늘 보좌로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우리들도 언젠가는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영원한 자녀로 삼아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어 함께 거룩한 자로 세워가는 사명자의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