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7.남은 것이 있습니까?(열왕기하24:8-20)

[성경본문] 열왕기하24:8-20개역개정

8.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

9.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0.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11.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2.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13.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4.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15.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6.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7.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18.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

19.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남은 것이 있습니까?(열왕기하24:8-20/2016.8.7.오전)
1. 열왕기하 10장에 보면 오므리 왕조의 최고의 권력자였던 아합왕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예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아합에게는 70명의 왕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아합에게는 수많은 귀족과 장로들이 아합을 도와 이스라엘 왕국을 유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쿠데타의 주모자인 예후의 편지 한 통에 의해 견고했던 아합 왕의 세력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왕자 70명이 한 날에 다 죽임을 당했고, 그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아무런 쓸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귀족들과 장로들은 다 아합 집안을 배신하고 예후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아합은 간교한 이세벨 왕후의 도움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쳐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고 자식들까지 죽였지만, 그 왕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남은 것은 비참하고 처참한 패배와 죽음뿐이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모습이나 이미 멸망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받는 심판과 고통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모든 사건들은 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되어진 하나님 말씀 대로였습니다.
12절에 여호야긴 임금과 그의 모친에 대한 내용은 이미 예레미야가 예언한대로(렘22:26-27) 바벨론으로 함께 사로잡혀 가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혈통을 이어 왕이 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대로(렘22:30) 그의 숙부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2. 신명기 28장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받을 복이 1-14절까지 자세히 기록되었고, 15-68절까지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난 자가 받을 저주와 심판이 낱낱이 기록되었는데, 유다의 멸망이 이 말씀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실제로 유다왕국의 하나님 중심의 임금들이 자신들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다윗으로부터 시작하여 요시아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받았던 축복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욕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떠나 제 마음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찌되었습니까?
그들 역시 기록된 예언의 말씀대로 저주와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무너질 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씨도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망하고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끌려가 이방 나라에 사방으로 흩어졌고, 반대로 사마리아에는 이방인들이 이주해 들어옴으로 언약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로 여행하는 법이 없었고, 그곳을 통과하지도 않았을 정로로 혼혈민족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 나라도 같은 위기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철저하게 망해가는 유다왕국의 모습을 보면서,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남는 것도 없고 소망도 없고 오직 고통과 수치만 남을 뿐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46: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는 시편기자의 고백대로,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통 속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다윗처럼 축복하시고,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처럼 모든 환란에서 건져 주시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줄 믿습니다.

3. 본문의 말씀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 위에 오르자마자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급격히 무너지는 유다 왕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그 때에” 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 때가 언제이며 어떤 때입니까?
여호야긴이 그 아버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야김의 행위는 어떤 행위였습니까?
23:37절에 보니,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죄를 말하며, 통치자로서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 기는커녕 아합처럼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리고,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며, 온갖 불법과 하나님 미워하시는 일을 행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이러한 죄악을 거듭 반복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 10-17절에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왕을 포함한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충신들과 귀족들과 내시들도 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으며, 14절에 보니 지도자들과 용사들과 기술자들과 심지어 대장장이까지 다 사로잡아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상황을 기록하기를 “비천하는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미 여호야김이 통치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천하는 자란, 재산이 없고 지도력이나 어떤 특별한 능력도 없는 사회적으로 밑바닥 인생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두 번 다시 바벨론에게 반기를 들고 대항하는 세력을 없애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힘 있는 자들과 지도자들을 끌고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벨론의 각지로 보내어 그 나라의 자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4. 그 뿐만이 아니라 13절에 보니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을 빼앗고, 남은 것들을 파괴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유다 나라도 이스라엘처럼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망하고 만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보다 더 큰 것을 손 쉽게 얻으려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것입니다.
전도자 사도 바울의 자랑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오물처럼 여기고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단 한 가지만 자랑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것을 도리어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이 권리를 주장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발적으로 일하였고, 헌신하고 수고하는 것을 당연함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먹을 수 있는 것도 먹지 않았고, 행할 수 있는 것도 절제하면서 도리어 말씀안에서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의 대부분의 임금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머리 숙이고 말 못하는 우상을 위해 자신의 아들들까지 불태워 바치면 더 큰 것을 얻는 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 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비참한 멸망을 당했습니다.

