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12.요시야의 개혁(열왕기하22:1-13)
[성경본문] 열왕기하22:1-13개역개정
1.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3.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4.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5.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숴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6.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7.그러나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진실하게 행함이니라
8.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9.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10.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2.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제공: 대한성서공회
요시야의 개혁(열왕기하22:1-13/2016.6.12.오전)
1.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현실의 문제보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며 불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나 건강 때문에 일어나는 노후에 대한 불안이나, 젊은 부부들의 자녀 문제나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며, 청소년들은 그들대로 사회에서 진로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범법자들에 의하여 법과 질서가 흔들리면서 불법이 난무하는 것과, 국가적으로는 경제, 군사, 외교에 대한 염려가 민족적으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사회학자들의 말대로, 세상을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몇 십 년 후에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것이니 빨리 처방하지 않으면 인류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고민이나 지구촌의 미래에 대한 염려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심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 앞길도 캄캄한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사회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생활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거칠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어려워도 열심히 하면 나중에는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으면 사람들이 어려움을 참을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포자기하다 일어나는 사회적인 현상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웃의 장애물이 되고 사회적인 흉기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벌써 한 두 세대 전의 교회모습은 간곳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에서 우리가 느끼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국가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질서나 기강이 무너지는 종말적인 현상입니다.
2. 오늘 우리는 열왕기하 22장에서 유대 왕 요시야에 대한 내용을 보고 있는데,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불법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처럼, 유대 나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스라엘처럼 똑같이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히스기야 이후에 그의 아들 므낫세와 손자 아몬이 우상숭배와 반개혁 운동으로 말미암아 유대 나라의 멸망에 결정적으로 공헌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대 나라의 역사 가운데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왕과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과,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이 있기 때문이고, 이 언약 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향한 죄에 대한 징계와 심판은 있어도 이스라엘을 결코 망하게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시대마다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백성이 하나님 중심의 바른 길을 가도록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였고, 아사왕이나 히스기야나 본문의 요시야 같은 왕을 세워 국가와 민족을 살리기 위해 개혁을 하도록 도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국가 부흥을 일으켜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결코 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3. 분문의 요시야 임금은 부친 아몬이 2년을 통치하다가 죽자, 불과 8살에 유대나라의 16대 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이 지난 16살의 나이가 되자, 대하34:3절에 보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특별한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본문 2절에도 나오지만, 그는 할아버지나 부친이 행했던 우상숭배를 버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조상 다윗의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유대 나라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평가 받은 왕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사(3), 여호사밧(4), 요아스(8), 아마샤(9), 웃시야(10), 요담(11), 히스기야(13)와 16대 요시야뿐입니다.
또한 다윗 왕과 비교하면서 칭찬을 받은 왕은 여호사밧,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 이 세 사람뿐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왕하23:25절에 보면 요시야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라고 하였으니, 요시야 임금은 하나님 앞에서 유대 나라의 역대 중에서 최고의 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왕과 백성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미 기울어가는 유대 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어린 나이 때부터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달랐고, 남들보다 생각이 깊었다는 것입니다.
조부 므낫세의 행적과 부친 아몬이 남긴 행적을 보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무엇입니까?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므낫세와 아몬이 세운 모든 우상들과 그 제단들을 무너뜨리고, 그 조상 다윗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 중심, 하나님 제일주의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본문의 말씀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4. 그리고 26살이 되어서는 여호와의 성전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 임금 이후로 왕은 물론이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열심을 내다보니, 성전은 방치되고 황폐화되었지만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상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진 요시야 임금은 성전수리를 통해 신앙개혁운동을 일으켜 백성들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의 성벽이 훼파되고 성문은 불타버렸다는 소식과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과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백성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성벽을 수축하고 성문을 만들어 달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의 자존심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원수인 이방인 산발랏과 도비야는 죽기 살기로 이 일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요시야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허물어지고 비가 새고 낡았다면 그 백성들의 부끄러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리고 백성들이 관심도 가지지 않는 그런 헌집에 누가 와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기쁨을 맛볼 수 있겠습니까?
5. 그런데 유대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은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숭배를 뿌리 뽑은 후에 시작한 성전 수리를 통해서 요시야 임금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율법책 한 권을 성전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오래 전에 사라졌던 율법책을 성전에서 다시 찾은 것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이것을 가져가 왕에게 아뢰고 그곳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 임금은 사반이 대독하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는 자신의 옷을 찢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 이유가 본문 13절에 기록된 대로 조상과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면서 지은 죄가 얼마나 크며,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미 유대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유대 나라의 운명을 깨달은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구나, 우리의 죄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벌써 그 분의 심판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옷을 찢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옷을 찢는 행위는 죄악에 대한 비통한 마음이 생겨 이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옷을 찢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시야 임금은 거듭된 죄악으로 말미암아 유대 나라가 결국에는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옷을 찢은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경험이 많은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요시야 임금이 어린 나이에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6.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요시야 임금을 통해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므낫세나 아몬 같은 극악무도한 죄인에게서 다윗과 비교될 수 있을 만큼의 귀하고 선한 왕이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미 유대 나라의 멸망이 작정되었고, 점점 나라가 기울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치자인 요시야는 결코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삶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소망이 없을 때에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려고 합니다.
빤히 미래가 내다보이고, 내가 갈 길이 어떤 길인 줄 알면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 안에서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이 행9: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를 핍박하던 모습에서 변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받았는데, 그 때 천사를 통하여 전해준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표현하는 대로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하여 단 한 번도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도망가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복음의 도구로 택하시고 사용하시는 그 은혜에 감격하고 순복했습니다.
요시야 임금도 이미 유대 나라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왕으로 있는 그 기간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유대 나라가 바로 서고 은혜와 은총을 입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종교개혁은 쉬지 않고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한쪽으로는 세상을 짝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렇게 살았으니 계속해서 이렇게 살기로 작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를 바꿀 수 없으니 되는대로 물이 흐르는대로 그렇게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살겠습니까?
우리도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과 모습대로 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미래에 소망이 없으며,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의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환경과 조건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요시야 임금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가 임금으로 통치하는 기간에는 하나님이 재앙과 심판을 연기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 임금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세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의 95개 조문의 첫 번째를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는 이미 한 세대의 분량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은 있어도 그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기 신앙생활 하다보면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설교가 은혜가 안될 수도 있고, 사람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으며, 친구가 없어서 교회 나오기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이 어려워도 교회 나와서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나는 저주를 받아 멸망할 죄인이라는 사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요시야가 옷을 찢듯이 그렇게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회개하는 마음, 가슴을 찢으며 용서를 구하는 심령에게 생각지도 못한 크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8.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의 종교개혁은 무엇이며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중심에 서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인 한 사람의 질투에도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는데,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질투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는 습관적으로 하던 신앙생활을 버리고 예배 때 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요,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라는 심정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미지근한 신앙을 제일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3:15-16절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고 하시면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했습니다.
미지근한 신앙, 습관적인 신앙은 하나님이 느끼실 때 오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않고 제 자신을 채찍질 하는 그런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는 언제 어디서든지 나와 내 자녀와 가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믿음의 형제들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처럼 그렇게 내 몸처럼 사랑하며, 바깥으로는 부지런히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받은 사명입니다.

