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4.인생의 크기(역대상29:10-13)
[성경본문] 역대상29:10-13개역개정
10.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
11.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의 크기(역대상29:10-13/2015.1.4.오전)
1. 어제 인터넷판 조선일보를 통해서 오랜만에 감동을 주는 기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인 테드 스텐리는 아들이 조울증에 걸려 고통당할 때, 그를 치료하면서 제약사들이 수익성 때문에 신약 개발이나 정신질환자를 위한 연구를 게을리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는 아들은 치료가 되어 대학교에 복학이 되었지만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가까이서 보고, 작년 7월에 생체의학 연구센터에 6억5천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연구에 써달라고 했습니다.
일본 돈으로 환산하면 780억엔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테드 스텐리가 주는 감동은 과학연구 분야에서 개인이 기부한 금액으로는 역대 최고라는 사실도 그렇지만, 더 놀라운 것은 아들의 고통을 통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보았고, 그곳에서 고통 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행동에 옮긴 것이야 말로 감동 중의 감동이었습니다.
201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꿈이 있습니다.
성공을 꿈꾸고, 행복과 위대한 인생을 설계하면서 그 꿈이 올 해 꼭 이루어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누구나 이런 꿈을 꿀 수는 있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제 자신이 가진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어떤 사람들은 작년 보다 더 못한 삶의 결과로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많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며, 어떻게 해야 우리의 꿈을 현실 속에서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질문을 오늘 본문은 분명하고 간결하게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2. 역대상 29장은 이스라엘의 최고로 훌륭한 다윗왕의 기도가 기록된 부분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 중에서도 본문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크기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각자가 믿는 하나님이 각각 다른가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천상하지에 하나님 같은 신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 분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이고 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신학의 기본이며 출발점도 하나님을 알고 배우는 신론에서 출발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기본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느냐, 내가 믿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인정하고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사안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3.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한 지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우리의 꿈이 되고, 우리의 생각이 되고, 우리의 언어와 행동으로, 마침내는 우리의 가치관에 변화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요셉이라는 인생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12형제 중에 아버지의 사랑과 신뢰가 깊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형들의 시기와 미움은 증폭되었고, 결국에는 어린 나이에 형들의 배신으로 애굽에 노예로 팔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디로 가든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이 여호와를 어떤 하나님으로 믿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과 개인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온 형들과 대면하고 한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7-8) 고 했습니다.
그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꿈을 꾼 것도 개꿈이 아니라 요셉은 물론이고 온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임을 알았기 때문에 바른 해석을 할 수 있었으며, 자식을 낳으면 자식의 이름을 통해서도 아버지된 요셉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이런 신앙을 가졌기에 요셉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이 무엇입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39:23).
4.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하나님과 나는 과연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인간이 없는 하나님은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나, 하나님 없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세상에 와서 가장 위대한 만남이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인 줄 믿습니다.
시편기자는 믿음으로 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힘쓰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기도 했고, 수치를 당하기도 했으며, 원수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의 형통함을 보고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로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시71:14-15) 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알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말씀과 함께 삶을 통해 경험했던 하나님을 아는 지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만남, 이 만남이 가장 귀하고 위대한 만남임을 확신한다면, 우리도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고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도 승리할 것입니다.
5. 오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요 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생사화복, 특히 사람이 성공하고 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12절에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그 다음에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심과, 계속해서 그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며, 마지막에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한한 가능성과 영광에 빛나는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공식적으로 인생의 마지막 간절한 기도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크시며 얼마나 높으신 분인가를 알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에게는 하나님 보다 더 큰 존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다와 하늘이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우주 전체를 크기와 지식을 가진다고 하여도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의 남다른 지식이나 능력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아는 남다른 지식과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따라 올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그 분을 향한 찬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높이면 높일수록 다윗도 점점 사람들 가운데 높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면 찬양할수록 그는 점점 인기와 존귀함을 얻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할수록 그의 능력과 권세는 올라갔습니다.
6. 이것은 예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기도 마지막 부분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마6:13) 다고 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을 높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어떤 주권인 줄 아셨기 때문에, 그 분을 높이고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가 받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경우는 그의 조상들이 누렸던 모는 축복과 영광을 한 몸에 누렸고, 그것이 다윗 왕가를 통해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33년 생애를 통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했기에 십자가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삼일 만에 죽음에서 일으켜 주시고 하늘의 가장 놓은 곳에 앉히시고, 만물의 주권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천국 가는 믿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타나는 능력은 그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어떻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온 세상 우주 만물에 충만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7. 아이들과 어른들 중에 누가 더 행복하겠습니까?
어른들은 아이들에 비해서 더 많은 기회가 있고, 능력이 있으며, 가능성이 많아도 결코 아이들에 비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이들은 숨바꼭질이나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조차도 한 번 하면 빠져들고 그곳에 모든 것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 가면 집안 걱정하고, 집에 오면 회사 걱정하고, 한 마디로 정신과 육체가 같은 한 장소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늘 피곤하고 혼란스럽고, 그래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 시합도 집중력이 떨어지면 상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의 특징은 책상에는 오래 앉아 있어도 오만 잡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평생에 온갖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어떤 상황에 처해도 오직 하나님에게 집중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본문에서 결론을 맺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바로 이것입니다.
8. 우리가 새해를 맞이해서 작년 보다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고, 오늘 보다는 내일에 소망을 두면서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남들보다 그분을 더 높이고, 세상 어떤 것 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더 크게 여긴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더 크고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꿈이 있습니까? 인생에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 삶속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크기는 내가 힘쓰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하나님을 내 생각보다, 내 생활보다, 내 재물이나 명예보다, 내 생명 보다 더 크게 보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요셉처럼 다윗처럼 어려운 일은 있어도 반드시 믿음의 조상들이 받은 은혜와 영광보다 더 큰 축복으로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