5.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니 당시의 국내, 국외의 정치적인 배경이 얼마나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임금들의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힘없는 애급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벨론은 하나님을 떠난 유다를 심판하고 타락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왕들은 애급과 앗수르, 그리고 바벨론 사이에서 때로는 타협하고 아첨하고 때로는 적당히 저항하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친 애급정책을 펼쳤고, 어떤 때에는 바벨론에 붙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것을 보고도 유다 제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고집과 어리석음이 깨달음 대신에 파멸을 부른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떠나서 제 마음대로 살면, 처음에는 자유롭고 잘되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다 망합니다.
망하는 것도 그냥 망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와 굴욕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안고 망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나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그 욕심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많은 것을 남기려고 했기 때문에, 도리어 아무것도 남길 수 없는 가장 불행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6. 우리가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경제문제고 정치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셔야 안정이 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국가의 미래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어도 사는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왕하 8장에 보면 수넴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이 땅에 흉년이 들 것이니 피신하라는 말을 듣고 7년간 피해 있다가 돌아오니, 자신의 많은 재산들이 이미 남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돌아온 것은 낙심이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어려울 때 선지자를 공궤하며 열심히 섬겼는데 더 많은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넴 여인을 잊지 않고 그녀를 위해서 정확하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게하시가 왕에게 아뢰고 있을 때, 수넴여인이 왕에게 억울한 이 일을 호소하러 왔고, 게하시는 이 여인에게 일어났던 하나님의 역사를 말했더니, 왕은 지체 없이 수넴여인을 위해 관리를 임명하고 그녀가 빼앗긴 모든 재산을 돌려주게 하였고, 7년 동안 그 땅에서 난 소출 까지 돌려주게 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면,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시되 더 풍성하도록 채우시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기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나라와 민족은 물론이고 개인이 사는 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허물이 많고 부족한 것이 많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만든 것이 많아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기뻐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 그 은혜 가운데 사는 길이 있고, 그 은혜 가운데 소망이 있고,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7.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인생사는 것이 쉽지 않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고, 선교사라고 해서 엘리야처럼 기적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들도 힘들고 고통스럽고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수십 년을 수고해도 눈에 보이는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남은 것도 없고, 인간이기 때문에 낙심이 될 때가 많습니다.  
목회라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어도 이 일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 나가면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주의 종이 아니라 지금까지 삯군으로 일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평생 이 길을 갑니까? 왜 그 자식까지 이 고생길로 가게 합니까?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될 때 하나님께 서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목회자들의 삶속에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과 삶을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되던지 못되던지, 내 뜻대로 되었던지 그렇지 못하던지 모든 장래와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옛날 양반들이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면 신분을 속이고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사해서 얻은 이문으로 먹는 것과 입는 것은 해결해도 자식 공부는 가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들에게는 두 가지의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당에서 사람을 가르쳐 번 돈이나 땀 흘려 수고해서 번 돈은 침전(沈錢) 이라 했고, 수월하게 번 돈은 부전(浮錢)이라 해서 돈의 사용처를 엄격하게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 공부나 과거시험에 가는 비용은 직접 농사지어서 생긴 것이나, 부인이 밤새워 정성을 다해 만든 옷을 가지고 노잣돈을 만들고 그런 것을 복전(福錢)이라고 했다 합니다.

8. 우리가 하나님 섬기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 단순히 천국가기 위해서만 예수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욕심 때문에 죄 가운데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해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복하고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귀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이 비록 가난해도 그것이 거룩한 삶이기 때문에 부자의 삶보다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보배롭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세상 어떤 것을 주고도 바꿀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고, 이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보다는 하늘에 소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성도의 삶이야말로 영원하고 다함이 없는 축복을 남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많이 남는 축복이요 미래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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